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채원
[한국심리학신문=허채원 ]
이미지 생성 : Google Gemini
명절은 관계의 온도를 되살리는 시간이다.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이 안부를 묻고, 밥상머리에서 웃으며 지난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은 어떤 이념도 뛰어넘는 정(情)의 자리여야 한다. 그러나 그 평화는 종종 한 문장으로 무너진다.
“요즘 정치 보니까 말이야…”
따뜻한 온기를 나누던 명절 식탁은 삽시간에 얼음장이 되고, 가족의 얼굴을 한 이들은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눈다. 대체 무엇이 우리의 대화를 풀리지 않는 싸움으로 변질시키는 것일까?
정치얘기가 명절의 따뜻함을 깨는 데에는 '정서적 양극화'라는 개념이 작용한다. 기존의 '이념적 양극화'가 ‘정책적 견해나 이념의 차이’를 설명했다면, 정서적 양극화는 ‘감정의 분리’를 다룬다. 즉, 사람들은 이제 정치적으로 다른 집단을 단순히 ‘의견이 다른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들을 비호감, 심지어 혐오의 대상으로 느낀다.
연구에 따르면, 정서적 양극화는 민주주의의 기능적 기반을 흔드는 심리적 분열로 평가된다. 이는 선거 결과에 대한 불복, 다른 정부에 대한 무조건적인 불신, 정치적 폭력의 정당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 감정적 분리가 정치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치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인간관계 자체를 불편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시작된 정서적 양극화는 더 이상 미국 이야기만이 아니다. 유럽을 거쳐 이제 한국에서도 뚜렷하게 관찰되고 있다.
최근의 여론조사 기반 연구들은 ‘감정 온도계(feeling thermometer)’라는 문항을 사용해 이를 측정한다.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호감도를 0(매우 비호감)에서 100(매우 호감)까지 평가하는 방식이다.
그 결과, 한국에서도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대한 호감은 갈수록 높아지는 반면, 지지하지 않는 정당에 대한 호감도는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 이른바 내집단 편애(in-group favoritism)와 외집단 폄하(out-group derogation)가 동시에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즉, 정치적 ‘다름’이 이제는 ‘틀림’으로 변하고 있는 셈이다.
감정만 패자가 되는 게임
정치 이야기는 원래 사고를 확장하고 타인의 시각을 이해하기 위한 대화여야 하지만 정서적 양극화가 심화된 사회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논리보다 감정이 먼저 작동하고, 대화는 설득이 아니라 방어로 바뀐다.
이 순간부터 대화는 감정의 충돌이며, 누군가는 져야하는 제로섬게임이 된다. 대화 끝에는 웃음 대신 냉기와 미묘한 거리감 뿐이다.
기분 좋은 명절에는 정치 얘기는 잠시 식혀두자. 이 게임에는 이긴 족도 진 쪽도 없다. 서로의 감정만이 패자가 될 뿐이다.
- 참고문헌 -
경향신문.(2010.10.06).정치사회 갈등의 원인.https://www.khan.co.kr/article/201010052144035/
고승연. (2022).한국 정당 지지층 유권자들과 정치엘리트의 정서적 양극화: 뉴미디어 필터버블 효과를 중심으로.고려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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