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희
[한국심리학신문=이제희 ]
‘중립 기어 박는다.’라는 말
우리는 익명의 힘을 빌려, 내가 당했거나 목격한 일을 밝히고 불특정 다수의 의견을 물을 때가 있다. 그 내면에는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받고자 하는 심리와 ‘내 편이 되어 달라’는 무언의 요청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어느새 익숙해진 한 문장을 댓글로 볼 수 있다.
‘일단, 중립 기어 박는다.’
이 말은 겉으로는 한쪽 이야기만 듣고, 성급한 판단을 내리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이며,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려는 이성적인 자세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실상은 당사자의 말하기를 멈추게 하고, 대화와 토론의 문을 조용히 닫아버리게 만든다.

특히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편향’으로 규정함으로써, 불균형한 힘의 구조를 은근히 지지하고 떠받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난 네 의견에 반대해.”라는 입장을 직접 말하지 않더라도, “난 잘 모르겠어.”, “일단 중립”이라는 말로 반대 의사를 우회적으로 드러내며 대화의 주도권을 당사자는 모르게 가져오는 것이다. 이처럼 중립은 때때로, 어느 것도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전략적 침묵이 된다.
그들은 왜 ‘중립’이라고 말할까?
‘중립’을 말하는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첫째는 반대 의견을 직접 드러내지 않고도 상대의 의견을 무력화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하고 편한 방식으로 ‘중립’을 선택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갈등을 회피하면서도, 비슷한 입장을 공유한 이들과의 은근한 동조를 통해 역으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한다.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전략적인 침묵을 통해 권력을 행사하는 셈이다.
이러한 태도는 <전략적 침묵>이라는 개념으로 설명된다. 전략적 침묵은 말 그대로 의도적이고 계산된 침묵이다. 자신에게 불리한 발언은 피하고, 침묵함으로써 타인의 주장에 책임지지 않으면서도 논쟁의 흐름이나 여론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는 행위이다. 기업이나 정치인 등이 위기 상황에서 침묵 전략을 쓰는 것처럼, 개인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의견 표명을 회피하고 권력의 한 축을 공고히 세운다.
둘째는 정말로 뚜렷한 의견이나 판단을 갖고 있지 않은 상태, 즉 무(無)의 상태에서 침묵을 선택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우리는 모든 이슈에 대해 항상 옳고 그름을 판단하거나, 분명한 입장을 가질 필요는 없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건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아무 입장도 취하지 않겠다는 입장은 단순한 무지가 아니라 소극적인 자기검열일 수 있다.
이런 침묵은 침묵의 나선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이 다수에게 지지받고 있다고 느낄 때는 공개적으로 표현하지만, 소수 의견이라 판단되면 비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침묵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의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의견을 표현하지 않기로 ‘선택’한다는 점이다.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회피적 심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생각을 공유할 수 없는 사회
인터넷은 다양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공간이라 하던 기존의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익명성이 보장될 수록 커뮤니케이션은 양극화를 더 강화시켰다. 탈 개인화가 심해지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보다는 집단 의견을 더 따르게 되었고, 내 생각을 갖는 것조차 어려운 사회 속에서 괜찮은 생각을 골라 공유하하게 된다. 또한 나와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 역시 미숙할 뿐이다. 이런 문화는 결국 자기검열을 강화하고, 다양한 의견이 존중받는 사회로부터 우리를 점점 더 멀어지게 한다.
결국, 이런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틀릴 자유’를 허락받지 못한다. 실수나 오해의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면 아예 침묵을 택하는 것이다. 생각은 나눌 때 다듬어지고, 서로 다른 의견은 부딪혀야 비로소 의미있는 변화로 이어진다. 하지만 지금의 사회는 그 부딪힘 자체를 꺼리고 잘못된 말 한마디에 가혹한 책임을 묻는 분위기를 만든다. 결국 우리는 점점 더 말을 아끼고, ‘틀릴 수 있는 사람’이 되기보다 ‘안 틀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간다.
말하는 용기, 중립을 넘어서는 첫걸음
말하는 사람만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 침묵 역시 정치다. 우리는 정치적인 발언에 유독 예민하게 반응하지만, 사실 어떤 말도 완전히 비정치적일 수는 없다. 이 사회를 좀먹는 것은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불편하지 않기 위해 입을 다무는 사람들이다.
말하기는 연습이 필요하다. 어떤 말을, 어떤 방식으로, 누구에게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며, 동시에 상대의 말을 어떻게 ‘잘’ 들을 것인가도 배워야 한다.
단테는 말했다. “중립은 악에 대한 암묵적인 동조다.”
그렇다면, 우리는 악의 동료는 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대화의 목적은 승패를 가르기 위한 해결이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함께 존재할 수 있는 연결에 있다. 우리가 말할 때, 그리고 누군가의 말에 귀 기울일 때, 그 연결은 시작된다.
참고 자료
신동인, 곽기영.(2018). 소셜미디어상에서의 의견표명 프로세스의 이해 : 인상관리이론 및 침묵의 나선이론 관점.
2018년 경영정보관련 추계학술대회. p166-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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