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윤주
[한국심리학신문=남윤주 ]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 포스터 | 사진 애니맥스브로드캐스팅코리아올해 개봉작 중 최단기간 300만 관객을 돌파한 작품은 다름 아닌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다. 만화가 애니화된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시리즈 <귀멸의 칼날>은 화려한 영상미와 탄탄한 스토리로 이미 국내외에서 두터운 팬층을 가지고 있다.
대개 모든 작품이 그렇듯, <귀멸의 칼날>에도 주인공이 맞서 싸워야만 하는 '악당'이 존재한다. 그들은 '오니'라고 불리며, 인간을 잔혹히 살해하고 잡아먹는 괴물들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정의를 추구하는 주인공보다, 저마다의 이유로 타락한 오니를 더욱 좋아하는 관객이 많다는 것이다. 왜 우리는 종종 악당에게 더 마음이 끌릴까?
악당도 항상 나빴던 건 아니다 - 상처의 공유와 감정적 동일시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의 아카자 | 사진 애니맥스브로드캐스팅코리아
세상엔 '이유 없이 나쁜 놈'이 없다. 그 어떤 드라마나 영화를 보더라도, 악당의 과거 이야기는 항상 따라붙는다. 귀멸의 칼날도 마찬가지다. 모든 오니들은 각자만의 과거와 사연, 상처를 가지고 있다. 정교하게 짜인 그들의 서사와 감동적인 스토리는 관객의 몰입을 높여주고 때론 동정심마저 불러 일으킨다. 이번 무한성편의 중심축을 담당하는 악당 '아카자'가 대표적 예시다. 그는 원래 ‘하쿠지’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이었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의 몰살을 겪고 상실감과 분노를 이기지 못한 채 오니의 삶을 택한다.
관객은 그의 현재 모습보다 과거의 아픔에 더욱 깊이 공감한다. 단순한 괴물이 아니라, 삶이 부서진 인간이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결국 그의 악행을 모두 용서하진 못하더라도, 서사를 통해 조금이나마 그 마음을 헤아리고 이해하게 되는 경험을 한다. 이는 곧 이용자가 콘텐츠 속 인물을 자신과 동일하다고 인식하여 감정적 연결을 느끼는, '감정적 동일시'와 같은 현상으로 이어진다.
금지된 욕망을 대신 충족시켜준다 - 심리적 투사
현실의 우리는 가끔은 표출하고 싶은 속마음이 있더라도, 통념이나 도덕에 어긋나는 일이라면 참는 경우가 많다. 그 탓인지 많은 사람들이 내면의 공격성이나 욕망을 숨긴 채 살아간다. 반면 영화나 드라마 속의 악당은, 참지 않는다. 실제 사회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가감없이 행하고, 억눌러야 할 대상이었던 욕망을 서슴없이 드러낸다. 바로 그 점이 우리의 억압된 욕망을 대신 충족시켜 주기도 한다. 조커가 사회의 혼란을 즐기고 다스 베이더가 권력을 휘두를 때, 관객은 불안함과 동시에 묘한 해방감을 느낀다. 이는 프로이트가 제시한 무의식의 방어 기제 중 하나인 심리적 투사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빌런을 통해 억눌린 본능을 대리 실현하며, 안전하게 자기 내면의 어두운 면을 탐색한다.
영화 '다크 나이트' 스틸컷
실제로 심리학 연구에서는 사람들이 허구 속에서 범법이나 폭력을 접할 때, 오히려 스트레스 해소와 자기 성찰을 경험한다고 보고한다. 영화 다크 나이트의 조커가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라 '규칙 없는 세상'을 상징하기 때문에 관객이 그에게 매혹되는 것이다. 그는 혼돈을 대신 실행하는 캐릭터이고, 우리는 안전한 극장 안에서 그것을 목격하는 과정에서, 대리 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괴물이 아닌, 또 다른 인간의 얼굴
귀멸의 칼날에 등장하는 빌런인 오니처럼, 많은 악당은 단순히 쓰러뜨려야 할 대상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한때 상처 입은 인간이었고, 사회의 어두운 틈에서 밀려난 존재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빌런을 바라보는 관객들은 두려움과 함께 그들을 이해하고 싶은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실제로 <귀멸의 칼날:무한성편>의 관람객들 사이에선 "이제는 아카자가 아니라 하쿠지다"라는 후기가 가장 많은 공감을 얻었다. 아카자가 오니로 변하기 전의 이름인 하쿠지라는 인물의 존재를 인정하고, 단순히 그를 미워하기보다 오히려 응원하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생겨났기 때문이다.

악당은 결국 인간의 또 다른 얼굴이다. 우리는 그들을 통해 자기 안의 그림자와 마주하고, 동시에 사회가 외면해 온 약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다시 말해 빌런을 좋아한다는 것은, 인간의 복잡성과 모순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태도일지 모른다. 관객은 빌런의 몰락에서 통쾌함을 느끼는 동시에, 그들의 구원을 은근히 바란다. 바로 이 역설적인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악당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다.
참고문헌:
나준하. (2025-05-16).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에 나타나는 오니 이미지 - 오니로 표상되는 약자성을 중심으로 -. 대한일어일문학회 학술대회 발표논문 요지집, 부산.
조월. (2021). 애니메이션에 악당 캐릭터 특징 표현 연구 : 미국·중국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호서대학교]. http://www.riss.kr/link?id=T15829521
채희주, 민경원. (2020). 악당 탄생의 구조적 접근 방법 연구: 토드 필립스의 〈조커〉를 중심으로. 영화연구,(85), 257-292. 10.17947/FS.2020.9.85.257
https://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677
http://wowhongik.hongik.ac.kr/news/articleView.html?idxno=786
귀멸의 칼날 개봉 10일 만에 300만 돌파…올해 최단 기간 |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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