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예림
[한국심리학신문=고예림 ]
"밥 먹으러 가잖아, 자연스럽게 숟가락을 챙겨줘. 물잔이 비면 내가 모르는 사이에 채워놔."
"그건 그냥 매너 아닌가?"
"내가 먹는 반찬을 유심히 보는데 거기엔 손을 안 대거든.
나 많이 먹으라고.
난 그런 다정함을 지능으로 보거든. 상대를 안심시키는 반듯함 같은 거. 그런 건 하루이틀에 쌓이는 게 아니니까."
몇 년 전 “다정함도 지능이다”라는 드라마 대사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다정함’이 단순한 성격 차이가 아니라 지능의 문제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 문장에는 다소 어폐가 있어 보인다. 곱씹어 보면, 다정함은 결국 ‘공감’을 바탕으로 한다. 그렇다면 지능이 높은 사람일수록 공감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일까. 하지만 여기엔 의문이 남는다. 공감 능력이 좋다고 해서 언제나 좋은 결과만 따라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공감은 지능이다 도서/자밀 자키
공감은 언제나 미덕일까
우리 사회는 대체로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을 쉽게 비난한다. “너 T야?”라는 유머에서부터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 나르시스트 같은 부정적 꼬리표까지, 공감 부족은 곧 결핍이나 결함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공감은 무조건적으로 좋은 걸까? 나는 공감 능력이 좋은 편에 속해 남이 울면 같이 울고, 웃으면 함께 웃는다. 오랫동안 그것을 나의 장점이자 자부심으로 여겨왔다. 누구보다 섬세하게 상대의 기분을 읽고 반응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때로는 이 능력이 불필요하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감정의 경계가 사라질 때
카페에서 혼자 여유를 즐기던 어느 날, 옆자리 손님들이 누군가를 험담하며 욕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말이 불쾌해서 기분이 나빴다기보다, 그 상황에 과하게 이입해 마치 내가 직접 겪은 일처럼 감정을 흡수하고 있었다.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결국 불필요한 소모를 겪은 것이다.
연인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상대의 기분에 따라 내 감정이 좌우되는 경험을 누구나 해봤을 텐데, 이 역시 내 감정과 타인의 감정을 구분하지 못하는 혼동에서 비롯되었다.
공감에도 피로가 찾아온다
심리학자 Joinson은 1992년 ‘공감 피로(empathy fatigue)’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타인의 고통이나 감정에 장시간 공감하고 반응하다 보면, 자신도 함께 지치고 소진되는 심리적 상태라는 것이다. 특히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중 환자의 고통에 깊이 몰입하는 이들이 쉽게 탈진하거나 감정 소모를 겪는 경향이 뚜렷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이 피로에 더 쉽게 노출된다. 남의 기분을 잘 알아채고, 고통을 해결해주고 싶어 하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느라 자신을 소홀히 한다. 또 감정 전이에 민감하여 스트레스 환경 속에서 더 크게 지치고, 감각적으로도 예민하다. 요즘에는 뉴스나 SNS를 통해 타인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접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공감 피로가 확산되고 있다.
의도적으로 공감을 줄이다
공감 피로의 증상으로는 이유 없는 우울, 불안, 무기력감이 나타난다. 예전 같으면 당연히 공감하고 도왔을 일에도 점차 냉담해지거나 무관심해지는 것이다. 이는 피로 누적을 막기 위한 무의식적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예컨대 환자들은 의사가 무뚝뚝하고 성의 없는 진료를 한다며 불평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환자가 귀찮아서가 아니라, 고통을 일상적으로 마주해야 하는 직업 특성상 ‘공감 스위치를 끄는 훈련’을 하게 된 결과다. 의사가 지나치게 공감에 몰입한다면 오히려 본연의 업무 수행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공감 지능의 또 다른 의미
게티이미지코리아
신종호 서울대 교수는 “공감이라는 것이 절대적으로 좋다고만 볼 수는 없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과하거나 편향될 때 나타나는 공감의 양면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공감 능력이 뛰어난 것을 넘어, 타인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갖고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
다정함의 지능이란 단순히 공감할 줄 아는 능력이 아니라, 공감을 조율할 줄 아는 힘까지 포함해야 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1) 박권주, 공감은 늘 옳을까… ‘선택적 공감’은 차별-혐오 낳기도, 동아일보, 2024.06.03,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0/0003568503
2) 임지선, ‘공감’이 폭력을 부른다?···‘공감 부족’아니라 ‘과잉’이 문제다, 2022.10.28, 경향신문, https://www.khan.co.kr/article/202210281221001
3) 최고야, “남 배려하다 내가 지쳐”…착한 게 아니라 피곤한 겁니다, 동아일보, 2025.05.13,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50307/1311626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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