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새벽부터 명품 매장 앞에 줄을 선다. 한편에서는 다이소 한정판이 품절 대란을 일으킨다. 뉴스에선 경기 침체를 걱정하는데, 소비자들의 지갑은 오히려 더 빠르게 열리고 있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지갑이 얇아질수록 더 비싼 것을 사고, 더 싼 것을 쓸어 담는 이 역설적인 현상 뒤에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심리학의 비밀이 숨어 있다.
미국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의 마우로 기옌 교수는 2023년 연구에서 경제적 불안감이 높아질수록 소비자들이 '상징적 가치'가 큰 제품에 더 강하게 이끌린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미래가 불투명할 때 인간은 지금 당장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통해 심리적 안정을 얻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공포 관리 이론(Terror Management Theory)'으로 설명한다. 죽음이나 실패, 통제 불능이라는 공포에 직면했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상징물에 집착하게 된다. 명품 가방 하나가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라 '나는 아직 괜찮다'는 심리적 방어막 역할을 하는 셈이다.
실제로 시장조사 전문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최근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58.3%가 '경제적으로 불안할 때 오히려 특별한 소비를 통해 기분을 전환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막연한 불안을 물건으로 달래려는 심리가 생각보다 훨씬 보편적인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명품 오픈런과 다이소 품절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이 두 현상은 겉으로 보면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심리학적으로는 같은 뿌리를 두고 있다. 켄트 대학교 소비자심리학과 폴 몰 교수가 2022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경제적 불확실성 앞에서 사람들은 '최고'와 '최저' 양 극단으로 소비를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 중간 가격대 제품이 외면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가 명품을 구매할 때는 'SNS에서 인정받고 싶다'는 사회적 비교 심리가 작동한다.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의 레슬리 존 교수는 소셜미디어 노출이 잦을수록 자신의 소비를 타인에게 전시하려는 욕구가 강해진다고 분석했다. 팔로워 수보다 '내가 가진 것'으로 존재를 증명하려는 시대가 된 것이다.
반면 다이소에서의 품절 대란은 '가성비'를 통한 또 다른 심리적 보상이다. '나는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자기 효능감을 확인하는 행위에 가깝다. 불안한 세상에서 작은 선택이라도 '잘한 것'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 그것이 1000원짜리 제품의 완판을 이끄는 힘이다.
문제는 이런 소비가 불안을 일시적으로 마취할 뿐이라는 점이다. 미국 인디애나 대학교 심리학과 쉬나 아이엔가 교수의 연구팀은 2021년 성인 800명을 대상으로 한 추적 연구에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충동구매 이후 평균 72시간 내에 죄책감과 공허감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뇌의 보상 회로가 새로운 자극에 빠르게 적응하면서 같은 만족감을 얻으려면 더 큰 소비가 필요해지는 악순환이 생겨난다.
이른바 '도파민 쇼핑' 패턴이다. 클릭 한 번, 결제 한 번에 도파민이 분비되지만 택배 상자가 도착하는 순간부터 그 만족감은 급격히 줄어든다. 불안의 원인은 사라지지 않았는데 카드값만 늘어나는 것이다.
특히 SNS를 통해 타인의 소비를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환경은 이 충동을 더욱 자극한다. '나만 뒤처지고 있다'는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 심리가 클릭을 앞당기는 것이다. 소비가 자아 표현의 수단이 되어버린 시대, 지갑과 마음의 괴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물론 모든 소비가 나쁜 것은 아니다. 심리학자들은 불안을 달래기 위한 소비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는 '소비 전 3분 멈추기'를 권한다. 지금 사려는 이유가 정말 이 물건이 필요해서인지, 아니면 지금 이 순간의 불안을 피하고 싶어서인지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보는 것이다. 연세대 심리학과 서은국 교수는 '행복은 소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관계에서 온다'고 강조한다.
오늘 쇼핑 앱을 열기 전에 잠깐 멈춰 보는 건 어떨까. 그 불안이 진짜 원하는 것을 가리고 있는 건 아닌지, 장바구니 대신 가까운 사람에게 연락을 한 통 먼저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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