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전쟁》 4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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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심야서재 ]



민호는 새벽녘에 홀로 언덕 위에 앉아 있었다.

밤새 피워둔 모닥불은 이미 꺼졌고, 

연기만이 얇게 피어올랐다.

그는 손에 작은 종잇조각을 쥐고 있었다.

그 종이에는 희미하게 남은 이름 하나, 

‘윤희’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 

그가 마지막으로 본 아내의 이름이었다.

불길 속에서 사라져버린 기억이 이제서야 꿈결처럼 되살아나고 있었다.


“살아있을까…”


민호의 목소리는 바람에 섞여 사라졌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종이를 가슴에 품었다.

천막 쪽에서 청년이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뜨거운 죽 한 그릇이 들려 있었다.


“아침입니다. 조금이라도 드셔야죠.”


민호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그릇을 받았다.


“고맙네. 

너도 이제 꽤 어른스러워졌군.”


청년은 웃었다.


“전쟁이 사람을 빨리 자라게 하나 봅니다.”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멀리서는 새가 울고, 그 뒤로 햇살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민호는 그 빛 속에서 문득 말했다.


“내가 잃어버린 이름들이 있어.

가족의 이름, 동료의 이름, 그리고… 나 자신.”


청년은 그의 옆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그 이름들을 다시 찾아야죠.

여기서부터 시작합시다.”


그날 오후, 사람들은 폐허가 된 논밭을 다시 일구기 시작했다.

손에 쟁기 대신 나무막대기를 쥐었지만, 

그들의 눈빛은 굳세었다.

민호와 청년도 함께 흙을 고르며 새로운 밭을 그렸다.

아이들이 웃으며 씨앗을 던졌고, 

어른들은 그것을 흙으로 덮었다.

그 작은 동작 하나하나가, 

마치 ‘전쟁의 끝’을 증명하는 의식처럼 느껴졌다.

민호는 손에 묻은 흙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했다.


“이 흙 위에서, 이름 없는 사람들이 다시 태어나겠지.”


청년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제 이 땅에 이름을 붙여야겠네요.”

“그래. 

이름 없는 전쟁 속에서도,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로.”


밤이 되자, 공동체에는 오랜만에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부드럽게 흥얼거렸고, 

아이들이 따라 불렀다.

민호는 조용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속으로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오랜만에, 

마음 깊은 곳에서 미소가 피어올랐다.




작가의 말

46화에서는 민호의 내면적 회복과 ‘이름’을 통한 정체성의 회복을 중심으로 전개했습니다.

그가 잃어버린 것은 단지 사람과 집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공동체와 청년의 존재는 그에게 새로운 의미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이제 《이름 없는 전쟁》은 단순한 생존의 이야기를 넘어,

전쟁이 남긴 상처 위에 ‘인간다움’을 다시 세우는 서사로 전환됩니다.

다음 화에서는 민호가 잃어버린 가족의 흔적을 찾게 되는 첫 단서가 등장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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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10-24 16: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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