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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좋아하는 가수가 연애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가슴 한켠이 철렁 내려앉은 경험이 있는가. 그것이 질투인지, 배신감인지, 아니면 단순한 실망인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운 그 감정 말이다.
일본 연예계에서는 30살이 넘은 아이돌에게도 '연애 금지'가 암묵적 규칙처럼 통용되고, 팬들은 스캔들이 터지면 공개적으로 탈덕을 선언하거나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단순한 팬심의 문제일까. 심리학은 이 현상의 뿌리가 훨씬 더 깊은 곳에 있다고 말한다.
심리학에는 '준사회적 관계(parasocial relationship)'라는 개념이 있다. 1956년 도널드 호턴과 리처드 월 미국 시카고대 사회학과 교수가 처음 제안한 이 개념은, 미디어를 통해 일방적으로 접하는 유명인에게 마치 실제 인간관계처럼 친밀감과 애착을 형성하는 현상을 말한다. 팬이 아이돌의 일상 브이로그를 보고, 유료 팬 채팅으로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며, 생일 서포트를 준비할 때 뇌는 이것을 '진짜 관계'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이 관계가 깊어질수록 상대방의 연애 소식이 실제 이별 통보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크리스티나 스완손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이 2021년 성인 65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준사회적 관계의 강도가 높을수록 해당 유명인이 연인과 함께 찍힌 사진을 보았을 때 피험자의 코르티솔 수치가 평균 28.4% 상승했다. 몸이 실제 스트레스로 반응하는 것이다.
특히 팬덤 문화가 고도로 발전한 한국과 일본에서는 아이돌이 팬과의 '가상 친밀감'을 유지하는 것이 수익 모델로 연결된다. 유료 구독 플랫폼, 팬 미팅, 개인 메시지 서비스가 이 감정을 상업적으로 강화하는 구조다. 팬이 '나만 바라봐야 한다'는 소유 감정을 갖게 되는 배경에는 산업 구조 자체가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팬들이 아이돌에게 연애 금지를 요구하는 또 다른 심리적 기제는 '이상화(idealization)'와 '투사(projection)'다. 사람은 강렬하게 좋아하는 대상에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속성을 덧씌운다. '저 사람은 나를 이해해줄 것 같아', '나와 잘 맞을 것 같아'라는 감정이 바로 투사다.
레슬리 베이커 영국 노팅엄대 심리학과 교수는 2019년 발표한 논문에서 팬과 아이돌 사이의 이상화 정도를 측정했다. 10대 팬 1200명을 대상으로 한 이 연구에서 응답자의 61.7%가 좋아하는 아이돌을 '나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묘사했다. 실제로 만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연애 소식이 배신감으로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팬이 구축한 '나만을 위한 완벽한 존재'라는 이미지가 한순간에 무너지기 때문이다.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이상화 붕괴(idealization collapse)'는 단순한 실망이 아니라 자아 정체성의 일부가 흔들리는 경험에 가깝다. 아이돌이라는 존재에 자신의 감정과 자존감을 상당 부분 기대고 있던 팬에게는, 스캔들이 곧 심리적 위기로 이어지는 것이다.
팬들이 아이돌의 사생활 통제를 당연하게 여기는 데는 '심리적 소유감(psychological ownership)'이라는 개념이 작동한다. 미국 플로리다대 경영심리학과 존 피어스 명예교수는 사람이 어떤 대상에 시간, 돈, 감정을 투자하면 실제 소유권이 없어도 '내 것'이라는 감각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앨범을 수십 장 구매하고, 콘서트 티켓을 위해 밤새 줄을 서고, 생일 광고를 제작비로 수백만 원을 쏟아부은 팬이 '나는 이 아이돌에게 투자했다'는 소유 감각을 갖게 되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문제는 이 소유 감각이 타인의 기본권인 연애와 결혼에까지 확장될 때다. '내가 이만큼 응원했는데 왜 딴 사람을 만나느냐'는 논리는, 경제적 투자가 인격 통제로 둔갑하는 순간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팬덤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소비자 권리 착각'으로 분류한다. 팬과 아이돌 사이에는 어떤 계약도, 어떤 관계도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흐릿해지는 것이다.
나아가 이런 통제 심리는 사회적 고립감이나 현실 관계에서의 결핍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아이다 엠레 터키 코치대 임상심리학과 교수가 2022년 발표한 연구에서, 준사회적 관계 의존도가 높은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현실 친밀관계 만족도가 평균 34.1%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돌에게 집착할수록 현실 관계가 더 공허해지는 악순환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물론 팬덤이 주는 즐거움과 소속감은 실재하며 긍정적인 기능도 크다. 같은 대상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형성되는 유대감, 취미로서의 문화 소비, 응원이 주는 순수한 기쁨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 심리학이 문제 삼는 것은 팬심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타인의 삶을 통제하려는 욕구로 변질될 때다.
좋아하는 감정은 본래 주는 것이다. 상대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 상대의 선택을 존중하는 마음이 건강한 팬심의 기반이다. 좋아하는 사람의 연애 소식에 마음 한켠이 쓸쓸해지는 건 인간적인 감정이지만, 그 감정을 상대에게 향한 요구로 바꾸는 순간 관계는 일방적인 통제가 된다. 오늘 좋아하는 아이돌의 소식에 마음이 흔들렸다면, 그 감정이 나에 대한 이야기인지 잠깐 들여다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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