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채원
[한국심리학신문=허채원 ]
우리를 무너뜨리는 건 과로와 고갈만이 아니다. 권태와 무기력도 오늘을 무겁게 한다.
우리의 삶은 너무나도 빠르고, 끊임없는 정보와 끝나지 않는 책임과 함께 흘러간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우리는 쉽게 지치고 해야 할 동기를 잃고, 있었던 마음마저 금방 사라져 ‘아무것도 하기 싫어요.’라고 한다.
받아들이기 쉽진 않지만 ‘일단 움직이면 마음은 따라온다.’
영국 글래스고 대학에서 2016년부터 시작된 연구에 의하면, 영국의 25-35세 남성의 악력이 과거에 비해 점점 약해지고 있다. 1980년대 평균 악력이 53kg였다면, 밀레니얼 세대의 평균은 44kg로 줄었다. 그 주범은 정적인 생활의 증가와 체중을 지탱하는 활동의 감소다. 운동 부족이 근력 저하를 가져오고, 이것은 건강한 삶의 전반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
근력은 몸의 힘만 의미하지 않는다. 근력은 건강한 두뇌와도 연관성이 있다. 회백질의 양이 많을수록 기억력이 좋아지고, 두뇌가 더 민첩해지는데, 이것은 강한 근력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근력이 우리 마음에 미치는 영향이다. 귀찮고, 힘들고, 지쳐 가만히 누워만 있고 싶은 순간에도 운동복을 입고, 덤벨을 하나 더 들고, 1분을 더 뛰는 행동들이 내 삶을 스스로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을 주고, 성취감을 느끼게 해준다. 내 몸을 지배할 수 있다는 감각은, 내 마음을 다스리는 힘으로 이어진다. 두려움에 뒷걸음치기보다 ‘나는 할 수 있다, 한번 부딪혀보자’라는 자신감과 자기효능감으로 대처하게 된다.
몸과 뇌는 끊임없이 대화한다. 근육과 뼈를 단련하는 모든 움직임은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느끼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새롭게 인식하게 만든다. 그래서 규칙적인 운동을 한 사람이 더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사랑과 희망의 감정을 더 자주 경험하는 것이다.
신경과학자이자 철학자인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신체에서 나오는 무의식적인 메시지는 자아의 기반이 될 뿐 아니라, 삶의 분위기 전체를 형성한다’고 말한다.
내 몸의 주인이 먼저 될 때, 우리는 마음의 주인도 될 수 있다.
2. 춤과 연대
나의 경우, 몸이 뻣뻣하고 부끄럼이 많아서 학교 축제 때 억지로 춤을 춰본 것 외에는 단 한 번도 춤을 춰본 적이 없다. 댄스 학원을 다니거나 집에서 혼자 추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혼자서도 절대 춤을 추지 않는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스스로 만든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마음껏 춤춰 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희열이 느껴질 것 같았다.
옥스퍼드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박자에 맞춰 잘 움직이는 아이일수록 더 많이 웃었다고 한다. 이것은 춤이 즐거움을 준다는 의미이다. 사람은 타고난 박자감을 가지고 있어서 같은 박자에 맞춰 움직이면 서로 쉽게 동기화될 수 있다. 춤은 기분만 좋게 하는 활동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이어주고 타인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힘이 있다. 같은 박자에 맞춰 몸을 움직이며, 리듬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함께 연결되고 소속감을 느낄 때, 우리는 안정감과 자신감을 얻고 불안과 외로움을 덜어낸다.
또한, 춤은 다양한 근육을 쓰는 전신 운동이기도 하다. 팔, 다리, 코어, 균형을 잡는 근육 등 몸 전체가 움직여 근육을 강화한다. 춤을 추면 세로토닌 분비가 촉진되고, 스트레스 호르몬이 줄어 기분이 좋아진다. 근육을 사용하고 몸을 조절하는 것은 단순히 체력뿐만 아니라, 마음의 주체성을 키우는 경험으로도 이어진다. 운동과 비슷한 효과를 내면서도, 동작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자기 인식을 자극하는 만큼 마음의 안정과 자신감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자신의 마음보다는 몸의 움직임에 집중할 때, 불확실한 미래에 휘둘리기보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힘을 얻고, 마음이 한결 정리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음악이 꼭 필요하거나 완벽하게 춤을 출 필요는 없다. 팔 흔들기, 몸 틀기, 발이라도 흔드는 작은 움직임만으로 충분한 나만의 춤이 될 수 있다.
