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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경기에서 지는 건 선수 탓이 아닐 수 있다. 그런데 요즘 미국에서는 경기 결과에 돈을 건 일부 이용자들이 선수 본인은 물론 그 가족에게까지 '손가락을 하나씩 잘라버리겠다'는 식의 살인적 협박을 쏟아내고 있다. 다저스의 에이스 투수가 6이닝 4실점으로 패전한 뒤 이런 협박 메시지를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미국 전역이 충격에 휩싸였다.
도대체 스포츠를 '즐기던' 사람들이 어쩌다 이런 폭언을 쏟아내게 됐을까. 단순히 나쁜 사람들이 늘어난 걸까, 아니면 스포츠 베팅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사람의 뇌를 바꿔놓은 걸까. 심리학은 분명한 답을 내놓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 미국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명예교수가 제시한 '손실 회피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같은 금액을 잃을 때 느끼는 고통이 같은 금액을 얻을 때 느끼는 기쁨보다 평균 2.5배 크다. 돈을 잃는 순간 뇌는 마치 신체적 위협을 받는 것처럼 반응한다는 것이다.
스포츠 베팅에서 돈을 잃은 직후의 뇌를 fMRI(기능적 자기공명영상)로 촬영한 연구들을 보면, 편도체(감정과 공포 반응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강렬하게 활성화되고 전두엽(이성적 판단 담당)의 활동은 급격히 떨어진다. 쉽게 말해, 이성의 브레이크가 풀리고 감정의 엑셀이 밟히는 상태다.
이 순간 사람은 분노의 출구를 찾는다. 자신의 판단 실수를 인정하기보다 외부 대상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이 심리적으로 훨씬 쉽기 때문이다. 경기에서 진 선수가 가장 손쉬운 표적이 된다.
필립 짐바르도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자신의 저서 '루시퍼 이펙트'에서 '몰개인화(deindividuation)' 개념을 설명했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환경에서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고,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을 거리낌 없이 저지른다는 이론이다. SNS 계정 뒤에 숨어 협박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들이 바로 이 상태에 놓여 있다.
2022년 미국 심리학회(APA)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온라인 스포츠 베팅 이용자 가운데 26.4%가 베팅 손실 직후 온라인에서 공격적 언행을 경험하거나 직접 저질렀다고 응답했다. 특히 손실 금액이 클수록 공격성의 강도가 높아지는 상관관계가 뚜렷했다. 화면 너머에 있는 선수가 실제 인간이라는 감각 자체가 희미해지는 것이다.
여기에 베팅 앱의 설계 방식도 한몫한다. 실시간으로 배당률이 바뀌고, 경기 중에도 베팅을 할 수 있는 구조는 도박 심리학에서 말하는 '간헐적 강화(intermittent reinforcement)'를 극대화한다. 간헐적 강화란 예측 불가능한 보상이 반복될수록 집착이 강해지는 심리로, 슬롯머신이 작동하는 원리와 정확히 같다.
원래 스포츠 팬은 선수를 응원하는 존재였다. 그런데 베팅이 끼어드는 순간, 선수는 응원의 대상에서 수익 창출의 도구로 전락한다. 스포츠 심리학자 크리스 아이어턴 미국 인디애나대 응용스포츠심리학과 교수는 2024년 발표한 논문에서 베팅 참여 팬과 비참여 팬의 선수 인식을 비교했다. 베팅 참여 팬의 61%가 경기 결과를 선수 개인의 책임으로 귀인하는 경향이 강했고, 비참여 팬은 같은 경향이 37%에 그쳤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기본적 귀인 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라고 부른다. 상황의 맥락을 무시하고 결과의 모든 원인을 특정 개인에게 돌리는 인지 편향이다. 투수가 패전한 건 타선의 지원 부족이나 불운한 수비 실수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베팅으로 돈을 잃은 사람의 뇌에는 오직 하나의 원인만 남는다.
문제는 이 현상이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국내에서도 스포츠토토 이용 규모가 2024년 기준 연간 5조 원을 넘어섰고, 불법 사설 베팅 시장은 그보다 훨씬 크다. 선수를 향한 악성 댓글 문제가 반복되는 배경에 이 구조가 없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베팅과 감정이 뒤엉키면 스포츠는 즐거움이 아닌 스트레스가 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결과 의존적 감정 조절(outcome-dependent emotion regulation)'이라 부르는데, 외부 결과에 기분 전체를 맡기는 패턴이 반복되면 불안과 충동조절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 도박 문제 지원기관 NCPG에 따르면, 스포츠 베팅 이용자의 14.8%가 문제적 도박 수준으로 진입한다.
경기 결과를 보며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면, 잠시 멈추고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지금 이 경기를 즐기고 있는가, 아니면 결과에 나를 저당 잡혀 있는가.' 선수는 우리의 기대를 채우기 위해 뛰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밀어붙이는 한 명의 인간이다. 오늘 좋아하는 팀의 경기를 보면서, 결과와 상관없이 그 과정을 즐길 수 있는지 한 번 시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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