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취업 준비를 그만뒀다. 연애도 접었다. 친구 만나는 것도 줄였다. 그렇다고 쉬고 있다는 말도 이상하게 느껴진다. 그냥, 멈춰 있는 것 같다. 요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런 고백이 넘쳐난다. '쉬었음 청년'이라는 말이 뉴스에 오르내리지만, 당사자들은 그 단어가 자신을 설명해 준다고 느끼지 못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5년 자료에 따르면 현재 취업도, 구직활동도 하지 않는 이른바 '쉬었음' 상태의 청년은 40만 명을 훌쩍 넘는다. 그런데 한 청년이 온라인에 올린 사연, '미래가 안 보여서 연애부터 포기했다'는 글이 수천 개의 공감을 받으며 퍼졌다. 왜 이렇게 많은 청년이 멈춰버린 걸까. 심리학은 그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 상태를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으로 설명한다. 마틴 셀리그만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심리학과 교수가 1967년 처음 제안한 개념으로, 반복된 실패와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놓인 사람이 결국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게 되는 심리 반응을 말한다. 취업 문을 두드릴수록 튕겨 나오는 경험이 쌓이면, 뇌는 '어차피 해도 안 된다'는 신호를 기본값으로 설정해버린다.
여기에 '미래 불확실성 회피(future uncertainty avoidance)' 심리가 겹친다. 불확실한 미래를 상상할 때 인간의 뇌는 실제 위협과 유사한 수준의 스트레스 반응을 일으킨다. 김지현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이 2023년 청년 52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67.3%가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릴 수 없다'고 답했고, 그중 절반 이상이 '그래서 단기 목표조차 세우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 되니, 생각을 멈추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이 상태는 게으름이나 의지 부족과는 다르다. 뇌가 극심한 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선택하는 일종의 자기방어 기제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에서는 끊임없이 불안과 싸우고 있는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청년들이 '포기'하는 순서다. 취업보다 연애를, 외출보다 인간관계를 먼저 정리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원 보존 이론(Conservation of Resources Theory)'으로 설명한다. 스티반 홉폴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심리학과 교수가 제안한 이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심리적 자원이 고갈될 위기에 처하면 가장 소모가 큰 영역부터 포기하는 방식으로 자원을 아낀다.
연애는 감정적 에너지를 많이 쓴다. 상대방에게 맞추고, 상처를 주고받고, 미래를 함께 그려야 한다. '미래가 없는데 누구를 만나겠냐'는 말은 감정적이 아니라 매우 합리적인 자기 보호 전략인 셈이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2024년 발간한 '트렌드 코리아' 보고서에서도 청년층의 관계 축소 현상을 '생존 최적화'의 일환으로 분석한 바 있다.
문제는 이 포기가 단기적 해소는 줄여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고립과 우울을 심화시킨다는 점이다. 사회적 연결이 줄수록 뇌의 보상 체계가 약해지고, 무기력은 더 깊어지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온라인에 올라온 한 청년의 사연이 삽시간에 퍼진 데는 심리학적 이유가 있다. 바로 '사회적 비교(social comparison)'와 '정상화 효과(normalization effect)'다. 사람은 자신의 경험이 비정상적이라고 느낄 때 가장 큰 심리적 고통을 받는다. '왜 나만 이럴까'라는 질문이 때로 취업 실패 자체보다 더 사람을 무너뜨린다.
누군가의 솔직한 고백이 '나도 그래'라는 공감을 끌어낼 때, 고립감이 일시적으로 해소된다. 최명기 서울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고립된 고통은 수치심을 동반하지만, 공유된 고통은 연대감을 만든다'고 설명한다. 온라인 공감이 치료는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이상한 게 아니었다'는 인식 전환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온라인 공감에 머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실질적인 연결과 지지로 이어지지 않으면, 공감의 효과는 금세 사라진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 온라인에서 만나 오프라인 소모임을 꾸리거나, 지역 청년센터의 심리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 더 지속적인 효과를 낸다.
학습된 무기력 상태에서 벗어나는 열쇠는 '큰 도전'이 아니다. 심리학 연구들은 일관되게 '작은 성공 경험의 축적'을 강조한다. 켈리 맥고니걸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 강사는 저서 '스트레스의 힘'에서 하루 한 가지 통제 가능한 행동을 실천하는 것이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을 회복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밝혔다. 집 밖에 나가 커피 한 잔을 사 마시는 것, 오랫동안 연락 못 했던 친구에게 짧은 메시지를 보내는 것, 그 정도로 충분하다.
정부와 지자체의 청년 심리지원 서비스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현재 전국 청년센터와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는 청년 대상 무료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혼자 버티지 않아도 된다. 멈춰 있는 것이 부끄러운 게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버티고 있다면, 이미 충분히 애쓰고 있는 것이다.
오늘, 딱 한 사람에게만 연락해보는 건 어떨까. '잘 지내?'라는 짧은 메시지 하나가 나를 위한 작은 첫걸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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