춤추듯 살아가 보자.
쉬어도 쉬어도 더 격하게 쉬고 싶을 때가 있다. 하루 종일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쉬고 있지만, 머릿속은 복잡하다. 새해 첫날 계획한 운동하기, 영어 공부, 해야 할 일들은 줄지어 있고, 마음은 점점 무거워진다. 해야 할 일들을 미루고 쉬면서 오는 압박과 ‘나는 왜 실행을 못할까’라는 자책은 몸과 마음을 지치게 만든다.
뇌는 활동과 휴식을 함께 요구한다. 해야 할 일을 미루고 가만히 있는 상태는 겉으로는 휴식처럼 느껴지지만, 뇌는 끊임없이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며 긴장하고 있다. 혈류와 신경회로가 계속 활성화되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과 아드레날린이 높은 상태로 유지되어 우리는 금방 지쳐버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짧은 산책 한번, 가벼운 스트레칭, 스쿼트 10번이 몸과 뇌에 훨씬 더 회복을 가져다줄 수 있다. 움직임이 혈류를 활성화시키고, 작은 움직임이라도 해냈다는 뿌듯함에 도파민 분비가 촉진되어 재충전이 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결국 쉬는 방식이 중요하다. 가만히 누워 있는 게 아닌 몸과 뇌가 실제로 회복되는 방식으로 휴식을 취해야 한다. 작은 움직임과 의식적인 활동은 우리가 쉬면서도 마음의 무게를 덜어내고, 다시금 희망과 활력을 되찾는 열쇠가 된다.
오늘 하루, 한 발자국의 움직임이 내 안의 피로를 조금씩 풀어주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4. 어떤 형태의 움직임이라도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 움직임의 중요성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힘겹게 해내야 하는 임무처럼 다가오니 ‘내일로 미루는 일’이 돼버린다. 움직임의 중요성에 대해 글 쓰고 있는 나조차 그렇다. 하지만 움직임의 힘은 거창한 운동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헬스장에 가서 쇠 냄새를 맡지 않아도, 힘겹게 달려 러너스 하이를 느끼지 않아도 괜찮다. 훨씬 작은 움직임에도 우리 몸은 분명 반응한다.
좋아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춰도 좋고, 두 발로 서서 가볍게 움직여도 좋다. 누워서 다리를 들어 올렸다 내리거나, 한쪽 다리로 균형잡기, 손을 쓰지 않고 바닥에서 일어나 보기, 코로 천천히 심호흡하며 횡격막을 움직이는 단순한 동작조차도 우리의 뇌와 몸을 깨우는 신호가 된다. 이러한 작은 자극이 근육과 신경을 깨우고, 무거워진 몸과 마음을 점점 풀어준다. 머리가 복잡할 때 의식적으로 몸을 먼저 움직이면 신경계가 활성화되고, 불안과 무기력은 서서히 누그러진다. 이것은 심리학의 행동 활성화 원리와 맞닿아 있다.
움직이기조차 귀찮을 때는 더 큰 계획이 필요 없다. 중요한 건 완벽한 운동이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움직였다는 사실이다. 몸을 움직이는 순간, 마음은 따라온다.
지금 좋아하는 노래를 켜고 리듬에 몸을 맡겨보자. 내키지 않으면 그냥 발끝만 흔들어 보자. 노래가 끝나고 두 번째 곡이 흘러나올 때, 문득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마무리하며
우리는 움직임을 위해 진화했다. 움직임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인간의 뇌와 몸이 오래전부터 설계된 방식이며, 오늘날에도 우리 삶의 활력과 회복, 희망을 만드는 가장 본능적인 힘이다.
여름이 끝나가고 있다. 새벽부터 시끄럽게 울던 매미의 목청도 한풀 꺾였다. 운동하기 좋은 계절이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내 안에 갇혀 탈출하지 못했던 많은 생각과 희망에게 날개를 달아주길.
-참고자료-
1.맥고니걸, K. (2020). 움직임의 힘.박미경(역). 안드로메디안.
2.윌리엄스, C. (2021). 움직임의 뇌과학.김성훈(역). 현대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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