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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마약을 끊는 방법은 무엇일까. 상담, 약물 치료, 강제 격리.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방법들이다. 그런데 최근 중독 치료 현장에서 전혀 다른 답이 나오고 있다. '자전거 타기', '달리기', '헬스'. 운동이 마약보다 더 강렬한 쾌감을 준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구 중독관리센터를 비롯한 국내 여러 마약 중독 치료 기관들이 올해부터 운동 치료 프로그램을 본격 도입하면서 놀라운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입원 환자의 90%가 운동 치료 효과를 경험했다는 수치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뇌과학이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마약이 무서운 이유는 단순히 '습관'이 되어서가 아니다. 뇌 자체를 바꿔버리기 때문이다. 마약은 뇌의 보상 회로, 특히 측좌핵(nucleus accumbens)이라 불리는 쾌락 중추에 도파민을 폭발적으로 쏟아붓는다. 메스암페타민(히로뽕)의 경우 일반적인 즐거운 활동에 비해 최대 5배에서 10배 이상의 도파민을 방출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문제는 이 과정이 반복될수록 뇌가 정상적인 자극에 반응하는 능력을 잃는다는 것이다. 노라 볼코프 미국 국립약물남용연구소(NIDA) 소장은 "마약 중독은 뇌의 도파민 수용체 수 자체가 감소하는 질환"이라며 "중독자들이 일상에서 아무런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설명한다. 음식도, 사람도, 햇살도 더 이상 즐겁지 않다. 오직 마약만이 뇌를 '살아있다'고 느끼게 만든다.
이 상태를 전문 용어로 '쾌락 무감각증(anhedonia)'이라고 부른다. 한번 망가진 도파민 시스템은 회복하는 데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린다. 중독자들이 치료를 받다 다시 마약으로 돌아가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공허함 때문이다.
그렇다면 운동은 왜 효과적일까. 운동 역시 도파민을 분비시키기 때문이다.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존 레이티 교수는 2008년 저서 '운동화 신은 뇌'에서 유산소 운동이 도파민,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세 가지 신경전달물질을 동시에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 세 물질은 우울증 치료에 쓰이는 항우울제가 타깃으로 삼는 바로 그 화학물질들이다.
2023년 이란 테헤란 의과대학 연구팀이 마약 중독 회복 환자 12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12주간 주 3회 이상 유산소 운동을 병행한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재발률이 41.3% 낮았다. 특히 운동 후 느끼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는 뇌에서 내인성 아편유사물질인 엔도르핀과 함께 엔도카나비노이드가 분비되는 현상으로, 실제로 마약이 주는 도취감과 신경학적으로 유사한 경로를 사용한다. 뇌가 마약 없이도 스스로 쾌감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증거다.
서울 강남구 중독관리센터에서 치료를 받은 30대 남성 A씨는 "처음에는 자전거를 탈 때 아무 느낌도 없었다"며
2주가 지나자 땀 흘리고 나서 기분이 좋아지는 게 느껴졌고
그게 마약을 다시 찾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이나마 밀어냈다
고 전했다.
입원 환자의 90%가 운동 치료 효과를 경험했다는 수치는 고무적이지만, 냉정하게 볼 필요도 있다. '효과를 경험했다'는 것이 '완전히 회복했다'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신윤미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운동은 중독 치료의 보조 수단으로서 매우 유망하지만
단독으로 약물 치료와 심리 상담을 대체할 수는 없다
고 강조한다. 운동은 뇌의 보상 시스템을 서서히 재건하는 역할을 하며
이 과정에서 전문적인 치료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운동 치료가 주목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기존 약물 치료나 인지행동치료가 '갈망을 억누르는 방식'이라면, 운동은 뇌가 다시 자연스러운 쾌감을 느끼도록 회로를 직접 재훈련시키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중독 심리학에서는 이를 '대안 강화(alternative reinforcement)'라고 부른다. 마약이 주던 자리를 건강한 자극으로 채워가는 과정이다.
마약 관련 사건이 급증하고 있는 지금, 중독은 '의지 부족'이 아니라 '뇌 질환'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운동이라는 단순한 행동이 망가진 뇌 회로를 다시 연결할 수 있다는 사실은,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믿는 중독자와 그 가족들에게 작지만 확실한 희망이 된다.
마약 중독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사실 이 원리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된다. 스마트폰 과사용, 도박, 과식, 과음처럼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행동 중독들도 결국 같은 도파민 회로를 과자극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습관처럼 유튜브를 켜거나 배달 앱을 열 때마다 뇌는 마약과 같은 원리로 보상을 학습한다.
미국 스탠퍼드대 의과대학 신경과학자 앤드류 후버먼 교수는
하루 30분
주 5회 이상의 유산소 운동이 도파민 기저 수준을 높이고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에서 더 큰 만족감을 느끼게 한다
고 설명한다. 운동이 삶 전체의 쾌감 역치를 건강하게 조율하는 셈이다.
오늘 무기력하거나, 자꾸 스마트폰에 손이 간다면, 운동화 끈을 묶어보는 건 어떨까. 뇌는 생각보다 훨씬 유연하다. 그리고 그 변화는 아주 작은 달리기 한 번에서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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