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왜 아직도 갖고 있어?
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한국심리학신문=강지은 ]


물건 하나를 쉽게 버리지 못해 서랍을 닫았다. 오래 입어 목이 늘어난 잠옷, 다 닳은 실내화, 겉은 헤졌지만 여전히 포근한 인형. 이제는 손이 가지 않는 예전에 좋아했던 물건들. 언젠가 한 번쯤은 “버릴까 말까”를 고민했지만 결국은 다시 제자리에 놓아두었다.


 

실용성은 사라졌는데 왜 우리는 이토록 어떤 물건에 집착하게 되는 걸까? 심리학은 이 질문에 “그 물건은 단지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우리가 손에 쥔 건 닳고 해진 사물이지만, 마음이 붙잡힌 것은 그 물건에 얽힌 기억과 감정이다.



감정을 품은 물건


 

영국의 소아정신과 의사 도널드 위니컷(D.W. Winnicott)은 어린아이가 인형이나 담요 같은 특정 물건에 강한 애착을 느끼는 현상을 전이 대상(transitional object)이라고 설명했다. 전이 대상은 어머니와의 분리 불안을 완화해주는 ‘심리적 중간다리’로 기능하며, 아이는 이 물건을 통해 독립을 연습하게 된다.

 

하지만 전이 대상은 단지 유아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성인이 되어서도 우리는 특정한 물건에 감정적 의미를 부여하며, 불안하거나 외로운 순간 그 물건을 찾는다. 유난히 편안하게 느껴지는 잠옷이나, 어린 시절부터 곁에 있던 인형이 대표적인 사례다. 누군가에게 그것은 ‘물건’이 아닌, 하나의 ‘안전기지’가 된다.



나를 지켜주는 정체성의 조각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오래된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정체성의 연속성(self-continuity)을 꼽는다. 이는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끊어지지 않고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으로, 우리가 일관된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심리적 조건이다.

 

버리지 못하는 물건 속에는 그 시절의 내가 담겨 있다. 초등학교 시절 쓰던 일기장, 첫 해외여행에서 산 기념품, 대학 새내기 시절 친구들과 찍은 즉석 사진. 이 모든 물건은 ‘그때의 나’를 기억하게 만들고, 동시에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준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들을 쉽게 놓아줄 수 없다. 물건을 버리는 일은 곧 기억을 지우는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노스탤지어: 과거에 머무르는 감정의 안식처


 

노스탤지어(nostalgia)는 단순한 향수가 아니다. 이는 심리학적으로 ‘긍정적 자기 인식’과 관련이 깊은 정서로, 외부 상황이 불안정할 때 자신을 위로하고 회복하게 하는 정서적 자원이다. 과거의 물건을 간직하고 바라보는 행위는 노스탤지어를 유발하고, 이는 다시 정서적 안정감을 불러일으킨다.

 

정서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을수록 사람들은 자신에게 감정적으로 의미 있는 물건을 더욱 자주 찾게 된다. 어릴 적에 좋아했던 인형, 좋아하던 캐릭터 스티커, 작은 목걸이 하나가 마음의 불안과 스트레스를 완화시켜주는 것이다.

 


추억과 실용 사이에서


 

무언가를 정리하려는 순간, 마음속에서는 미묘한 감정들이 충돌한다. "더는 쓰지 않잖아"라는 이성적인 판단과 "그래도 아깝다"는 감정의 목소리 사이에서 갈등이 시작된다. 이는 단순한 망설임이 아니라, 심리학적으로 의사결정 불안(decisional conflict)이라 불리는 현상이다. 우리가 물건 하나를 두고 이토록 고민하는 이유는, 그 물건이 단지 사물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선택의 결과로 나의 일부분을 잃는 듯한 감각이, 결국 결정을 유예하게 만든다.

 

실제로 심리학자 라셀 러스(Russell Belk)는 “사람들은 물건을 단순한 소유물이 아닌 자기 확장의 일부로 여긴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물건은 나의 감정, 기억, 과거, 꿈, 사람들과의 관계가 축적된 결과물이며, 결국 ‘나’의 일부가 된다.

 

예를 들어, 지금은 연락이 끊긴 친구가 생일에 써준 편지, 혹은 첫 아르바이트 때 산 손목시계. 이 물건들이 비록 기능은 잃었더라도, 나라는 사람의 서사와 연결된 상징물로서 존재감을 가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물건을 통해 스스로를 확인하고, 때로는 그 물건 속에서 ‘사라지지 않은 나’를 발견한다.

 


우리는 물건을 통해 마음을 돌본다


 

해진 잠옷을 여전히 입는 사람, 버려야 할 물건 앞에서 주저하는 사람, 오래된 인형을 침대 곁에 두는 사람. 이들은 모두 지나간 시간을 마음속에 고이 품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물건을 통해 감정을 기억하고, 기억을 통해 자아를 지켜낸다. 때로는 ‘지금은 쓰지 않는’ 그 물건들이야말로 가장 깊은 마음의 조각일지 모른다. 버릴 수 없어서가 아니라,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놓지 못하는 것. 그것은 아름다운 집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Winnicott, D. W. (1953). Transitional objects and transitional phenomena. International Journal of Psycho-Analysis, 34, 89-97.

Bluck, S., & Alea, N. (2008). Remembering being me: The self continuity function of autobiographical memory in younger and older adults. In F. Sani (Ed.), Self continuity: Individual and collective perspectives (pp. 55–70). Psychology Press.

Routledge, C., Arndt, J., Wildschut, T., Sedikides, C., Hart, C. M., Juhl, J., & Schlotz, W. (2011). The past makes the present meaningful: Nostalgia as an existential resourc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01(3), 638–652.




※ 심리학에 대한 더 많은 정보는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에 방문해서 확인해보세요!

※ 심리학, 상담 관련 정보 찾을 때 유용한 사이트는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 심리학, 상담 정보 사이트도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 재미있는 심리학, 상담 이야기는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psytimes.co.kr/news/view.php?idx=10784
  • 기사등록 2025-08-12 08:14:28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