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빈
[한국심리학신문=한영빈 ]
정부가 급등하는 집값을 잡기 위해 지난 10월 15일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확대하고 대출 규제를 강화하는 대책을 내놓자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사진은 지난 10월 19일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뉴스1
통제의 역설, 30년 만에 다시 본 풍경
정부가 지난 10월 15일 발표한 부동산 대책을 보며 30년 전 어느 심리학 실험이 떠올랐다. 쥐에게 먹이를 주다가 갑자기 끊으면 어떻게 될까. 쥐는 더 필사적으로 레버를 누른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소거 폭발(extinction burst)'이라 부른다. 사라질까 두려워 더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서울 전역과 경기 12개 지역을 규제지역으로 묶고, 25억원 넘는 집은 대출을 2억원으로 제한한 이번 대책. 정부는 과열된 집값을 잡겠다고 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발표 직후 중개업소마다 급매물을 찾는 전화가 폭주했고, 온라인 부동산 카페는 "지금이라도 사야 하나"는 글로 도배됐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답은 인간 심리에 있다.
행동경제학의 대가 대니얼 카너먼은 사람들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을 2.5배 더 아프게 느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손실회피 편향'이다. 규제지역 지정은 잠재적 구매자들에게 "지금 사지 않으면 영영 내 집 마련 기회를 잃는다"는 공포를 심어줬다.
특히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6억원에서 2~4억원으로 줄어든다는 소식은 실수요자들에게 치명적이었다. 한 30대 직장인은 말했다. "지금도 빠듯한데 대출마저 줄면 평생 전세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규제는 투기를 막으려 했지만, 오히려 내 집 마련을 꿈꾸던 평범한 사람들의 불안을 자극했다.
마트에서 "1인당 2개 한정"이라는 문구를 보면 괜히 사고 싶어진다. 희소성이 가치를 높인다는 심리학의 기본 원리다. 10월 20일부터 토지거래허가제가 시행된다는 발표는 "19일까지 계약하면 규제를 피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읽혔다.
실제로 발표 직후 사흘간 서울과 수도권 부동산 중개업소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한 중개업자는 "마감 세일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규제가 시장을 진정시키기는커녕 '마지막 기회'라는 심리를 부추긴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뒷받침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확증편향'이다. 이번 대책 발표 후 부동산 시장은 두 진영으로 쪼개졌다.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규제가 강화되니 결국 집값은 더 오른다"며 안도했다. 반면 무주택자들은 "또 기회를 놓쳤다"며 절망했다. 같은 정책을 놓고 정반대로 해석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양극화가 사회적 갈등을 키운다는 점이다. 부동산을 둘러싼 세대 갈등, 지역 갈등이 더 깊어졌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은 개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학습된 무기력'을 발견했다. 반복적으로 전기충격을 받은 개는 나중에 도망칠 수 있는 상황에서도 포기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걸 학습하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정부는 수십 차례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6·27 대책, 9·7 대책에 이어 이번 10·15 대책까지. 하지만 집값은 잡히지 않았고,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꿈은 점점 멀어졌다. "정부 대책이 나와도 어차피 달라질 게 없다"는 무기력감이 퍼졌다. 이런 불신은 어떤 정책도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번 대책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의 심리를 간과했다는 점이다. 규제와 금지만으로는 사람들의 불안을 잠재울 수 없다. 오히려 반발과 회피 행동을 불러온다.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행동을 바꾸려면 환경을 바꿔야 한다고. 집값이 오르는 이유는 단순하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대출을 막고 규제를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실수요자들이 안심하고 집을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공급을 확대하고,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실질적인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단기적인 시장 진화제가 아니라 장기적인 신뢰 회복이 필요하다.
그 동안 취재하며 깨달은 게 있다. 시장은 결국 사람의 마음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정책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아무리 강력한 규제도 소용없다. 사람들이 "정부가 진정 우리 편이구나"라고 느껴야 비로소 불안이 가라앉는다.
이번 대책은 그 신뢰를 더 멀리 밀어낸 것 같아 안타깝다. 규제 일변도의 정책은 투기꾼보다 평범한 시민들을 더 힘들게 한다. 집 한 채 마련하려는 서민들이 죄인 취급받는 사회가 건강할 리 없다.
심리학은 말한다. 불안은 불확실성에서 온다고.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시장을 통제하는 게 아니라 미래에 대한 확신을 주는 것이다. 언제쯤 우리는 집 걱정 없이 살 수 있을까.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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