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전쟁》 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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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속, 

서로를 향해 겨눈 총구가 공기를 가르며 떨고 있었다.

민호는 방아쇠 위에 손가락을 얹었지만, 

쉽사리 당기지 못했다.

상대 병사들의 눈빛은 적의 그것이라기보다, 

자신과 똑같이 지친 인간의 눈빛이었기 때문이다.

피난민들은 숨을 죽인 채 떨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이의 입을 막았고, 

노인은 지팡이를 움켜쥔 손을 떨고 있었다.

조그만 실수 하나가 모두의 생사를 갈라놓을 순간이었다.

긴 침묵을 깨고, 

낯선 병사 중 한 명이 낮게 말했다.


“총 내려. 

우리도… 더는 싸우고 싶지 않다.”


민호의 눈빛이 흔들렸다.

순간, 피난민들 사이에서 안도의 숨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여전히 다른 병사 하나는 긴장을 풀지 못한 채 총구를 민호에게 겨누고 있었다.

민호는 천천히 총을 내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희는 누구지? 

북한군이냐, 아니면 흩어진 부대의 잔류병이냐?”


병사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우린… 이제 이름도 소속도 없는 자들이다. 

그냥 살아남고 싶은 사람들일 뿐.”


그 말에 민호는 잠시 종철의 얼굴을 떠올렸다.

살아서 증언하라는 그의 마지막 당부가 겹쳐졌다.

전쟁은 이름과 깃발을 앞세우지만, 

결국 남는 건 살아남으려는 인간들의 몸부림일 뿐이었다.


“우린 민간인들을 데리고 있다.”


민호가 단호히 말했다.


“싸움을 원치 않으니 길을 비켜 달라.”


상대 병사는 잠시 민호를 똑바로 바라보다가 총을 내렸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마을은 안전하지 않아. 

서쪽 골짜기로 가라. 

거긴 아직 손길이 덜 미쳤다.”


긴장감은 서서히 풀렸지만, 

공기는 여전히 무거웠다.

민호는 총을 내려놓은 병사들의 눈빛에서 두려움과 체념, 

그리고 자신과 다르지 않은 고통을 읽었다.

피난민들과 함께 다시 길을 나서며, 

민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우린 서로 다른 편에서 싸우고 있었지만, 

결국 모두 같은 전쟁 속에 갇힌 존재일 뿐이다.”


멀리서 불타는 폐허의 연기가 솟아올랐다.

그러나 민호의 발걸음은 조금은 가벼워져 있었다.

그는 이제 단순한 병사가 아닌, 

피난민들과 이름 없는 자들의 삶을 증언하는 ‘길잡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작가의 말 :

26화에서는 대치가 충돌이 아닌, 

이해와 묵시적 동맹으로 풀리는 장면을 담았습니다.

전쟁 속에서 적과 아군의 구분조차 무너져 내리고, 

결국 모두가 같은 고통 속에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는 존재임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민호는 이 만남을 통해 전쟁의 또 다른 진실 ― 적도 결국 인간이라는 사실 ― 을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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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9-16 09: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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