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경기 결과에 돈을 걸었다가 잃었을 때, 그 화살이 선수에게 향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가디언이 보도한 WTA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여자 테니스 선수들을 향한 온라인 협박이 급증했고, 그 상당수가 스포츠 도박 손실과 연관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 영국 선수는 살해 위협을 받은 뒤 16개월 만에 코트에 복귀했다.
경기에서 진 선수도, 최선을 다한 선수도 아니다. 단지 베팅한 사람이 돈을 잃었다는 이유로 협박을 받는다. 대체 사람의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기에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심리학에는 '손실 회피(loss aversion)'라는 개념이 있다.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 미국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명예교수와 아모스 트버스키 교수가 1979년 발표한 연구에서 확인된 것으로, 사람은 같은 금액이라도 얻을 때 느끼는 기쁨보다 잃을 때 느끼는 고통을 약 2.5배 더 크게 경험한다. 10만 원을 얻는 기쁨과 10만 원을 잃는 고통은 결코 대칭이 아닌 셈이다.
스포츠 도박의 경우 이 손실 회피 효과가 더욱 극단적으로 증폭된다. 단순히 돈을 잃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예측했는데 틀렸다'는 자존심의 상처까지 겹치기 때문이다. 뇌의 편도체가 손실 신호를 받으면 즉각 위협 반응 모드로 전환되고, 이때 이성적 판단을 담당하는 전전두피질의 기능은 급격히 저하된다.
결국 이성은 뒷좌석으로 밀려나고, 감정이 운전대를 잡는다. 그 감정이 분노로 표출될 때 가장 가까운 표적, 즉 '내가 돈을 잃게 만든 원인'으로 지목된 선수에게 향하게 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외부 귀인(external attribution)'이라고 부른다. 나쁜 결과의 원인을 자신이 아닌 외부에서 찾으려는 심리적 방어기제다. 버나드 와이너 미국 UCLA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1985년 귀인 이론 연구에서 사람들이 실패를 경험할 때 자신의 판단 오류보다 외부 요인을 탓하는 경향이 훨씬 강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특히 자기효능감이 낮거나 도박 중독 성향이 있을수록 이 경향은 더 두드러졌다.
온라인이라는 익명성은 여기에 불을 붙인다. 2019년 오스트레일리아 퀸즐랜드대 연구팀이 성인 12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익명 상태의 피험자는 실명 상태보다 공격적 메시지를 보낼 확률이 34.7% 높았다. '내가 누군지 모른다'는 감각이 도덕적 억제력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결국 '돈을 잃었다'는 현실 고통, '나는 틀리지 않았다'는 자아 방어, 그리고 '어차피 들키지 않는다'는 익명성이 한꺼번에 맞물릴 때 협박이라는 극단적 행동이 나온다. 그것이 살아있는 인간을 향한다는 사실조차 뇌는 순간적으로 외면해버린다.
문제는 이런 반응이 단발성 분노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임상심리학자 나타샤 다우 슐 미국 뉴욕대 사회문화분석학과 교수는 도박 중독 연구에서 반복적 베팅 경험이 뇌의 도파민 보상 회로를 왜곡시킨다고 설명한다. 이기면 더 큰 베팅을 하고 싶어지고, 지면 본전을 찾으려는 충동이 올라온다. 이 사이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손실 시 공격성도 함께 올라간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19년 게임 장애에 이어 도박 장애를 국제질병분류(ICD-11)에 공식 등재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국내에서도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가 2024년 발표한 실태조사 결과, 성인의 5.1%가 도박 문제를 경험하고 있으며 이 중 고위험군에서 대인 갈등과 충동적 분노 표출 비율이 일반 집단 대비 3.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살해 협박을 받은 선수가 16개월 동안 코트에 서지 못했다는 사실은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일상, 커리어, 그리고 안전감이 완전히 무너진 시간이다.
온라인 협박을 받은 피해자는 단순히 '무서운 메시지를 받은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에밀리 드레셔 미국 조지타운대 심리학과 교수의 2022년 연구에서 온라인 살해 협박을 경험한 피험자의 68.3%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상을 보였고, 51.8%는 협박 이후 6개월 이상 일상생활에 현저한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자신의 이름과 직업이 공개된 공인에게 가해지는 협박은 도망칠 곳이 없다는 점에서 피해 강도가 더 크다.
우리는 종종 '그냥 무시하면 되지 않냐'고 생각한다. 하지만 뇌는 위협 신호를 무시하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다. 한 번 각인된 공포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경기 결과 하나에 익명의 누군가가 삶 전체를 흔들 수 있다는 현실은 선수들의 경기력뿐 아니라 스포츠 자체를 병들게 한다.
오늘 경기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 감정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 감정의 주인은 나 자신이지, 코트 위의 선수가 아니다. 베팅 결과로 흔들리는 나의 마음을 돌아보는 것이 먼저다. 혹시 주변에 스포츠 도박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1336)에 조용히 번호를 건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시작이 될 수 있다.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psytimes.co.kr/news/view.php?idx=13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