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전쟁》 27화
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서쪽으로 향하는 길은 깊은 숲으로 이어져 있었다.

민호는 앞장서서 길을 열었고, 피난민들은 서로 부축하며 뒤따랐다.

바람은 차가웠지만, 

능선에서 멀어질수록 총성은 희미해졌다.

그러나 고요는 결코 안도감을 주지 않았다.

숲길 곳곳에는 버려진 군장과 찢어진 군복이 널려 있었고, 

피가 마른 흔적이 땅바닥에 남아 있었다.


“여기도 싸움이 있었던 모양이야.”


민호는 낮게 중얼거리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한참을 걸은 끝에, 

골짜기 안쪽에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피난민들은 순간 발걸음을 멈추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불빛은 희망일 수도 있었고, 

또 다른 위험일 수도 있었다.

민호는 손을 들어 모두를 멈추게 한 뒤, 

조심스럽게 불빛 쪽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허름한 천막 몇 개가 세워져 있었고, 

그 속에는 전쟁을 피해 모여든 생존자들이 몸을 웅크린 채 불을 쬐고 있었다.


아이들의 기침 소리, 노인의 거친 숨, 배고픔에 지친 얼굴들.


그 모습은 민호와 함께 온 피난민들과 다르지 않았다.

민호가 조심스레 다가가자, 

천막 안에서 한 사내가 일어났다.

그의 옷차림은 군인이었지만, 

완전히 낡고 해진 군복이었다.


“넌… 어디서 온 거냐?”


그 사내의 목소리에는 경계와 피로가 동시에 묻어 있었다.

민호는 짧게 대답했다.


“능선에서… 살아남았다. 

이 사람들은 민간인들이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사내는 민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선 누구든 같은 처지다. 

들어오라.”


민호와 피난민들이 천막 속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을 향했다.

두려움, 호기심, 그리고 안도감이 섞인 눈빛들이었다.

어린 소녀가 민호를 보며 속삭였다.


“군인 아저씨… 이제 안전해요?”


민호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입술은 움직였지만, 

목소리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전쟁 속에서 ‘안전’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작가의 말 :

27화에서는 민호와 피난민들이 서쪽 골짜기에서 또 다른 생존자들과 조우하는 장면을 그렸습니다.

폐허가 된 마을에 이어, 

이제는 전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여든 집단과의 만남을 통해 민호는 또 다른 현실을 목격합니다.

전쟁은 전선뿐 아니라, 

후방의 숲과 골짜기까지 인간들을 몰아넣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다음 화에서는 민호가 이 생존자들과 함께 하며, 

새로운 위기 ― 식량 부족과 내부 갈등 ― 에 직면하게 될 예정입니다.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psytimes.co.kr/news/view.php?idx=11191
  • 기사등록 2025-09-18 10:57:50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