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호
[한국심리학신문=김연호 ]

손으로 말하는 나라, 이탈리아
제스처 속에 숨은 문화의 심리학
로마의 좁은 골목 안, 테라스가 있는 카페. 격한 대화를 나누는 한 커플의 손이 공중이 이리저리 가로지르며 정신없이 움직인다. 그들의 대화에서 높이는 목소리보다 격하게 움직이는 손동작들이 시선을 끈다. 자신의 감정을 전부 싣듯 손으로 손바닥을 내리찍기도, 상대방을 찌를 듯 가리키기도 하는 손짓들. 화가 난 표정보다도 다양한 손동작이다. 이탈리아인들이 분노나 강한 감정을 표현할 때 손을 많이 사용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비언어 커뮤니케이션과 문화적 특성에서 찾는다. 이탈리아는 대표적인 "고맥락 문화(high-context culture)"에 속한다. 고맥락 문화란 언어 자체보다도 상황과 억양, 표정 제스처와 침묵 같은 비언어적 요소를 통해 더 많은 의미를 전달하는 의사소통 방식이다. 고맥락 문화는 인류학적으로 인구 비교적 작고, 구성원 간 관계가 오래 유지된 사회, 긴 역사와 전통이 유지되며 공유된 규범과 상징이 많아진 지역 등에서 주로 형성된다.
이탈리아의 경우, 중세~르네상스 시기까지 이탈리아는 피렌체, 베네치아, 제노바 등 다수의 도시 국가로 나뉘어져 있었고 이 과정에서 좁고 밀접한 공동체들이 형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고맥락 의사소통이 생활화되었는데, 동시에 고대 로마 이전부터 지중해 교역의 중심지였기에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권의 상인, 외교관, 이주민들이 섞이면서, 말이 통하지 않아도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손동작과 표정을 적극 활용해야 했기에, 고맥락 의사소통에 자연스럽게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이 발달했다. 또한 로마 시대 연설 문화와 가톨릭 미사에서도 손짓 억양이 중요한 전달 수단이었기 때문에, 신체 표현은 사회적으로 세련된 소통법으로 자리 잡았다. 결론적으로 이탈리아의 고맥락 문화는 로마 시대부터 이어진 다층적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역사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탈리아의 고맥락 문화는 흥미롭게도, 집단 결속을 강화하고, 감정 지능을 발달시키며, 암묵 학습을 통해 세대 간 전승되고, 문화적 정체성을 표출하는데 영향을 끼친다.
이탈리아처럼 관계 중심 사회에서는 구성원 간 신뢰와 유대가 생존과 직결되기에, 오래 전부터 같은 집단 사람들끼리는 말보다 ‘느낌’으로 서로를 이해해왔고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은 '우리’와 ‘타인’을 구분하는 심리적 경계도 만든다.
또한 이러한 제스처의 대화를 통해 표정, 억양, 제스처를 통해 비언어 단서(non-verbal cues)를 읽는 능력이 발달하고 이는 상황의 미묘한 변화에 민감하게 만들며 메시지에 정서적 뉘앙스를 덧입히는 방식으로 대화를 하게 만든다.
고맥락 문화에서는 제스처나 표정 같은 ‘보이는 행동’이 집단의 문화를 드러내는 정체성의 수단이 되기 때문에 때론 마피아 조직에서 만든 ‘오메르타(Omertà, 침묵의 법칙)’처럼 눈빛, 손짓, 몸짓으로 의사소통하는 고맥락 커뮤니케이션의 부정적 예시로 탄생하기도 하지만, “나는 이 문화의 일부”라는 신호이기 때문에 자기표현이자 사회적 소속감의 표현으로 사용되고 자기표현과 사회정체성을 드러내는 심리적 동기가 된다.
어쩌면 이탈리아인들이 잘못된 방법으로 파스타나 피자를 만들 때 절규하고 그것을 진심으로 혐오하는 표정,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고맥락 문화에서 살아온 그들의 집단적 정체성을 해치는 혐오스러운 행위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탈리아인의 손동작은 단순한 문화적 습관이 아니라, 관계 중심 사회에서 발달한 심리적 생존 전략이자 정체성 표출의 도구다. 비언어적 신호를 통해 집단 내 신뢰를 공고히 하고, 상대방의 감정을 정밀하게 읽어내며, 말보다 깊은 층위의 메시지를 주고받는 능력은 고맥락 문화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핵심 역량이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이러한 소통 방식은 집단의 결속과 응집성을 높인다. 그러나 동시에 지나친 내집단 중심적 해석은 외부인 배제나 폐쇄성을 낳을 수 있다는 양면성을 가진다.
이탈리아인의 손짓 하나, 표정 하나에는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것을 지탱해 온 수 백년의 집단 기억이 내장되어 있다.
로마, 골목길 카페에서 저들이 휘두르고 있는 손짓들은 100에 걸쳐 완성된 이탈리아인들이 녹여온 자랑스러운 행동 양식인 것이다.
*참고문헌
1) 에드워드 홀. (2003). 문화를 넘어서(문화인류학 2). 한길사
2) 알베르토 몬디. (2023). 지극히 사적인 이탈리아. 틈새책
3) 장문석. (2023). [이탈리아] 느리게, 그러나 활기 있게 - 이탈리아사 연구의 최근 동향, 2021~2022. 역사학보
4) 최윤희. (2013). 문화 간 커뮤니케이션. 커뮤니케이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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