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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싶은 마음은 모든 부모가 같다. 그런데 어쩐지 '우리 집엔 도서관이 멀다', '퇴근하고 나면 지쳐서 힘들다'는 말이 입에서 먼저 나올 때, 그 미안함은 생각보다 오래 마음 한구석에 남는다.
최근 육아정책연구소가 발표한 'AI 시대 독서국가추진을 위한 영유아 독서교육 모델 연구'에 따르면 소득 상위 집단 아이의 월평균 도서관 이용 독서량은 11.8권이었다. 반면 소득 하위 집단은 4.7권에 그쳤다. 단순한 숫자 차이가 아니다. 심리학과 뇌과학은 이 격차가 아이의 인지 발달과 정서 조절 능력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글자를 해독하는 것 이상이다. 수산 네빌 미국 오리건대학교 신경과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어린 시절 풍부한 독서 경험을 가진 아이들은 언어 처리를 담당하는 좌측 전두엽과 측두엽의 활성도가 유의미하게 높았다. 특히 만 3세 이전의 언어 자극이 이 영역의 신경 회로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이 핵심이다.
미국 신시내티 아동병원의 존 허튼 박사 연구팀은 3세에서 5세 사이 아동 47명을 대상으로 fMRI 뇌 영상을 분석했다. 그 결과 부모와 함께 책을 자주 읽은 아이일수록 이야기를 이해하고 상상력을 활용하는 뇌 영역인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더 활발하게 작동했다. 단순히 '공부 잘하는 아이'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입과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는 능력 자체가 길러지는 셈이다.
소득에 따른 독서량 격차가 무서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책을 덜 접한 아이는 지식이 부족한 게 아니라, 뇌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자체가 다르게 발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격차를 단순히 '책 살 돈이 없어서'로 설명하는 건 너무 좁은 시각이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교육대학원의 캐서린 스노 교수는 저소득 가정 아이들의 독서 격차를 30년 이상 추적한 결과, 가장 결정적인 변수는 '부모와 함께 책을 보며 대화한 시간의 양'이었다고 밝혔다. 책 한 권을 읽더라도 부모가 옆에서 '이 토끼는 왜 울고 있을까?'라고 질문을 건네는 행위 자체가 아이의 언어 발달과 정서 조절을 동시에 촉진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소득이 낮을수록 부모의 여가 시간이 줄어든다는 현실이다. 두 가지 이상의 일을 병행하거나 야근이 잦은 환경에서는 아이와 책 읽을 30분을 내기가 쉽지 않다. 이는 개인의 의지 부족이 아니라 구조적인 시간 빈곤의 문제다. 아이의 독서 격차는 결국 가정의 경제적 자원보다 시간 자원의 격차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매튜 효과'라는 심리학 개념이 겹친다. 성경의 '있는 자는 더 받고 없는 자는 더 잃는다'는 구절에서 따온 이 개념은, 초기 독서 경험이 풍부한 아이는 점점 더 읽기를 즐기게 되고 어휘와 이해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반면, 초기 경험이 부족한 아이는 읽기를 점점 더 어렵게 느끼는 악순환을 설명한다.
독서의 효과는 인지 발달에만 그치지 않는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교육학과의 테레사 로즈너리 교수 연구팀은 5세에서 7세 사이 아동 200명을 두 집단으로 나눠 8주간 실험을 진행했다. 한 집단은 부모와 매일 20분씩 그림책을 함께 읽었고, 다른 집단은 같은 시간 동안 TV 영상을 시청했다. 8주 후 그림책을 읽은 집단의 아이들은 또래 친구의 감정을 맞추는 공감 정확도가 31% 높아졌다. TV 집단에서는 유의미한 변화가 없었다.
책 속 등장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며 '아, 이 친구는 지금 슬프구나'라고 느끼는 과정이 곧 공감 훈련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아이가 훗날 친구 관계에서, 그리고 어른이 된 후 사회생활에서 발휘하는 정서 지능의 토대가 된다. 그림책은 그저 잠자리 루틴이 아니라, 아이의 감정 근육을 키우는 시간인 셈이다.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책의 두께나 권수가 아니라 '상호작용의 질'이다. 캐서린 스노 교수는 '대화형 독서(Dialogic Reading)'를 권장한다. 책을 읽어주는 대신 함께 보면서 '이 다음엔 어떻게 될 것 같아?', '너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라고 묻는 방식이다. 이 방식을 활용했을 때 아이의 언어 발달 속도가 6개월에서 1년 가량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서관이 멀고, 책을 살 여유가 넉넉지 않아도 괜찮다. 전국 공공도서관의 전자책 서비스나 어린이 전용 독서 앱을 활용하면 무료로 수백 권의 그림책을 접할 수 있다. 퇴근 후 단 15분, 스마트폰 화면을 그림책 화면으로 바꿔보는 것만으로 시작할 수 있다. 오늘 저녁 아이 옆에 앉아 '이 책에 나오는 강아지, 이름이 뭘 것 같아?'라고 한 마디 건네보는 건 어떨까. 그 질문 하나가 아이의 세계를 조금 더 넓혀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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