백채린
[한국심리학신문=백채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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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고?
부모님께 혼난 뒤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면서도 "바람 때문에 닫힌 거예요"라고 둘러댄 기억. 보도블록 선을 밟지 않으려 애쓰거나,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먼저 눌러야 직성이 풀렸던 기억. SNS에는 이처럼 어릴 때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법한 행동을 재현한 영상이 꾸준히 올라오고, 댓글에는 "우리 집도 그랬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라는 반응이 이어진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다 건너의 전혀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외국인들의 공감 영상에도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서로 알지도 못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이토록 비슷한 어린 시절을 공유하게 된 것일까.
인간은 비슷하게 성장한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의 보편적인 발달 과정과 사회적 학습의 결과로 볼 수 있다. 크고 작은 차이는 있겠지만, 아이들은 대체로 비슷한 방식으로 성장하고, 비슷한 환경을 경험하며, 주변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모방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 과정에서 공통된 행동 양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다.
먼저 인간은 성장 과정에서 비슷한 발달 단계를 경험한다. 어린 시절에는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쁨이나 분노 같은 감정을 즉각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에게 혼난 뒤 방문을 세게 닫거나, 사소한 일에도 크게 삐치고, 이에 다급히 변명하는 행동 모두 미숙한 감정 조절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보도블록 선을 밟지 않거나 계단을 일정한 규칙으로 오르는 것처럼, 특별한 목적 없이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 반복하는 행동 역시 어린 시절 흔히 나타나는 발달적 특성이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배운다
발달 과정과 함께, 사회적 학습도 비슷한 행동이 나타나는 주요 이유다.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는 사회학습이론(Social Learning Theory)에서 인간이 시행착오를 통해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행동을 관찰하고 모방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행동을 습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관찰학습(Observational Learning) 또는 모델링(Modeling)이라고 설명했다. 아이들은 부모, 형제자매, 친구는 물론 교사, TV 속 등장인물, 유튜버와 같은 다양한 모델의 행동을 관찰하고 이를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한다.
예를 들어 부모에게 혼난 뒤 방문을 세게 닫는 행동은 감정 표현이라는 발달적 특성과 함께, 가족 구성원의 행동을 관찰한 결과일 수도 있다. 부모가 화가 났을 때 한숨을 쉬거나 방문을 닫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본 아이는, 비슷한 상황에서 그 행동을 하나의 표현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학습하게 된다. "바람 때문에 문이 닫혔다"는 식의 변명 역시 주변 어른들이 책임을 완곡하게 표현하는 방식을 접하며 익힌 언어적 모델링의 결과로 볼 수 있다.
또래 문화와 학교 환경도 중요한 학습의 장이다. 지우개 가루를 모으거나 샤프심을 끝까지 길게 빼는 놀이, 보도블록 선을 밟지 않는 게임이 빠르게 퍼지는 이유는 친구들의 행동을 관찰한 아이들이 이를 그대로 따라 하기 때문이다. 반두라는 또래 집단이 행동 습득과 사회적 규범 형성에 매우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하나의 놀이가 교실 전체로 퍼지고, 나아가 한 세대의 공통 기억으로 남는 것도 이러한 사회학습의 결과다.
공감은 왜 즐거울까
오늘날에는 미디어 환경이 사회학습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과거에는 텔레비전과 만화가 주요 모델이었다면, 지금은 숏폼 영상과 SNS 콘텐츠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어린 시절 공감 영상에 사람들이 열렬히 반응하는 이유는 단순한 추억 회상을 넘어, 타인의 경험 속에서 자신의 과거 행동을 다시 확인하고 그것이 많은 사람들과 공유되는 경험이었음을 인식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감이 즐거움으로 이어지는 데에는 노스탤지어(Nostalgia)와 사회적 소속감이 작용한다. 노스탤지어는 단순히 과거를 그리워하는 감정을 넘어, 현재의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삶의 연속성을 느끼게 해주는 긍정적 정서로 기능한다. 여기에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라는 경험의 공유가 더해지면, 자신이 집단의 일부라는 심리적 안정감을 얻게 된다. SNS 댓글 문화가 활발한 것도 이러한 사회적 공감을 함께 확인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공통된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결국 어린 시절 모두가 비슷한 기억을 갖는 이유는 단순히 같은 시대를 살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인간은 비슷한 발달 단계를 거치며 성장하고, 가족과 또래, 미디어 속 다양한 모델을 관찰하고 모방하면서 행동을 배운다. 반두라의 사회학습이론은 '나만 그런 줄 알았던' 행동들이 실제로는 수많은 사람들과 공유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지금도 꾸준히 만들어지는 공감 영상은 단순한 추억 콘텐츠를 넘어, 인간이 서로를 닮아 가며 성장해 왔음을 확인하는 하나의 심리적 거울이 되어준다.
참고문헌
1) 차수인. "Bandura의 관찰학습에 대한 뇌과학적 이해와 교육적 시사점." 국내석사학위논문 서울교육대학교 교육대학원, 2010. 서울
2) Grusec, J. E. (1992). Social Learning Theory and Developmental Psychology: The Legacies of Robert Sears and Albert Bandura. Developmental Psychology, 28(5), 776–786.
3) Sedikides, C., Wildschut, T., Arndt, J., & Routledge, C. (2008). Nostalgia: Past, Present, and Future.
4) Halbwachs, M. (1992). On Collective Mem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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