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사건 5건 중 1건에 ‘전조‘가 있었다…우리가 놓친 신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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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사건 5건 중 1건에 '전조'가 있었다…우리가 놓친 신호들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살인 사건 5건 중 1건에 '전조'가 있었다…우리가 놓친 신호들


뉴스를 보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왜 이렇게 될 때까지 아무도 몰랐을까.' 피해자는 이미 여러 차례 신고했고, 주변에 두려움을 호소했는데, 결국 최악의 결과가 벌어졌다는 소식이다.


최근 경찰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발생한 살인 사건 669건 중 140건, 즉 20.9%에서 가정폭력이나 스토킹 같은 선행 범죄가 먼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5건 중 1건꼴이다. 전조가 있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왜 막지 못했을까. 심리학은 이 질문에 불편하지만 명확한 답을 내놓는다.



위험 신호를 '별일 아닌 것'으로 보는 이유: 정상화 편향의 함정


심리학에서 '정상화 편향(Normalcy Bias)'이라는 개념이 있다. 위험한 상황이 닥쳐도 뇌가 '이 정도는 괜찮을 거야'라고 축소 해석하는 경향을 말한다. 이 편향은 피해자 본인뿐 아니라 주변인, 심지어 대응 기관에서도 작동한다. 낯선 위기 신호를 익숙한 '일상'의 틀에 끼워 맞추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심리학자 다니엘 레빗 캘리포니아주립대 롱비치캠퍼스 심리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반복적으로 위협에 노출된 사람은 그 위협의 심각성을 점점 낮게 평가하게 된다. 처음엔 공포로 받아들이던 협박 문자가, 열 번째쯤 되면 '또 저러네'로 둔감해진다는 것이다. 이 둔감화는 피해자가 신고를 포기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가해자가 이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기도 한다. 폭력과 사과를 반복하는 '허니문 사이클'을 통해 피해자의 위기 감지 능력을 서서히 마비시키는 것이다. 관계에서 벌어지는 이 반복 패턴이야말로, 외부에서 '왜 진작 떠나지 않았을까'라고 묻는 질문이 얼마나 무지한지를 보여준다.



가해자의 머릿속: 통제욕이 폭력으로 가는 심리적 경로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스토킹에는 공통된 심리 구조가 있다. 바로 '친밀한 파트너 폭력(Intimate Partner Violence, IPV)'의 핵심 동력인 통제욕이다. 존슨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마이클 존슨의 연구에 따르면, IPV 가해자의 상당수는 '강압적 통제형' 패턴을 보이며 폭력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상대를 지배하려는 수단으로 폭력을 선택한다.


이들의 뇌에서는 상대방을 독립된 인격체가 아닌 '소유물'로 인식하는 인지 왜곡이 작동한다. 특히 관계가 끊기거나 끊길 것 같다는 신호, 즉 이별 통보나 신고 등이 이들에게는 통제력 상실로 받아들여진다. 2024년 범죄심리학 저널에 발표된 연구에서 IPV 가해자 중 41.3%가 피해자의 이별 선언 직후 가장 심각한 폭력을 행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이별 후 폭력 급증(Separation Violence)' 현상이다.


이것이 바로 피해자가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기도 한 이유다. '그냥 떠나면 되잖아'는 정답이 아니다. 탈출 시도 자체가 가해자의 폭력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리는 방아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고해도 왜 막지 못했나: 제도와 심리 사이의 간극


피해자가 여러 차례 신고했음에도 비극이 반복되는 이유를 단순히 제도의 허점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여기에는 '위험성 평가(Risk Assessment)'의 심리적 오류도 크게 작용한다. 위험을 평가하는 사람들도 사람이기에, 눈앞에 보이는 피해자가 '지금 당장 괜찮아 보인다'면 위험 수위를 낮게 판단하는 경향이 생긴다.


영국 캠브리지대 범죄학과 로렌스 셔만 교수는 2020년 연구에서, 가정폭력 피해자의 신고 중 실제 위험도가 높은 경우는 절반 이상이지만 현장 경찰관이 '고위험'으로 분류한 경우는 28.7%에 그쳤다고 밝혔다. 피해자의 공포와 대응자의 위험 인식 사이에 40% 가까운 간극이 존재하는 셈이다.


또한 피해자 스스로도 '신고하면 더 화나게 만드는 것 아닐까', '내가 과민반응하는 건 아닐까'라는 자기 의심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장기간 폭력에 노출되면서 생기는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셀리그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심리학과 교수 마틴 셀리그먼이 제시한 이 개념은, 반복된 실패 경험이 '어떻게 해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심리적 마비를 만든다는 것을 설명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주변을 읽는 능력이 생명을 구한다


전조를 알아채는 것은 전문가만의 영역이 아니다. 주변 사람이 갑자기 연락을 끊거나, 파트너 눈치를 과도하게 보거나, 몸에 설명하기 어려운 상처가 생기거나, '요즘 좀 무섭다'는 말을 흘린다면 그냥 지나치지 말아야 한다. 미국 국립가정폭력핫라인은 이러한 신호들을 '조기 경보 지표'로 정의하고, 주변인이 이를 포착해 연결해주는 역할이 피해자 보호에 결정적임을 강조한다.


피해자에게 직접 '왜 떠나지 않냐'고 묻는 것보다 '네 옆에 있을게'라고 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판단하지 않고 곁에 있어 주는 것, 그 자체가 피해자가 다시 도움을 요청할 용기를 만들어 준다. 오늘 문득 걱정되는 사람이 떠올랐다면, 안부 한 마디를 건네는 것으로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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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10-26 08: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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