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은
[한국심리학신문=김하은 ]

톨스토이의 '부활'
19세기 제정 러시아의 상류사회, 귀족 청년 네흘류도프는 누구나 부러워할 삶을 살고 있었다. 젊고 잘생긴 데다 넓은 토지를 소유하고, 상류층 인맥과 영향력을 고루 갖춘 그에게 세상은 언제나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는 뜻밖의 장소에서 과거의 유령처럼 나타난 한 여인을 마주한다. 배심원으로 출석한 법정에서 피고인의 자리에 선 사람은 바로 카추샤. 그가 학창시절 사랑했던 여인이자, 순수했던 시절의 자아가 투영된 존재였다. 두 사람의 관계는 한때 사랑이라 불렸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의 순수한 감정은 라일락이 흐드러지던 숲길에서 무르익었고, 이내 뜨거운 열정으로 번져갔다. 그러나 현실은 그들을 오래 붙잡지 못했다. 네흘류도프는 군에 입대하며 향락적인 삶에 빠졌고, 도덕적 기준은 점차 흐려졌다. 다시 만난 카추샤를 그는 유혹했고, 그녀의 순결을 앗아간 뒤 100루블을 건네며 떠났다. 죄책감은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자신의 안위와 체면이었다.
8년이 지난 후, 카추샤는 상인을 독살한 혐의로 법정에 선다. 그녀의 삶은 네흘류도프와의 마지막 밤 이후 무너져 내렸고, 아이는 얼마 안 가 세상을 떠났으며, 그녀는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유랑하다 결국 유곽으로 흘러들었다. 그렇게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보며 묘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이것은 과연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심리학자 로버트 스턴버그는 사랑을 세 가지 요소로 분석했다. 친밀감(Intimacy), 열정(Passion), 헌신(Commitment)이 바로 그것이다. 친밀감은 상대와 함께 있고 싶은 정서적 유대, 열정은 육체적 매력과 성적 끌림, 헌신은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의지와 약속이다. 이 세 요소는 다양한 조합으로 수많은 사랑의 형태를 만들어낸다. 로버트 스턴버그의 이론을 소설 '부활'에 적용해보면 네흘류도프와 카추샤의 과거는 분명한 친밀감의 단계였다. 라일락숲을 거닐며 나눈 감정은 단순한 설렘 이상의 것이었고, 둘만의 세계에서 행복을 느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 감정은 열정으로 전이되었고, 육체적 욕망의 실현으로 이어졌다. 문제는 그 열정이 성숙한 헌신으로 발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네흘류도프는 욕망을 해소하자마자 카추샤를 떠났고, 그녀는 모든 것을 잃은 채 혼자 남겨졌다. 세월이 흐른 후 다시 만났을 때, 네흘류도프는 죄책감과 과거의 그림자 속에서 카추샤에게 헌신하려 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속죄이지, 사랑의 형태로서의 헌신은 아니었다. 진정한 사랑의 헌신은 '죄책감에서 비롯된 보상심리'가 아니라,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앞으로의 삶을 함께 책임지겠다는 의지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는 종종 사랑을 오해한다. 열정에 빠져드는 순간,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 믿는다. 그러나 열정은 대체로 일시적이며 감각에 의존한다. 학자들에 따르면, 열정적 사랑의 지속 기간은 평균 1년에서 2년 남짓이라고 한다. 이후 사랑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친밀감과 헌신이 보완되어야 한다. 하지만 네흘류도프와 카추샤의 관계는 그 진화를 겪지 못했다. 그들은 일시적 열정에 스스로를 내맡겼고, 충분한 감정적 유대와 미래에 대한 약속 없이 관계는 붕괴되었다.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지나친 헌신은 사랑이 아니라 자기파괴일 수 있다는 점이다. 카추샤는 네흘류도프의 구원 의지 앞에서도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녀는 이미 너무 많은 상처를 겪었고, 단지 그의 용서를 통해 다시 태어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지 않는다. 그것은 단순한 슬픔이나 냉소가 아니라, 오히려 자기 존재에 대한 단호한 회복의 의지였다.
완전한 사랑은 친밀감, 열정, 헌신이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스턴버그의 사랑 이론에 따르면, 이 세 가지 요소 중 하나라도 결여될 경우, 사랑은 왜곡되거나 지속되기 어렵다. 네흘류도프와 카추샤의 관계는 초기에는 친밀감이 있었고, 잠시 열정으로 타올랐지만, 그것이 책임감 있는 헌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에서 미완의 사랑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의 헌신은 이미 뒤늦은 죄책감의 산물로, 온전한 사랑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 소설은 사랑의 이상을 아름답게 그리는 대신, 사랑이 부재했을 때의 인간적인 비극과 구조적 폭력을 날카롭게 보여준다. 톨스토이는 단순히 남녀의 감정 서사를 넘어,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발생하는 책임 회피와 자기기만, 그리고 그것이 상대방에게 어떤 삶의 파괴를 불러오는지를 고발한다. 이 소설 속 ‘부활’은 감정의 회복이 아니라, 양심과 인간성, 그리고 사랑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탄생이다. 결국 우리가 이 이야기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단순하다. 사랑은 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지속적인 선택이며, 그 선택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른다는 것이다. 사랑을 한다는 말은 곧 상대를 존중하고, 상처 입히지 않기 위한 태도와 실천을 포함해야 한다. 네흘류도프가 끝내 카추샤를 구원하려 애쓴 것은 단순한 속죄가 아니라, 뒤늦게나마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실천하려는 노력의 일부였다고 볼 수 있다.
『부활』은 사랑이 단순히 개인 간의 감정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어떻게 책임을 묻고, 구원을 말할 수 있는지까지 탐색한 작품이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여전히 스턴버그가 말한 ‘완전한 사랑’을 꿈꾸지만, 그에 앞서 우리가 반드시 묻고 실천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지금 누군가를 정말로 사랑하고 있는가, 아니면 사랑이라 착각하고 있는가?”
출처
친애하는 내 마음에게 (강영준)
부활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심리학, 사랑을 말하다 (로버트 스턴버그)
사랑은 어떻게 시작하여 사라지는가 (로버트 스턴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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