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탕엔 곰이 없고, 영재고엔 영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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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탕엔 곰이 없고, 영재고엔 영재가 없다. - 대학 서열화가 만든 ‘쉬어버린 청춘’의 초상
  • 기사등록 2025-10-22 08:4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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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이제희 ]


청소년 우울감 1위의 대한민국


 

지난 10월 1일, 한겨레 2면은 한국 청소년의 위태로운 정신 건강을 다뤘다. 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가 발표한 「아동·청소년 삶의 질 2025」 보고서에 따르면, 청소년 정신 건강을 보여주는 세 가지 주요 지표가 1년 새 모두 악화했다. 특히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숙제나 시험 때문’이라고 답한 비율이 64.3%로 가장 높았으며, 청소년의 사망 원인 1위인 자살률 역시 증가세를 보였다.

 

‘자살률 1위’, ‘사교육비 1위’ 같은 표제는 이제 대한민국을 설명하는 흔한 문장이 됐다. 그러나 그 비율이 해마다 한계 없이 치솟는 현실은, 더 놀랄 수 없는 사회를 다시 놀라게 할 뿐이다. 카이스트 입학 처장을 지낸 이승섭 교수는 자사고·특목고 특강 초청 때면 강연을 이렇게 시작한다고 전했다.

 

“곰탕과 칼국수에 곰과 칼이 없듯이, 영재고에는 영재가 없다.”

 

이 말은 내 아이의 영재성을 믿는 학부모들에게 한국 교육의 쓸쓸한 현재 지표와 허상을 동시에 각인시키는 경고의 말일 것이다.

 

KBS 1TV <이슈 PICK 쌤과 함께> 162회 방송 캡처


수도권 과열의 대학 서열화


 

대학들은 한 번도 서열 경쟁에 직접 참여한 적이 없고, 실제로 서열을 매기기 위한 공식 제도도 존재하지 않는다. ‘서열’이라는 것은 사실 대학 교육의 질이 아니라 외부적인 요소들에 의해 만들어진 평가일 뿐이다. 그 때문에, 대학 간판의 서열은 SKY, 수도권대, 지방 국립대, 지방 사립대, 전문대 순으로 구조화됐다. 그로 인한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첫째. 수도권 과열이다. 서울대학교를 중심으로 대학이 형성되고 진학률이 높아지는 과정에서, 처음부터 모두가 서울을 고집했던 것만 아니다. 지방 국립대 역시 한때 수도권 대학과 견주며 과열 현상을 어느 정도 완화하는 역할을 했으나, 나날이 교육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 기능을 점차 잃었다. 이제 대학 입학자는 전공이나 진로보다 ‘수도권 진학’ 그 자체를 목표로 삼는 일률적인 흐름에 놓여진 것이다. 그 결과 수도권과 지방 간 격차는 더욱 벌어졌고, 지방의 우수 인재들이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며 지방 소멸 시대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둘째, 교육의 다양성을 파괴한다. 첫째가 ‘공간’에 대한 문제였다면 이번에는 ‘대학교 그 자체의 기능’에 대한 이야기이다. 본디 전문대학은 일반 대학과는 다른 목표를 지니고, 실무 중심의 교육과 전문가 양성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그러나 오늘 날의 대학 서열화 속 전문대학 진학은 특정 학과를 공부하기 위한 적극적인 선택이라기보다는, 고등학교 성적이 낮아 일반 대학에 진학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진학하는 소극적 결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일단 전문대학에 입학한 이후 일반 대학으로 편입하는 사례도 늘어나면서 전문대학이 본래 담당해야 할 교육 기능은 더욱 약화되고 있다. 결국 대학 서열화는 교육의 다양한 기능을 상실하고, 대학을 단일한 ‘입시 통로’로 전락시켰다.

 

‘쉬었음 청년’의 등장


 

대도시인 서울에서 20대의 삶을 그린 영화『대도시의 사랑법에서 주인공 재희(김고은)는 취업에 성공한 뒤 첫 회식 자리에서 상사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요즘 젊은이들은 새빠지게 취업 준비하고 입사하면 끝이라더라.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업무 태도가 영 별로야.”


