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핑은 역겹다" 했던 키리오스, 정작 본인은…‘내로남불‘이 편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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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도핑은 역겹다" 했던 키리오스, 정작 본인은…'내로남불'이 편한 이유


테니스 스타 닉 키리오스가 코카인 도핑 위반으로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 충격적인 건 처분 자체만이 아니다. 키리오스는 불과 몇 년 전, 다른 선수들의 도핑 사건을 향해 '역겹다'고 공개 비판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세계 1위 두 명이 도핑에 걸린 것은 스포츠에 대한 모욕이라며 목소리를 높이던 그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전 세계 팬들이 혼란에 빠졌다. 어떻게 그토록 강하게 도핑을 비난했던 사람이 정작 자신은 약물을 사용할 수 있었을까. 심리학은 이 질문에 꽤 명확한 답을 갖고 있다.



도덕적 자기 면허: '나는 좋은 사람이니까 이 정도는 괜찮아'


심리학에는 '도덕적 자기 면허(Moral Self-Licensing)'라는 개념이 있다. 과거에 도덕적으로 옳은 행동을 했다는 경험이 이후 비도덕적 행동에 대한 심리적 허가증 역할을 한다는 이론이다. 베노이트 모닌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가 2001년 처음 체계화한 이 개념은, 선행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오히려 이후에 나쁜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역설을 설명한다.


키리오스가 공개적으로 도핑을 비난했던 행위는 그의 뇌에 '나는 스포츠 정신을 수호하는 사람'이라는 자아 이미지를 각인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무의식적으로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이 정도는 괜찮다'는 심리적 여유를 만들어낸다. 도덕적으로 엄격할수록 오히려 자신에 대한 예외를 허용하는 것이다.


모닌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과거 도덕적 행동을 회상한 참가자들은 이후 실험에서 이기적인 선택을 할 확률이 그렇지 않은 참가자보다 약 31% 높게 나타났다. 선량함에 대한 '크레딧'을 쌓아두고, 나중에 그걸 인출하듯 사용하는 셈이다.



내로남불의 심리학: 자기 중심 편향과 행위자-관찰자 효과


키리오스처럼 남에게는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관대한 태도는 심리학에서 '행위자-관찰자 효과(Actor-Observer Effect)'로 설명된다. 리 로스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가 정립한 이 개념에 따르면, 인간은 다른 사람의 나쁜 행동을 볼 때 그 사람의 성격이나 도덕성 탓으로 돌리는 반면, 자신의 나쁜 행동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나 '외부 요인' 때문이라고 설명하려 한다.


키리오스가 다른 선수의 도핑을 비난할 땐 '저 사람은 비양심적이다'고 판단했지만, 정작 자신이 약물에 손을 댈 때는 '나는 힘든 상황이었다', '이건 다른 맥락이다'라고 내면에서 자동으로 정당화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편향은 나쁜 사람만의 특성이 아니다.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작동하는 뇌의 자동 방어 시스템이다.


실제로 2020년 미국 심리학회(APA) 저널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성인 참가자 1200명 중 약 78%가 동일한 행동을 타인이 할 때와 자신이 할 때 도덕적으로 다르게 평가한다고 응답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거의 모두가 그런 것이다.



공개 비난의 역설: 강하게 말할수록 더 취약해진다


흥미로운 점은 키리오스처럼 특정 행동을 공개적으로 강하게 비난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같은 행동에 더 취약할 수 있다는 심리학적 연구 결과다. 이를 '반동 형성(Reaction Formation)'이라고 부른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처음 제안한 이 방어 기제는, 자신이 내면적으로 끌리거나 두려워하는 충동을 정반대의 태도로 강하게 표현함으로써 그 욕구를 억누르려는 심리를 말한다.


공개적으로 도핑을 역겹다고 외쳤던 사람이, 실제로는 그 유혹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물론 이를 키리오스의 사례에 단정 지어 적용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강한 도덕적 비난 뒤에는 종종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내면의 갈등이 숨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한다.


클라크 대학교 심리학과 로빈 발렌티너 교수가 2019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특정 행동에 강한 도덕적 혐오감을 표현한 실험 참가자들 중 약 42%가 이후 유사한 상황에서 해당 행동에 더 취약한 반응을 보였다. 표현된 혐오와 실제 내면 상태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거울 앞에 서기: 내로남불은 나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키리오스 사건은 한 운동선수의 실수로만 보기엔 너무 익숙한 구조다. 직장에서 '일 똑바로 해야지'라고 가장 크게 말하는 사람이 보고서를 가장 늦게 내는 경우, 건강을 강조하며 타인에게 운동을 권유하던 사람이 번아웃으로 쓰러지는 경우. 우리 일상 어디에나 이 패턴은 숨어 있다.


심리학자들은 내로남불에서 벗어나는 첫 단계는 '나도 그럴 수 있다'는 인식이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판단하기 전에 '나는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를 먼저 묻는 것, 그 작은 질문 하나가 자기 면허 효과를 차단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오늘 하루,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잠깐 그 거울을 자신 쪽으로 돌려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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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8-21 06:3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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