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빈
[한국심리학신문=채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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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별 감정이 없었는데, 자꾸 보니까 좋아졌어."
아마 한 번쯤은 이런 말을 들어보거나 생각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또는 본인의 경험일 수도 있다. 딱히 특별한 계기가 있던 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심장이 뛰는, 그야말로 첫눈에 반한 감정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어느 순간부터 상대가 눈에 밟히고 마음이 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감정을 설명하려고 시도하면 설명하는 말이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못하고 "그냥 좋아"라고 대답하게 되곤 한다. 때문에 이 감정을 설명하기 위하여 많은 이들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특이한 감정에 대하여 논의를 하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 심리학자들은 이 같은 감정의 변화를 '단순 노출 효과(mere-exposure effect)'라는 이론으로 정리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대를 자주 보아야 사랑스러운 이유
단순 노출 효과란 어떤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될수록 그 자극에 대해 더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는 심리 현상이다. 1960년대 미국의 심리학자인 로버트 자이언스(Robert Bolesław Zajonc)는 한 실험을 통해 이 효과를 입증했다. 그는 참가자들에게 12장의 얼굴 사진을 무작위로, 반복적으로 보여준 후 그에 대한 호감도를 측정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같은 사진을 자주 본 참가자일수록 그것을 더 호감 있게 평가하는 경향이 강했던 것이다. 그저 단순히 '많이 봤다'는 이유만으로도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 효과는 광고나 정치 마케팅, 대중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응용되어 왔지만, 일상생활 속 관계 형성에서 그 영향력은 특히 두드러진다. 자주 보는 사람에게 호감이 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학창 시절 매일 같은 반에서 마주치는 친구, 회사에서 매일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동료, 동네 카페에서 자주 마주치는 바리스타. 처음에는 아무 감정이 없다가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정이 들고, 심지어 사랑의 감정까지 싹트게 되는 경우도 많다.
단순 노출 효과와 사랑의 발전
물론 단순 노출 효과만으로 사랑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반복적인 만남은 상대에게 익숙함을 형성할 뿐, 깊은 감정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상호작용의 질과 개인의 성향, 타이밍 등 다양한 요소들이 함께 작용해야 한다. 하지만 단순 노출 효과는 그 '시작'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말하자면, 단순 노출은 '호감의 씨앗'을 뿌리는 과정이고, 그 씨앗이 자랄지 말지는 그 이후의 관계 형성 과정에 달려 있는 셈이다.
또한 단순 노출 효과는 '첫인상'이 반드시 모든 것을 좌우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려준다. 첫 만남에서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거나, 오히려 부정적인 인상을 남겼더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기도 한다. 계속해서 상대를 마주하고, 점차적으로 익숙해지고, 편안함을 느끼게 되면 부정적 이미지조차 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효과에는 분명한 전제가 있다. 그 대상이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중립적이거나 약간 긍정적인 인상을 줄 때 단순 노출 효과가 잘 작동한다는 것이다. 즉, 이미 어느정도 알려인 이들이 매우 부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면 아무리 반복적으로 노출되더라도 오히려 혐오감이 강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관계의 시작에서 어느 정도의 긍정적 경험을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현대인과 단순 노출 효과
한편, 현대 사회에서는 이 단순 노출 효과의 작동 방식이 점점 달라지고 있다. 디지털 환경에서는 오프라인보다 더 자주 '노출'이 일어난다. SNS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올라오는 지인의 사진, 메시지, 근황 등의 이야기들은 우리 뇌에 무의식적으로 각인된다. 심지어 직접 만나지 않아도, 얼굴을 마주한 적 조차 없지만 자주 온라인 상에서 접촉하게 되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경우도 오늘날에는 흔하다. 이는 인간의 심리적 메커니즘이 디지털 환경에서도 그대로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다.
사랑은 언제나 복잡한 감정이다. 누군가는 사랑때문에 웃거나 울기도 할 것이며, 또 다른 이에게는 사랑이 크게 중요하지 않은 감정이거나, 자신의 삶을 쏟아부을 만큼 소중하고 중요한 감정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에게 다가와서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거나 슬프게 만들며, 때로는 마음에 크나큰 상처를 입혀 아프게 만들기도 한다. 그 감정이 어떻게 시작되는가에 대해서는 수많은 이론이 존재하지만, 그중 단순 노출 효과가 설명하는 것처럼 작고 단순한 계기에서 출발하는 사랑도 많다. 매일 같이 보던 사람이 어느 순간 특별하게 보이기 시작하고, 그 익숙함이 어느샌가 편안함이 되고, 편안함이 결국 애정으로 전환되는 것. 우리는 그렇게 사랑에 빠진다.
어쩌면 사랑은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그저 매일의 평범한 반복 속에서 조금씩 자라나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자꾸 보면 정말 정이 든다.
* 참고문헌
1) 이다인. (2019). 좋은 인상은 최고의 경쟁력. 오토저널, 41(2), 49-50.
2) 김진솔, "닮은 사람끼리 연애하는 이유는?···'단순노출효과'에 물어봐". 매일경제. 2016.05.28.
https://www.mk.co.kr/economy/view.php?sc=50000001&year=2016&no=383319
3) 장경영, "브랜드 인지도, 결국 시간이다". 한국경제. 2021.05.08.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105080707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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