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민
[한국심리학신문=이경민 ]
▲사진 출처: Facebook
만약 여러분이 어떤 사이트에서 물건을 샀는데 배송을 받지 못한 상황이 있었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판매자 측에 “배송받지 못했어요.”라고 문의했으나, 판매자 측으로부터 “당신에게 물건이 없음을 증명해 보이세요.”라는 답을 받는다면 어떨까? 상당한 당혹감이 밀려올 것이다. 브이로그를 찍듯이 비디오 촬영을 켜고 집을 한 바퀴 돌면서 “자~ 물건이 없지요?”라고 보여준다고 증명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결국, ‘아니… 없는 걸 어떻게 보여줘…’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차라리 ‘있음’을 증명하는 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무언가가 '존재한다'라는 것은 비교적 쉽게 증명할 수 있다. 위 사례처럼 눈에 보이는 물건의 경우에는, 단순히 그것이 존재한다고 보여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어떻게 존재를 증명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특정 학습법의 효과, 신약의 효과, 또는 어떤 사회 현상 같은 것들 말이다. 특히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이러한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이나 개념의 존재를 증명해 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얼핏 보면 불가능해 보이지만, 심리학과 같은 학문에서는 어떤 현상이나 효과가 '있다'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오히려 '그 효과는 없다'라는 가설에서 출발하는 독특한 방식을 사용하곤 한다. 마치 법정에서의 '무죄 추정의 원칙'처럼 말이다.
통계적으로 ‘유의하다’의 진실
'00이라는 처치를 가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 사이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나타났다.'
심리학 논문이나 기사를 보면 이렇게 '통계적으로 유의한 결과가 나왔다'라는 말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는 심리학이 나름의 방식으로 어떠한 것이 '있음'을 증명해 왔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통계적으로 '유의하다'라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도출된 것일까?
우리가 어떤 사람이 범인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법정 상황을 떠올려 보자. 법정에서는 '이 사람은 무죄이다'라는 가정을 먼저 세운다. 이것이 바로 '무죄 추정의 원칙'이다. 이후 검사는 이 사람이 유죄임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증거들을 제시한다. 만약 검사가 제시한 증거들이 '이 사람이 무죄일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판단될 만큼 강력하다면, 법원은 '무죄'라는 가정을 버리고 '유죄' 판결을 내리게 된다.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통계적 가설 검정 방식도 이와 매우 유사하다. 먼저 '귀무가설(Null Hypothesis)'이라는 것을 설정한다. 이 귀무가설은 우리가 증명하고 싶은 것과는 반대되는, 즉 '효과가 없다', '두 집단 사이에 차이가 없다'는 내용으로 세워진다. 예를 들어, 새로운 학습법이 성적을 올리는 효과가 있는지를 알아보고 싶다면, 귀무가설은 "이 학습법은 성적 향상에 효과가 없다"가 되는 것이다.
그다음은 '대립가설(Alternative Hypothesis)'을 세운다. 이는 귀무가설과 반대되는 가설, 즉 '효과가 있다', '두 집단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내용이다. 위 사례에서는 "이 학습법은 성적을 올리는 데 효과가 있다"가 된다.
이제 우리는 이 학습법을 적용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의 성적 데이터를 수집한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묻는다. “만약 학습법이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귀무가설이 사실이라고 가정했을 때(즉, 학습법을 적용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이 사실 동일한 집단일 때), 우리가 얻어낸 두 집단 간의 차이가 이러한 값이 나올 확률이 얼마나 될까?”
만약 그 확률이 매우 낮다면(심리학에서는 보통 5%를 기준점으로 삼는다), 우리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학습법에 효과가 없다고 하기에는 두 집단 간에 큰 차이가 있었고, 이러한 차이가 우연히 발생했다고 보기에는 그 확률이 너무 낮다." 그리고는 귀무가설을 '기각'하게 된다. 즉, 귀무가설이 참일 때 내가 얻은 표본 자료를 관찰할 확률이 5%보다 작으면, 이를 귀무가설을 기각할 만큼 충분히 강력한 증거로 보겠다는 뜻이다.
‘없음’을 증명할 수는 없는 걸까?
만약 ‘학습법이 효과가 없음’을 기각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생각해 보자. 그렇다면 우리는 그 학습법이 효과가 없다는 것을 입증한 것일까? 아니다. 그저 ‘효과 있음’이라고 주장할 만큼의 충분한 증거가 없으니 그렇게 추정할 뿐인 것이다.
법정의 사례에서도, 누군가가 ‘유죄’임을 입증할 충분한 증거를 못 찾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정말로 무죄’라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심리학에서 귀무가설을 기각하지 못할 때 ‘효과가 없음을 입증하였다’ 같은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앞선 택배 사례에서도 '없음'을 입증하는 것이 골치 아픈 일이었던 것처럼, 심리학에서도 무엇인가가 효과가 '없음' 또는 차이가 '없음'을 입증하는 것은 이러한 전통적인 통계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전통적인 귀무가설을 기각할지에 초점을 맞추는 통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 바로 '베이즈 통계(Bayesian Statistics)'다. 베이즈 통계는 귀무가설과 대립가설 각각에 대해, 데이터가 어느 가설을 더 강력하게 지지하는지를 직접적으로 비교한다. 이를 통해 베이즈 팩터(Bayes Factor)라는 값을 계산하여, 어떤 가설이 데이터에 의해 더 강력하게 지지가 되는지를 수치로 나타낼 수 있다.

▲사진 출처: Effect of luminance signal and perceived speed on motion-related duration distortions(2022.05)
위 표는 베이즈 팩터 값에 따른 해석의 기준을 보여준다. 베이즈 팩터가 1보다 크면 대립가설(H1)을 지지하는 증거로 해석하고, 1보다 작으면 귀무가설(H0)을 지지하는 증거로 해석한다.
예를 들어, 베이즈 팩터가 5라는 값이 나왔다면 이는 '대립가설에 대한 중간 정도의 증거(Moderate evidence for H1)'로 해석할 수 있다. 반대로 베이즈 0.2가 나왔다면, 이는 '귀무가설에 대한 중간 정도의 증거(Moderate evidence for H0)'로 해석한다.
이처럼 심리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들을 명확히 설명하고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도구와 방식을 탐색하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더 복잡하고 흥미로운 통계적 논리들이 심리학 연구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1) 박진호 외 4인, <통계학 R을 이용한 분석>, 자유아카데미, 2016
2) 석혜원 (2024), 서강대학교 실험설계및통계분석 강의 내용, 개인 수강 기록에 근거함
3) 이군희 (2021), 서강대학교 경영통계학 강의 내용, 개인 수강 기록에 근거함
4) Hiroshi Yoshimatsu 외 2인, "Effect of luminance signal and perceived speed on motion-related duration distortions", Vision Research, 2022
※ 심리학에 대한 더 많은 정보는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에 방문해서 확인해보세요!
※ 심리학, 상담 관련 정보 찾을 때 유용한 사이트는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 심리학, 상담 정보 사이트도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 재미있는 심리학, 상담 이야기는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psytimes.co.kr/news/view.php?idx=112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