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의 선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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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선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 - 상급지의 지도 너머, 존재를 짓는 건축의 심리학
  • 기사등록 2025-10-14 08:5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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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김자훈 ]


“삶을 짓는다는 것은 결국, 마음의 구조를 세우는 일이다.”

요즘 부동산 관련 기사에 ‘상급지 지도’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서울 집값이 최근 4개월 사이에 4억이 올랐다는 기사도 낯설지 않다. 인간의 선택이 수익률로 평가되고, 삶의 방향마저 시장의 그래프 위에 그려진다.


그러나 나는 다른 지도를 택했다. 용인시 고기동. 자본이 몰리는 서울의 상급지는 아닐지 몰라도, 나에게는 의식의 중심에 자리한 공간이다. 그곳에서 나는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3층 단독주택을 한땀 한땀 설계했다. 각 공간의 크기와 질감, 그리고 창 하나에도 가족의 호흡을 담았다. 천창으로 스며드는 빛, 별을 보는 사랑스러운 아들과 딸의 시선, 주방과 거실을 잇는 동선, 그 모든 것을 고민하고 반영할 수 있게 허락된 것 자체가 나에게는 감사이고 은혜였다.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


이 말은 내가 진심으로 존경하는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의 말이다. 그는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인간이 절망 속에서도 삶을 견디게 하는 힘은 “쾌락”도 “권력”도 아닌, ‘의미의 발견’이라 했다.


프랭클에게 삶은 실험이 아니라, 끊임없이 응답해 나가는 창조적 책임(Creative Responsibility)이었다. 인간은 환경에 반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의미를 향해 스스로 응답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고기동의 집을 지으며 나는 그 사유를 매일 실감했다. 이 선택은 시장의 논리로 보면 결코 효율적이지 않다.

압구정 아파트에 사는 친구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이 공간에 애착이 있는 건 이해하지만, 투자 관점에선 비효율이야. 너무 애정 갖지 말고 잘 활용해.”


그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 현실적 조언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다른 가치의 좌표를 세우고 싶었다. 돈의 속도보다 의식의 깊이, 위치의 높이보다 존재의 중심을 택했다. 나에게 그 선택은 ‘합리적 의사결정’이 아니라, ‘의미 중심적 창조 행위’였다.


“공간은 인간의 무의식을 닮는다.” 


환경심리학자 로버트 기포드(Gifford, 2019)는 “공간은 인간의 무의식을 투영하는 거울이며, 사람은 자신이 속한 공간의 구조를 닮아간다”고 했다. 이 말은 단순한 건축학적 통찰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심리학적 구조에 대한 진술이다.


고기동의 집은 나와 사랑하는 가족에게는 단순한 주거지가 아니다. 그곳은 정신적 회복과 창조적 사유가 교차하는 장소다. 여기서 나는 논문을 쓰고, 사유를 기록하며, 아이들의 웃음을 통해 생명력을 배운다. 이 공간은 내 삶의 리듬을 재조율하고, 내면의 긴장을 해소하며, 새로운 ‘창조의 문장’을 쓰게 한다.


심리학자 케이트 하펠드(Hupfeld, 2022)는 이를 “건축적 회복탄력성(Architectural Resilience)”이라 불렀다. 즉, 공간이 인간의 정서적 안정과 창조적 잠재력을 되살리는 회복의 장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관점에서 본다면, 나는 지금 내 인생의 회복탄력성을 벽돌과 빛으로 번역하고 있는 셈이다.


“허문다는 것은, 자신을 다시 짓는 일이다.” 


나는 이미 한 번의 집을 허물었다. 그건 실패가 아니라 ‘내면의 진화’에 따른 구조적 전환이었다. 공간심리학적으로, 허무는 행위는 단순한 철거가 아니라 “기존의 사고 틀을 해체하고 새로운 인식 구조를 세우는 과정”(Wolff, 2021)으로 정의된다.


그래서 나는 두 번째 집을 지으며, 더 단단한 기초 위에 ‘의식의 구조체(Structure of Consciousness)’를 쌓고 싶었다.


상급지가 아닌, 상위의식의 지형 


나는 이제 ‘상급지’를 다르게 정의한다. 그건 더 비싼 땅이 아니라, 더 성숙한 의식이 머무는 지형이다. 고기동은 물리적으로는 도심의 외곽이지만, 정신적으로는 내 인생의 중심이다.


이곳에서 나는 경제적 자산을 넘어선 자본—의식자본(Conscious Capital)을 쌓고 있다. 투자 관점에서 여전히 비효율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다짐한다. “나는 이곳에서 더 창조적으로, 더 생산적으로 살아내겠다. 내 공간의 가치는 내가 창출하는 가치로 증명하겠다. 동시에 이곳에서 나,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사랑을 더 확장해나가겠다.”


그리고,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에게 


혹시 지금은 내 이야기가 멀게 느껴질 수도 있다. 삶이 무너지고, 모든 것이 버겁고, 내일이 막막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이렇게 전하고 싶다.


“공간보다 중요한 것은, 공간을 대하는 태도이다. 조건보다 강력한 것은, 의미를 선택하는 의지이다.”


프랭클이 말했듯,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통 없는 삶이 아니라, 그 고통에 어떻게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이다.”


본질적으로, 지금의 나의 고기동에서든 혹은 누군가의 비좁은 방 한켠에서든,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빛날 수 있는 존재의 언어라 믿는다. 


모쪼록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이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의미를 발견하시기를, 그리고 항상 가슴 뛰는 생의 의지 속에서 지금 이 순간의 신비로운 은혜와 영원성을 간직하시기를, 진심을 담아 마음속 깊이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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