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 끝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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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고예림 ]


이상은의 노래 ‘둥글게’에는 


“둥글게 모여 앉아 행복했던 가게가 문 닫자 처음 눈물을 보인 너 혹시 내가 오래도록 기다려왔던 그 사람이 너일지도 몰라서 작은 꿈을 꾸는 사람들을 지켜주는 사람이 힘없는 것을 안아 줄 수 있는 사람이”


라는 가사가 담겨있다. 올 겨울 처음 들었을 땐 그저 마음을 콕 찌르던 가사였는데, 반년이 지난 지금 내가 그 주인공이 될 줄은 몰랐다.


블러를 처음 방문한 날오래는 아니지만, 지하철 역 앞 한 카페를 사랑했다. 딱히 가야 할 이유가 없는 날에도 그곳에 가기 위해 집 밖을 나서곤 했다. 카페를 오가기 8개월 후, 운이 좋게 그 카페 바로 앞에 살 수 있게 되었고, 커피가 생각날 때면, 휴식이 필요할 때면 문지방이 닳도록 블러를 찾아갔다. 새로 살게 된 동네에 정을 붙일 수 있도록 도와주던 카페는 내가 그 동네에 이사 온 지 딱 1년 됐을 때 여정을 마무리했다.


마음이 힘들 때면,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면, 여유를 즐기고 싶을 때면 늘 후보지 맨 위에는 ‘블러’가 있었다. 이제는 내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공간이 되었다. 미련이 많아서일까, 정이 많아서일까. 아니면 사장님과 그곳에서 마주했던 고마운 순간들 때문일까.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듣고 난 뒤부터 마음 한켠이 너무 아리고 아프다. 깊은 감정을 나눈 연인과 이별했을 때처럼, 괜히 문 닫힌 가게 앞을 지나치고, 창문 너머 내부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문득문득 가슴이 저려오는 걸 보면, 이것도 하나의 이별일 것이다.





장소에도 애착이 붙는다


장소 애착. 말 그대로다. 특정한 공간에 정이 붙는 것. 어릴 때 부모나 양육자와 애착을 맺는 것이 중요하듯, 사람은 공간과도 그런 관계를 맺는다. 우리는 단순히 ‘머무른다’라는 이유만으로는 장소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곳에서의 경험, 함께한 사람, 쌓인 기억들이 차곡차곡 스며들 때 비로소 공간은 나만의 장소가 된다.


반가운 손님

누군가에게는 고향 집 앞 골목이, 누군가에게는 대학 시절 자주 가던 술집이 그렇듯, 같은 공간이라도 그 의미와 무게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서 장소에 대한 기억은 늘 다채롭고, 회상하는 요소와 감정 또한 제각각이다. 중요한 건 그곳이 단순한 물리적 좌표가 아니라, 우리의 경험과 감정을 담는 그릇이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애착은 단순한 추억의 감정에 그치지 않는다. 익숙한 장소는 우리를 편안하게 감싸주고, 불안정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게 해준다. 급변하는 도시 속에서 사람은 낯설고 불안한 환경에 자주 놓이지만, 애착이 있는 장소는 언제든 돌아가 숨을 고를 수 있는 쉼터가 된다. 바로 그곳에서 우리는 안정감을 얻고, 나아가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단서를 찾는다. 공간이 장소로 변하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과 삶의 일부가 된다.




"____"가 문 닫자 눈물을 보인


블러는 외지인인 나를 품어준 곳이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커피 한 잔을 마시던 공간이었다. 나를 반겨주고 환영해주는 사장님은 내가 그 공간을 사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그곳에서 안정감을 얻은 나는 가족 없는 타지에서 처음으로 ‘내 동네’라 부를 수 있는 삶의 터전을 가꿀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은 원한다고 쉽게 오는 게 아니고, 잡는다고 영원히 붙잡을 수도 없다. 그렇기에 그런 공간이 하나라도 있다는 건 우리 삶에 큰 위안과 응원이 되어준다. 나에게 블러는 그러했다.


이 글은 블러에게 헌정하는 나만의 마지막 작별인사다.


블러의 풍경을 선물한 손님과 예쁜 액자에 걸어둔 사장님







*참고문헌

1) 김수민, 조택연(2015). 진화심리학적 관점으로 해석한 장소애착에 관한 연구. 한국기초조형학연구. p.101~112.

2) 이병곤, ‘장소’가 불러온 그들의 귀환, 그리고 깊은 환대, 동아일보, 2023.12.14,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2033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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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9-02 10: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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