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민
[한국심리학신문=이경민 ]
▲ 사진 출처: 픽사베이
우리는 누군가가 거짓말을 할 때, 쉽게 ‘저 사람은 못됐다.’, ‘사기꾼이다’라고 판단하곤 한다. 특히 빌린 돈을 갚지 않고 “갚았다”고 주장한다면, 의심 없이 그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 단정 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거짓말이 정말 ‘의도된’ 것일까?
그 사람이 나빠서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생물 심리학에서는 이를 다르게 본다. 특히 만성 알코올 중독 환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작화증(confabulation)이라는 현상은 우리가 가진 ‘거짓말 = 나쁜 사람’이라는 도식을 흔든다. 작화증은 기억이 손상된 상태에서, 본인도 모르게 그 빈틈을 거짓된 기억으로 메우는 현상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거짓이 의도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은 속이려고 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본인조차 그게 사실이라고 믿고 있다.
이 현상은 코르사코프 증후군 환자들에게서 자주 관찰된다. 실제로 환자들의 뇌를 부검해 보면, 비타민 B군의 결핍으로 인한 영양실조로, 간뇌 부위에서 아세틸콜린 뉴런이 대량으로 소실된 것이 확인된다. 이 뉴런들은 기억을 저장하고 인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뉴런들이 손상되면, 사람은 특정 시점 이후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의 구멍’을 겪게 된다.
불안을 못 견디는 뇌
그럼에도 우리의 뇌는 이 구멍을 그대로 두지 않는다. 내가 어느 날의 특정 시간에 대한 기억이 완전히 존재하지 않으며, 그런 일이 일주일에도, 심지어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난다고 생각해 보자. 이런 상황이 불안해서 견딜 수 있을까? 뇌는 개체가 그런 극심한 불안을 겪도록 두지 않으며, 기억의 공백을 주변의 단서, 평소의 가치관, 익숙한 시나리오로 덮는다. 예를 들어, 어떤 알코올 중독 환자가 친구에게 3만 원을 빌려놓고도 “지난주에 갚았다”라고 주장하는 상황을 떠올려보자. 그는 정말로 갚은 기억이 있다고 말하며, 자세한 정황까지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갚은 적이 없다.
심리학은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갚아야 한다는 생각은 분명히 했고, 갚았다고 믿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행동에 옮긴 적은 없다. 뇌는 이런 공백을 ‘갚았다’는 식으로 보완해 버린 것이다. 그 과정에서 본인에게 유리한 이야기가 덧씌워지기도 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다.’
미워하기 전에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이와 같은 현상은 우리가 인간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거짓말을 했으니 나쁜 사람이다.’ 또는 ‘엄청 악의적인 사람이다.’라는 결론을 내리기 전에, 우리는 한 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혹시 그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혹은 뇌의 손상이 그에게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지울 정도로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
물론 이 모든 설명이 그 사람의 행동을 정당화해 주는 것은 아니다. 돈을 빌리고 갚지 않은 사실, 기억의 오류로 인해 타인을 곤란하게 만드는 일은 실제로 존재하며, 그 피해는 현실적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 현상을 이해함으로써, 어쩌면 누구보다도 우리 자신의 마음이 제일 먼저 편해질 수 있을 것이다. 저 사람이 다분히 나한테 악의가 있다고 믿고 있을 때보다, ‘아픈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 끓어오르는 분노로부터 조금 차분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판단보다 먼저, 이해가 개입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렇게 쉽게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거짓말을 잘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단지, 때로는 그런 거짓말조차도 그 사람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뇌가 그를 대신해 선택한 것일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고 싶다. 이해는 면죄부가 아니지만, 미움을 잠시 유보하게 만드는 힘은 될 수 있다.
*참고문헌
1. 이연경 (2024), 서강대학교 학습심리학 강의 내용, 개인 수강 기록에 근거함
2. Mark A. Gluck 외 2인(2019), 학습과 기억(제 3판) 뇌에서 행동까지, 시그마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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