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윤주
[한국심리학신문=남윤주 ]

2000년대 초반, 대한민국 사회를 충격과 혼란에 빠뜨린 연쇄살인범 유영철은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인물이다. 그의 범죄는 단지 통계 속 한 사건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범죄 인식과 대응 체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그가 남긴 자필 기록은 그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창이자 사이코패스 성격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심리학적 단서이다. 유영철이 자필로 남긴 문장들은 캐나다의 심리학자 Robert Hare가 제시한 사이코패스의 성격 특성과 매우 높은 상응성을 보인다.
혁명가의 이름으로 포장된 자기 이상화

"내 나이 18세 때 에르네스트게바라의 책 몇 권을 들고 제주도로 갔었다..(중략) 게바라가 여행길에서 자기의 인생을 바꿔 놓았듯이 나도 어떤 길을 무작정 향했던 것이다."
유영철은 자신을 체게바라와 동일시함으로써 사회를 바꾸는 영웅이나 혁명가로 포장한다. 이는 '동일시'라는 방어기제를 활용해 자신을 이상화시키고, 동시에 자신의 폭력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이러한 자기 이상화는 '과도한 자존감'과 '피상적 매력'이라는 사이코패스 성향과 맞닿아 있다.
투사와 합리화의 방어 기제
"내가 진정 죽이고자 했던 여자는 동거했던 여자처럼 '사람 가지고 장난치는 여자들'이었어요..(중략) 그 여자로 인해 말이라는 게 얼마나 잔인하다는 걸 알게 되었죠. 말로써 나를 그렇게 죽어 가게 만든 그 여자는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인성마저 모두 앗아가 버렸으니까요."
그는 피해자를 '사람 가지고 장난치는 여자'로 일반화하고, 그로 인해 자신이 죽어가는 경험을 했다며 자신이 범한 살인 행위를 피해자의 탓으로 돌린다. 이는 자신이 받아들이기 힘든 부정적 감정, 욕구, 충동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투사', '합리화', '부정' 등의 방어기제가 복합적으로 작동한 예로 볼 수 있다. 극단적인 자기중심성과 도덕적 무감각이 드러나며, 타인의 고통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 서사 속에서 모든 정당성을 구성하는 특징이 나타난다.
잔혹한 범죄 성향 뒤에 감춰진 환경적 요인
유영철의 사이코패스적 성향은 후천적 환경 요인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의 성장 배경은 반복적인 방임과 학대, 그리고 사회적 고립으로 요약된다.

"아버지가 교통사고 나셔서 병원에 40일간 식물인간으로 계시다가 돌아가셨는데 엄니마저 쓰러지셨다. 그래서 형제들이 돌아가며 아버지 옆에 지키고 있었는데, 아버지 임종하시던 날 아버지가 내 손을 잡고 우시는 것을 보고 난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을 실종으로 기억하는 등 현실 왜곡을 통해 심리적 고통을 회피하려는 방어기제를 보였다. 이는 정신분석학적 시각에서 볼 때, 자아 형성 과정에서의 애착 실패와 정서적 결핍이 반사회적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쳤음을 시사한다. 애착 이론에 따르면, 안정된 애착 관계는 정서 조절과 공감 능력 발달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유영철은 안정된 애착 관계와는 철저히 배제된 환경에서 자랐고, 이는 공감 능력의 결여와 충동 조절의 실패로 이어졌다. 물론 이와 같은 분석은 어디까지나 범죄 성향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한 접근일 뿐, 살인이라는 행위 자체를 정당화하거나 유영철 개인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어떤 사회적 배경이 있었다 하더라도, 생명을 침해하는 범죄는 결코 용납될 수 없으며,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수반되어야 한다.
범죄를 만든 그림자: 방임과 고립

유영철 사례를 통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그 범죄가 사회 구조 속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범죄자의 내면을 이해하고 그와 같은 사건이 반복되지 않도록 예방적 개입과 정책적 대응이 필요함을 깨달아야 한다. 유영철의 기록에서 그는 자신을 지속적으로 피해자로 표현하며 외부에 책임을 전가한다. 이 역시 사이코패스적 성향 중 하나인 자기 책임 회피의 표현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주목할 점은 그가 자라온 사회적 환경이 정서적 왜곡과 반사회적 성향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다. 정서적 지지와 건강한 부모의 사랑은 반사회적 성향을 예방하는 핵심 요인 중 하나이다. 사회는 한 사람의 범죄를 예방할 수도,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는 곧 개인을 향한 낙인과 비난에 그치지 않고, 그 배경에 놓인 구조적 요인을 함께 성찰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영철의 자필 기록은 충격적이고 끔찍한 고백 편지인 동시에, 그를 만든 환경과 심리를 조명할 수 있는 단서이다. 우리는 그가 보여준 사이코패스적 특성과 정서적 결핍을 단순히 비정상적 개인의 특이성으로 소비해서는 안된다. 방임과 학대, 사회적 고립 속에서 자란 유영철은 반복되는 좌절로 인해 반사회적 성향이 강해졌다. 이러한 흐름은 정남규, 강호순 등 다른 연쇄살인범의 사례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정남규는 어린 시절 심각한 성폭력 피해와 방임을 겪었고, 강호순은 가정 내 폭력을 일상적으로 목격했다. 이처럼 반복되는 범죄의 그늘에는 언제나 적절한 개입이 부재한 성장 환경과 사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자극적인 사건의 표면을 넘어서, 우리는 그 안에 내재된 구조적 문제를 성찰해야 하며, 다시금 '범죄는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오래된 진실을 되새겨야 한다.
참고문헌:
권성훈. (2011). 유영철 글쓰기에 나타난 사이코패스 성격 연구. 한국범죄심리연구, 7(1), 3-28.
권현정. (2015). 편지 분석을 통한 유영철의 범죄심리 연구 : 융의 ''그림자''이론을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동국대학교]. http://www.riss.kr/link?id=T13673582
김미숙. (2018). 가정환경이 연쇄살인에 미치는 영향 -연쇄살인범 유영철, 강호순, 정남규를 중심으로. 한국범죄정보연구, 4(1), 1-20.
서울신문. (2024.9.30). 프로파일러가 본 유영철 편지..."다중인격·반사회적 성향 여전” [범죄 피해자 리포트 : 그날에 멈춘 사람들]. 박상연, 곽진웅 기자 https://www.seoul.co.kr/news/plan/crime-victim-report/2024/09/30/20240930500162
월간조선. (2005.4). 살인 중독자의 처절한 告白 -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보내온 50여 통의 편지. 이은영 기자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0504100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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