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서재

능선에서 내려온 숲길은 고요했지만,
그 고요는 불안으로 가득했다.
민호는 무거운 숨을 몰아쉬며 총을 움켜쥔 채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뒤에서는 여전히 포성이 울리고 있었지만,
그 소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그는 잠시 멈춰 섰다.
숨결에 섞여 나오는 흙내와 연기,
그리고 피비린내가 여전히 전장을 따라붙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종철의 마지막 얼굴이 떠올랐다.
그가 내뱉은 “살아서 증언하라”는 말은
이제 민호의 가슴에 깊은 상흔으로 새겨져 있었다.
길을 따라 더 내려왔을 때, 민호는 예상치 못한 장면을 마주했다.
숲 속 공터에 작은 모닥불이 피워져 있었고,
그 주위에는 낯선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군인이 아닌, 허름한 옷차림의 피난민들이었다.
아이를 품에 안은 여인, 지팡이에 의지한 노인,
그리고 힘겹게 짐을 나르는 사람들.
민호의 눈은 순간 크게 흔들렸다.
그들은 두려움에 떨며 민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총구가 그들을 향하자,
아이의 울음소리가 숲을 가르며 터져 나왔다.
민호는 천천히 총을 내렸다.
“난… 적이 아니다.”
그의 목소리는 거칠었지만,
그 속에는 깊은 피로와 진심이 담겨 있었다.
피난민 중 한 노인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젊은이… 넌 아직 살아 있구나.
능선에서 들려온 포성이 네 전우들이었겠지?”
민호는 대답하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민호는 그들과 함께 불가에 앉았다.
피난민들의 얼굴은 절망으로 가득했지만,
동시에 살아남은 자들의 작은 희망이 깃들어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모두 같았다.
집을 잃고, 가족을 잃고, 이름조차 지워진 채 살아남아야만 하는 사람들.
민호는 그들 속에서 자신을 보았다.
그 또한 이름 없는 전쟁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속으로 다짐했다.
“나는 이들의 목소리도 함께 증언해야 한다.
전쟁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고통이, 이 모든 이름 없는 얼굴들이 기록되어야 한다.”
작가의 말 :
23화에서는 민호가 능선 밖에서 새로운 집단,
즉 피난민들과 조우하는 순간을 그렸습니다.
전투에서 벗어난 그가 마주한 것은 또 다른 ‘생존의 전선’이었습니다.
전쟁은 군인만의 싸움이 아니라,
민간인 모두의 고통임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다음 화에서는 민호가 피난민들과 함께 움직이며,
전쟁이 남긴 상처와 또 다른 현실과 마주하게 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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