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서재

전투가 끝난 건 해가 기울 무렵이었다.
총성이 멎은 들판 위로는 고요한 정적만이 남았다.
하지만 그 정적은 결코 평화로운 것이 아니었다.
죽음이 남긴 흔적은, 침묵 속에서 더 크게 울려 퍼졌다.
도윤은 아직 엎드린 채였다.
등에 맺힌 땀이 식으면서, 한기가 몰려왔다.
손에 쥔 총은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자신이 쏘았는지, 맞췄는지도 모른다.
바닥엔 붉은 흙과 피가 뒤섞여 있었다.
그의 옆엔 쓰러진 병사, 이름은 ‘이상우’.
훈련소에서 몇 번 마주쳤던 조용한 얼굴.
지금은 입을 반쯤 벌린 채, 멈춰 있었다.
“상우야…”
도윤은 중얼거렸다.
숨이 멎은 줄 알았던 상우의 눈이 살짝 떨리는 것 같았다.
도윤은 재빨리 몸을 일으켜 상우에게 다가갔다.
가슴에 손을 얹었다.
심장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우! 상우야!”
도윤의 외침에 주변 병사들이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였고,
누군가는 그저 입술을 깨물었다.
간호병이 달려와 무릎을 꿇고 호흡을 확인했다.
그의 고개가 천천히 좌우로 흔들렸다.
살아남지 못했다는 신호.
도윤은 주저앉았다.
가슴이 먹먹했다.
그리 친했던 것도 아닌데, 왜 이리 아픈 걸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속이 뒤틀릴 듯 아팠다.
누군가 도윤의 어깨를 잡았다.
세진이었다.
세진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시작이야.”
그 말은 위로가 아니었다.
경고였고, 현실이었다.
밤이 되자, 부대는 폐허가 된 민가에 잠시 진지를 꾸렸다.
담 없는 마당, 깨어진 기왓장, 그리고 재가 된 나무들.
도윤은 마당 구석에 앉아 불 꺼진 하늘을 바라봤다.
한 명씩 돌아가며 망을 서기로 했다.
그날 밤 도윤의 차례는 새벽 두 시.
세진이 먼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도윤아.”
“응.”
“난… 무서워.”
세진이 조용히 말했다.
군인은 절대 말하지 않을 것 같은 그 한마디.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공포는 서로가 이미 알고 있었다.
잠시 뒤, 세진이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작은 종이에 싸인 무언가였다.
구겨진 편지.
세진은 그것을 도윤에게 내밀었다.
“이거… 혹시 모르니까. 나 죽으면 좀 전해줘.”
도윤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 하지 마.”
“진심이야. 내가 못 살아남을 수도 있으니까.”
그 말이 낯설지 않았다.
오늘 낮에 도윤이 본 상우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이제 이 전쟁은 그런 현실이었다.
도윤은 천천히 편지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 손이, 무겁게 떨렸다.
작가의 말 :
4화는 전투 직후, 전우를 잃은 뒤 겪는 심리적 충격과 상실을 담았습니다.
죽음은 어느 순간에도 갑작스럽게 찾아오고,
남겨진 자들은 그 무게를 짊어진 채 살아가야 하죠.
다음 화에서는 ‘내가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심리적 혼란 속에서
도윤이 자신의 정체성과 인간성의 경계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드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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