대학을 졸업하면 곧장 취업하는 것이 당연했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운이 좋아 바로 취업을 했다 하더라도,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경제활동이 가능하지만 일하지 않고 있는 청년을 우리는 ‘쉬었음 청년’이라고 부르며, 실업자와는 다른 분류이다. 이들의 수는 사상 처음 50만 명을 넘어섰으며, 이는 청년 세대가 사회를 향한 누적된 피로감과 허무주의를 보여주는 상징적 지표로 해석할 수 있다.

 

쉬었음 청년의 증가는 분명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사회 문제다. 낯선 현실을 바라보는 부모 세대의 눈에는, 이들이 단지 게으르거나 의지가 부족한 세대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50만 명이라는 숫자를 개인의 문제로만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끊임없는 경쟁 속에서 자라온 청년들에게 ‘쉬었음’은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심리적 방어기제로 작동한다.


어릴 때부터 성적과 입시 결과로 평가 받아온 세대는 자신이 ‘성과로만 존재하는 인간’이라는 인식을 내면화했다. 그 과정에서 실패나 낙오를 곧 자기 존재의 부정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이로 인한 불안과 두려움은 ‘아예 시도하지 않음’이라는 방식으로 전환된다. 이는 임상심리학에서 말하는 회피적 대처(avoidant coping)로, 실패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일종의 자기 보호 전략이다.

 

또한, 사회심리학적으로는 ‘노력해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 현상이 청년층 전반에 퍼져 있다고 설명한다. 취업난, 비정규직 확대, 불안정한 미래가 엉켜 개인이 노력으로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 자체가 약화된 것이다. 그 결과 ‘쉬었음’이라는 상태는 더 이상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사회적 피로와 통제 불가능감이 빚은 집단적 증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서울대가 10개 생기면, 문제는 해결될까?



정부가 지역 균형 발전과 교육 과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세운 대표적인 교육 공약이 바로 <서울대 10개 만들기>로 대표되는 지방 거점 국립대 발전 전략이다.


이 정책의 핵심은 서울대를 제외한 지방 거점 국립대에 재정을 집중해 지방 대학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교육과 취업을 연계해 지역경제의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뚜렷한 방향성에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하는 반면 획기적인 내용 탓에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정책이 이미 국정과제 5개년 계획에 포함되었고 어떤 형태로든 결과를 내놓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어쩌면 위기에 처한 지역대학이 회생시킬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거점 국립대 9개를 살리기 위해 사립대 100개를 희생시키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입시 대학의 가치를 낮추는 방법



개천에서 용나는 시대는 끝났다. 게다가 빅데이터 시대에 문제를 잘 푸는 사람(Problem Solver) 대신 문제를 만들어내는 사람(Problem Maker)가 필요한 시대이다. 지금 청년들은 어린 시절부터 목표와 흥미 없이 과도한 공부와 불필요한 경쟁에 이미 지쳐 있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입시’ 중심의 대학 가치를 낮추는 것밖에 없다. 청년들에게도 ‘대학 입학’이 그들의 최종 목표일 리 없다. 대학에서는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소 잡는 방법과 닭 잡는 방법을 가르쳐야만 한다.

 

대한민국은 5천년 역사 속에서 지금까지 퍼스트 팔로어(First Follower)의 역할을 아주 성실히 수행해왔다. 한강의 기적,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의 도약 등 우리의 근면함과 실행력은 세계적으로 이미 입증되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누가 먼저 간 길을 빠르게 따라가는 것을 넘어 어디로 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는 것이다. 과거의 경험과 성공담만을 고집한 채 처음 서보는 길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 이 전환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신성장과 한계를 뛰어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참고 문헌

1) 정진상. (2010). 대학 서열체제와 그 해소방안. 경상대학교.

2) 김진영. (2022). 대학서열과 노동시장: 학벌 프리미엄의 시대별 변화. 건국대학교.

3) 이승섭. (2023). 교육이 없는 나라. 세종서적.

4) 한겨레. (2025). 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1221870.html

5) 중앙일보. (2025).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40339

6) 경향신문. (2025). https://www.khan.co.kr/article/202509172044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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