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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처음엔 그저 걱정이라고 생각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연락을 확인하고, 어디 있는지 물어보고, 친구를 만나지 말라고 했을 때도 '그만큼 나를 아끼는 거겠지'라고 넘겼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밖에 나가는 일이 무서워졌고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법무부가 최근 교제폭력 처벌 법안 개정안을 발표하며 위치 추적, 관계 강요, 반려동물 위협까지 스토킹 행위로 규정하겠다고 밝혔다. 폭행이나 상해가 발생하기 전 단계에서도 피해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이 법 개정이 주목받는 이유는 하나다. 지금껏 '사랑의 표현'으로 포장되어온 행위들이 사실은 명백한 심리적 지배였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위치를 수시로 확인하거나, 가족과 친구를 만나지 못하게 막거나, 반려동물을 해치겠다고 위협하는 행위. 이것들을 피해자 스스로 '집착', '과한 사랑'으로 오인하는 일이 빈번하다. 이 왜곡된 인식의 뿌리에는 뇌의 보상 시스템이 있다.
미국 럿거스대 인류학과 헬렌 피셔 교수는 낭만적 사랑에 빠진 사람의 뇌를 fMRI로 촬영한 연구에서 복측피개영역(VTA)과 측좌핵이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영역은 도파민을 분비하는 뇌의 보상회로 핵심부로, 코카인 중독자의 뇌와 동일한 패턴을 보였다. 즉 강렬한 집착 앞에서 뇌는 '위험'이 아닌 '보상'을 감지한다.
문제는 통제적 파트너가 달콤함과 위협을 번갈아 제공할 때 더 심각해진다. 예측 불가능한 보상 패턴은 도파민 분비를 오히려 극대화한다는 것이 행동심리학의 오래된 발견이다. 피해자가 관계를 끊지 못하는 건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라, 뇌가 그 관계를 중독처럼 처리하고 있기 때문인 셈이다.
이번 법무부 개정안에서 새롭게 포함된 항목 중 눈에 띄는 것이 '관계 강요'다. 가족이나 친구를 만나지 못하게 막는 행위가 공식적으로 스토킹 범주에 들어간 것이다. 이는 심리학에서 '코어시브 컨트롤(Coercive Control)', 즉 강압적 통제로 오래전부터 연구되어온 개념이다.
영국 더럼대 심리학과 엘리자베스 빌링스 연구팀이 2022년 피해자 82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신체 폭력보다 강압적 통제를 경험한 피해자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발생률이 41.3% 더 높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심리적 지배가 신체 폭력 못지않게, 때로는 그 이상으로 깊은 상처를 남긴다는 의미다.
가해자는 처음에 피해자의 사회적 관계망을 서서히 끊어낸다. 친구와의 약속을 방해하고, 가족과 갈등을 만들어내며, 결국 피해자가 의존할 수 있는 사람을 오직 자신만 남기는 방식이다. 이렇게 고립된 피해자는 스스로 '내가 잘못한 건 아닐까'라는 자기 의심에 빠지기 쉽다.
이번 개정안에 반려동물 위협이 별도 항목으로 포함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심리학적으로 이 행위는 피해자가 가장 취약한 감정 지점을 정조준하기 때문이다. 미국 센트럴플로리다대 사회복지학과 캐리 컨셀로스 교수 연구팀이 2021년 가정폭력 피해자 341명을 조사한 결과, 68.2%가 반려동물이 위험에 처할까봐 피해 현장을 떠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반려동물에 대한 애착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인간은 반려동물과의 관계에서도 옥시토신이 분비되며, 이 유대감은 가족 수준의 책임감과 보호 본능을 자극한다. 가해자는 이 점을 정확히 알고 활용한다. '네가 말을 안 들으면 저 애가 어떻게 될지 몰라'라는 위협은 피해자의 탈출 의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꺾는 수단이 된다.
이처럼 교제폭력의 심리적 구조는 한 가지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애정과 공포, 보상과 처벌이 정교하게 뒤섞이며 피해자의 판단력과 탈출 의지를 동시에 마비시킨다.
피해자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왜 진작 나오지 않았어요?'다. 하지만 심리학은 이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고 말한다. 마틴 셀리그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심리학과 교수가 처음 개념화한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은 반복적인 통제와 처벌에 노출된 개체가 결국 탈출 시도 자체를 포기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여기에 '트라우마 본딩(Trauma Bonding)', 즉 외상적 유대가 더해진다. 강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가해자에게 위로와 보호를 동시에 경험한 피해자는 역설적으로 가해자에게 더 강하게 의존하게 된다. 이는 의지의 약함이 아니라 뇌의 생존 기제가 작동한 결과다. 스웨덴 스톡홀름증후군 연구의 뿌리도 여기에 있다.
법이 바뀐다는 것은 중요한 신호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고 넘겼던 행동들이 사회적으로도 명백히 폭력임을 공식화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피해자 스스로 '내가 느끼는 두려움과 불편함은 틀리지 않았다'고 인식하는 첫 번째 계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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