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욱
[한국심리학신문=신용욱 ]
20일 오후 충남경찰청에서 사기 혐의로 수사받는 캄보디아 송환 피의자들이 충남 홍성 대전지법 홍성지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받기 위해 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주 한국 청년이 캄보디아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온라인 사기 조직의 소굴, 인신매매, 강제 노동… 충격적인 소식이 연일 이어진다. 주말 사이 캄보디아에서 송환된 한국인 64명 중 58명에게 구속영장이 검토되고 있다.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왜 일부 청년들은 위험을 알면서도 그곳으로 갔을까. 심리학에서는 이를 '개인의 취약성'과 '상황의 강제력', 그리고 '디지털 환경의 인지 편향'이 만든 복합적 결과로 본다.
"월급 500만 원, 숙식 제공, 해외 경력 가능."
스캠 조직의 채용 공고는 청년들의 경제적·경력적 결핍을 정조준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심리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첫째, '손실 회피 성향'이다. 불안정한 취업 시장에서 공백 기간이 길어지는 것을 견디지 못해 "일단 가보자"는 선택을 한다.
둘째, '낙관적 편향'이다. "나는 다를 거야"라는 생각. 심리학에서는 이를 '개인적 면역감'이라 부른다. 남들은 당해도 나는 안 당할 것 같은 착각이다.
여기에 '돼지도살(pig-butchering)' 수법이 등장한다. 로맨스나 투자 사기로 유명한 이 방식은 간단하다. 처음엔 감정적 유대를 만들고, 작은 성공을 맛보게 한 뒤, 점점 투자금을 늘리도록 압박한다. 작은 성공의 달콤함이 다음 단계로 이끈다. 초기의 죄책감은 점차 '몰입'으로, 나중엔 '매몰 비용 오류(그만두면 지금까지가 아까워)'로 변한다.
일단 들어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여권을 빼앗기고, 휴대전화는 압수당한다. 물리적 폭력과 협박이 이어진다.
이 단계에서 나타나는 것이 '학습된 무기력'이다. 반복되는 위협과 처벌 속에서 사람은 탈출 시도조차 포기한다. 감시와 격리, 집단 통제는 자기결정감을 무너뜨린다.
또 하나 주목할 심리 현상은 '도덕적 이탈'이다. 조직은 피해자를 비인간화하고 사기를 '업무'라고 부른다. "나 아니어도 누군가 할 일"이라는 책임 분산의 오류를 학습시킨다. 폭력적 통제와 성과 압박 속에서 구성원들은 죄책감보다 '생존'을 우선한다.
피해자는 금전적 파탄과 함께 관계의 상실을 경험한다. "왜 그때 멈추지 못했나"라는 자책은 우울, 불면, 대인 기피로 이어진다. 로맨스나 우정으로 포장된 신뢰가 배신으로 끝나면서 애착 체계가 손상된다. 필요한 건 단순한 금융 상담이 아니라 관계 트라우마를 다루는 심리 치료다.
첫째, 학교·군대·대학·구직 플랫폼에서 실제 채용 문구를 바탕으로 한 시뮬레이션 교육이 필요하다. 손실 회피, 낙관 편향 같은 인지 편향을 자각하게 하고, '이상 신호 체크리스트'를 몸에 익히게 해야 한다.
둘째, "속은 내가 바보다"라는 자기 비난을 교정해야 한다. 그래야 재신고와 구조 협력이 가능해진다. 정서 조절, 인지 재구조화, 동료 지지 집단이 효과적이다.
셋째, 로맨스·투자 사기의 '증액 패턴(소액 성공 → 고액 전환)'을 조기에 포착해 거래를 자동 보류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즉시 의심해야 할 신호는 다음과 같다. 고수익·즉시 출국·숙식 제공·수수료 선납 요구, 항공권·비자·계약서 원본을 직접 소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족·지인에게 체류지·동선 공유, 매일 '안전 신호' 보내기, 여권·휴대전화 제출 요구 시 즉시 거부·철수, 온라인에서 알게 된 지인의 투자 제안, "소액 성공 → 증액" 패턴이면 100% 의심해 보아야 한다.
스캠 콤파운드는 개인의 탐욕 때문에 생긴 게 아니다. 구조적 취약성과 정교한 조작, 폭력적 통제가 결합해 만든 범죄 생태계다.
지금 필요한 건 공포의 확산이 아니라 행동의 전환이다. 위험을 증폭시키는 기사 한 줄보다, 실제로 피해를 줄이는 한 문장의 지침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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