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연우
[한국심리학신문=신연우 ]

우리는 왜 같은 사건을 다 다르게 기억할까?
전 세계에서 일어난 커다란 사건—예를 들어 9·11 테러, 코로나19 확산, 혹은 BTS의 그래미 노미네이션—에 대해 사람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기억한다. 어떤 사람은 ‘그날 아침 뉴스를 본 순간’을 또렷이 떠올리고, 또 어떤 사람은 ‘그 소식을 친구들과 나눈 대화’를 더 선명히 기억한다.
왜 같은 사건을 두고도 기억의 초점이 이렇게 다를까?
그 이유는 단순한 개인차를 넘어, 문화적 배경의 차이 때문일 수 있다. 심리학의 사회문화적 접근은 인간이 환경, 특히 문화라는 집단적 틀 속에서 형성된 존재임을 전제로 한다. 우리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어떤 행동이 적절한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자라온 문화 속에서 학습한 것이다.
그리고 이 문화는 어느 날 갑자기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엔컬처레이션(enculturation)’ 과정을 통해 내면화된다.
엔컬처레이션은 한 개인이 자신이 속한 사회와 문화의 가치, 규범, 행동 방식을 지속적으로 배우고 내면화하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어른 앞에서는 예의 바르게 말해야 해”, “남자는 울면 안 돼”, “손님이 오면 밥부터 대접해야지” 같은 말들은 모두 어린 시절부터 부모나 교사, 또래를 통해 배운 문화 규범이다.
이러한 학습은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1. 직접적인 지시(Direct tuition): “이건 안 돼”, “이렇게 해”라는 말처럼 명시적으로 가르치는 방식
2. 사회적 관찰 학습(Social cognitive learning): 주변 어른들의 행동을 보고 자연스럽게 따라하는 방식
3. 참여적 학습(Participatory learning): 실제 상황에 참여하며 스스로 익히는 방식
이러한 방식은 정체성, 사고방식, 감정 반응까지도 형성한다. 즉,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아 개념 역시 문화 속에서 정의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문화는 단지 외부 환경이 아니라, 나를 구성하는 내면의 일부라 할 수 있다.이 과정은 직접적인 가르침뿐만 아니라 관찰, 언어, 경험 공유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문화 학습은 단순히 행동 양식을 형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개인의 정체성과 기억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Kulkofsky의 연구
이러한 이론을 바탕으로, Kulkofsky et al. (2011)은 문화가 개인의 기억과 감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연구를 진행하였다.연구는 미국, 영국, 독일, 터키, 중국 등 서로 다른 문화권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하였으며, 플래시벌브 기억(flashbulb memory)에 초점을 맞췄다. 플래시벌브 기억은 매우 강렬한 감정 반응을 동반하는 사건에 대해 언제, 어디서, 누구와 있었는지까지 생생하게 기억하는 현상을 의미한다.참가자들은 지난 1년간의 개인적인 중대한 사건을 떠올리도록 요청받았으며, 그 사건에 대한 세부 기억(정보를 처음 알게 된 방법, 감정 반응, 주변 사람과의 대화 등)을 보고하였다. 그 결과, 문화에 따라 기억의 ‘내용’과 ‘형태’가 확연히 달랐다.
개인주의 문화(미국, 영국 등)의 참가자들은 그 사건이 자기 정체성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더 강조하고, 주변 사람들과 더 자주 공유하였다. 이는 ‘개인의 독립성’과 ‘자기표현’을 중요시하는 문화적 가치관과 연결된다.
집단주의 문화(중국, 터키 등)의 참가자들은 가족이나 공동체의 반응, 사회적 맥락을 중심으로 사건을 기억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나’보다 ‘우리’였다.이 연구는 기억조차도 문화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구성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왜 기억하는가는 문화적 배경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문화는 정체성에 큰 기여를 한다
기억은 단순한 과거의 저장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이야기(narrative identity)를 구성하는 재료이다. 그렇기에 어떤 기억을 중심에 두고 어떤 경험을 반복적으로 떠올리는가는 곧 정체성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어떤 경험을 선택적으로 기억하고 중심화시키는 기준은 무엇일까? Kulkofsky의 연구는 그 기준이 문화적으로 결정된다는 점을 입증한다. 즉,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곧 우리가 자라온 문화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는 전례 없는 속도로 다양한 문화와 접촉하고 교류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해외 유학, 이민, SNS를 통한 글로벌 소통 등은 한 사람이 여러 문화에 동시에 영향을 받는 ‘다문화적 정체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문화의 영향을 이해하는 것은 개인의 정체성 혼란, 문화 충돌, 타문화 오해 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부모는 자녀가 자라며 미국식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것을 두려워할 수 있지만, 오히려 어떤 문화적 가치가 자녀의 사고에 스며드는지를 이해하면 더욱 건강한 정체성 형성을 지원할 수 있다. 또한, 학교 교육에서도 문화적으로 민감한 접근이 요구되며, 한 가지 기준의 교육이 모든 학생에게 동일하게 작용하지 않음을 인지해야 한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Kulkofsky의 연구는 그 자연스러움조차 문화라는 틀 안에서 형성된 것임을 일깨운다. 기억과 감정, 태도, 정체성은 모두 우리를 둘러싼 문화의 산물이다.따라서 자신과 타인의 차이를 이해하려면, 개인 너머의 문화적 배경을 읽어야 한다. 심리학은 바로 그 문화와 개인 사이의 보이지 않는 실을 풀어주는 열쇠가 되어 준다.
참고문헌
Bandura, A. (1986). Social foundations of thought and action: A social cognitive theory. Prentice-Hall.
Hofstede, G. (1995). Cultures and organizations: Software of the mind. McGraw-Hill.
Kulkofsky, S., Wang, Q., Conway, M. A., Hou, Y., Aydin, C., Johnson, T. M., & Williams, H. (2011). Cultural variation in the determinants of autobiographical memory for childhood events. Memory, 19(1), 47–60. https://doi.org/10.1080/09658211.2010.537279
※ 심리학에 대한 더 많은 정보는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에 방문해서 확인해보세요!
※ 심리학, 상담 관련 정보 찾을 때 유용한 사이트는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 심리학, 상담 정보 사이트도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 재미있는 심리학, 상담 이야기는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psytimes.co.kr/news/view.php?idx=10776
amyshin0705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