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인류 멸망시킬 것 같아서"…퇴직연금 10년째 안 넣는 전문가의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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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AI가 인류 멸망시킬 것 같아서"…퇴직연금 10년째 안 넣는 전문가의 심리


노후를 위해 퇴직연금을 붓는 건 어른이 되면 당연히 해야 할 일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구글 출신의 AI 전문가가 10년째 퇴직연금을 납입하지 않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어차피 AI가 인류를 멸망시킬 것 같아서'라는 것이다.


황당한 농담처럼 들리지만, 이 전문가는 진심이다. AI 안전 연구자인 코너 리어든은 초지능 AI가 통제 불가능해질 경우 인류에게 실존적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믿으며, 그 믿음에 따라 실제 재정 결정까지 바꿨다. 심리학자들은 이 사례에서 흥미로운 인지 패턴을 발견한다. 과연 어떤 심리가 작동하고 있는 걸까.



종말 불안과 통제 불능 공포: 미래가 없다고 느낄 때 인간의 뇌는 어떻게 반응하나


리어든의 행동은 심리학에서 '실존적 불안(existential anxiety)'이라 불리는 상태와 맞닿아 있다. 실존적 불안이란 단순한 걱정을 넘어, 자신의 존재와 미래 자체가 위협받는다는 근원적인 두려움이다. 미국 심리학자 어빈 얄롬 스탠퍼드대 정신의학과 명예교수는 실존적 불안이 죽음, 자유, 고립, 무의미함이라는 네 가지 핵심 주제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AI 종말론은 이 네 가지를 한꺼번에 건드린다.


뇌과학적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인간의 뇌는 통제할 수 없는 위협에 특히 강하게 반응한다. 이탈리아 볼로냐대 심리학과 레나토 루지에리 교수 연구팀이 2021년 성인 48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는 위험에 대해 인간은 실제 위험 가능성이 낮아도 훨씬 더 강렬한 공포 반응을 보였다. AI의 경우 그 작동 방식 자체가 불투명하고 예측이 어렵기 때문에, 이 공포가 더욱 증폭되는 것이다.


리어든처럼 AI를 직접 개발하고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오히려 더 큰 불안을 느끼는 현상도 주목할 만하다. 알면 알수록 더 두려워지는 이 역설은 심리학에서 '전문가 취약성(expert vulnerability)'으로 설명된다. 내부를 들여다볼수록 시스템의 허점과 위험이 더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믿음이 행동을 바꾼다: 인지적 일관성 유지의 심리학


퇴직연금을 납입하지 않는 행동은 단순한 체념이 아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적 일관성(cognitive consistency)'을 유지하려는 욕구로 해석한다. 사람은 자신의 믿음과 행동이 불일치할 때 심리적 불편함, 즉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를 경험한다. 레온 페스팅거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가 1957년 처음 제안한 이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이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믿음을 행동에 맞추거나 행동을 믿음에 맞춘다.


리어든의 경우 '미래가 없다'는 믿음과 '미래를 위해 저축한다'는 행동 사이의 간극을 해소하기 위해, 저축을 중단하는 쪽을 선택한 셈이다. 그는 이 믿음을 체스 세계 챔피언 마그누스 칼센과의 내기로도 표현했다. 2030년까지 AI 안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칼센이 이기는 내기다. 자신의 불안을 대외적으로 선언함으로써 믿음을 더욱 공고히 하는 '공개적 헌신(public commitment)' 전략이기도 하다.


이런 행동 패턴은 리어든만의 특이한 사례가 아니다. 2023년 미국 퓨리서치센터가 성인 1만 10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38%가 AI가 향후 20년 내 인류에게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불안 자체는 결코 소수의 감정이 아닌 것이다.



종말론적 사고의 두 얼굴: 동기 부여인가, 마비인가


AI 종말론에 집착하는 심리가 반드시 해롭기만 한 건 아니다. 임상심리학에서는 극단적 미래 시나리오를 상상하는 행위가 때로 강력한 동기 부여 원천이 된다고 본다. '방어적 비관주의(defensive pessimism)'라는 개념이 대표적이다. 낸시 캔터 럿거스대 심리학과 교수가 제안한 이 개념은, 최악의 결과를 미리 상상함으로써 그것을 막기 위해 더 열심히 행동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리어든이 AI 안전 연구에 헌신하는 동력도 여기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사고방식이 과도해지면 '학습된 무력감(learned helplessness)'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심리학과 교수가 1967년 제안한 이 개념은,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경우 실제로 변화를 만들 수 있을 때조차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심리적 마비 상태를 말한다. 퇴직연금을 포기하는 행동이 자기 보호를 위한 합리적 선택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미래 가능성 자체를 닫아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결국 AI에 대한 불안은 느끼되, 그 불안이 일상의 합리적 선택까지 왜곡하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불확실성 내성(tolerance for uncertainty)'을 기르는 훈련으로 접근한다.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는 것이 심리적 건강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나는 AI를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을까: 불안과 함께 사는 법


AI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그 변화 속에서 막연한 불안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다만 그 불안이 퇴직연금을 끊거나, 중요한 결정을 미루거나, 일상적인 계획 자체를 포기하게 만든다면 한 번쯤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심리학자들은 불안을 다스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로 '구체화'를 꼽는다. 두루뭉술하게 '세상이 망할 것 같다'는 공포 대신, '내가 실제로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종이에 나눠 써보는 것만으로도 뇌의 경보 반응이 상당히 낮아진다는 것이다. 오늘 퇴직연금 앱을 열어보는 작은 행동, 그것이 미래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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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10-28 09:2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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