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용
[한국심리학신문=박성용 ]
출처: 굿윌헌팅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아마 다들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문구이기도 하고, 실제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래 남고 있는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과거에 비해, 사람들이 다정함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는 시대가 된 듯하다. 실제로 여자들에게 이상형을 묻는 질문에 “다정한 사람”을 꼽는 대답도 흔히 들을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사회적인 분위기 변화의 반영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람을 만나면 가장 먼저 “MBTI가 뭐야?”라고 묻는다. 그리고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너 T야?”라고 쉽게 말하곤 한다. 공감을 못하면 T, 감정에 공감하면 F라는 이분법적 인식 속에서, ‘다정함’은 하나의 사회적 미덕이자 성격 지표처럼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다정함은 타고나는 기질이 아니라, 노력과 에너지로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다. 스스로를 깎아내어 다른 사람을 채워주는 행위, 애정과 인내가 필요한 정서적 노동이다. 그래서 나는 다정함이 하나의 ‘체력’이라고 생각한다. 여유 있는 하루, 감정적으로 지치지 않은 날이기에 우리는 비로소 타인을 신경 쓸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현대사회가 겪고 있는 역설이 시작된다.
다정함의 역설
‘공감 피로’란 타인의 고통을 지속적으로 공감하고 수용하면서 생기는 정서적 탈진 상태를 말한다. 심리학자 찰스 피글리는 이를 “타인의 트라우마에 간접적으로 노출되어 생기는 2차 외상”이라 정의했다. 즉, 남의 슬픔을 느끼고 위로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서 에너지가 소진되어버리는 현상이다.
처음에는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고 돕고자 하지만, 일정 시점이 지나면 감정적 무감각, 냉소, 무력감이 찾아온다. “더 이상 아무 감정이 들지 않는다”, “도와줘도 소용없다”는 생각이 대표적이다. 이는 공감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공감이 과도해 감정이 ‘마비’된 결과다.
공감 피로는 특히 상담사, 의료진, 교사, 사회복지사 등 ‘타인을 돕는 직업군’에서 흔하다. 이들은 항상 친절하고 이해심 많은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노동은 마음의 체력을 소모시킨다.
코로나19 시기, 의료 종사자의 절반 이상이 공감 피로를 경험했다는 연구가 있다. 하루 종일 환자의 고통, 죽음, 불안을 마주하면서도 흔들리지 않아야 했던 그들은 결국 타인의 고통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렸다. 다정함이 그들의 직업적 기술이자 생존 전략이 되었을 때, 그 다정함은 곧 소모품이 되었다.
착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심리
흥미롭게도 한국 사회에서 ‘다정함’은 단순한 성격 특성이 아니라, 사회적 평가의 기준으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착해야 한다”, “다정해야 사랑받는다”는 메시지를 수없이 듣는다. 이러한 규범은 성별과 세대에 따라 다르게 작동해왔다.
특히 여성에게는 다정하고 공감적인 태도가 사회적 미덕으로 강조된다. 타인의 감정을 세심히 살피고, 말투와 표정을 부드럽게 유지하는 것이 ‘성숙한 여성의 모습’으로 규정된다. 반면 남성에게는 여전히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냉철함’과 ‘이성적 판단력’이 이상적인 특성으로 요구된다. 이러한 성 역할의 고정관념은, 다정함을 누군가에게는 의무로, 누군가에게는 결핍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세대 차이도 뚜렷하다. MZ세대와 Z세대는 이전보다 감정 표현에 훨씬 개방적이지만, 역설적으로 ‘공감 잘하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더 높은 평가를 받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공감을 못하면 ‘무뚝뚝한 사람’,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지 않으면 ‘비사회적인 사람’으로 낙인찍히기도 한다. 이처럼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다정함’의 기준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결국 다정함은 더 이상 순수한 인간적 덕목이 아니라, 사회적 압박과 자기검열의 결과물로 변해가고 있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마음은 자연스러운 욕구지만, 그 욕구가 타인의 기대에 의해 조종되기 시작할 때, 다정함은 자기소모적인 역할극이 된다. 이런 문화적 압박 속에서 ‘다정한 사람일수록 더 빨리 지쳐가는 역설’이 나타난다. 공감은 원래 관계를 회복시키는 감정이지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수행되는 공감은 오히려 정서적 피로를 가중시킨다.
다정함이 ‘해야 하는 일’로 전락할 때, 우리는 더 이상 따뜻함을 느끼지 못한다. 그저 ‘착해야 하는 사람’으로 살아남기 위해, 마음의 에너지를 소모할 뿐이다.
자기연민 – 자신을 돌보는 다정함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다정함이 나를 병들게 하지 않을까? 심리학자 크리스틴 네프는 ‘자기연민’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이는 단순히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타인에게 주는 것과 같은 친절과 이해를 베푸는 태도다.
“괜찮아, 오늘은 힘들 수 있어.”
이 한 문장이 자기연민의 핵심이다. 자기연민이 높은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면서도 그것을 자신의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결과, 공감의 에너지를 지키고 지속할 수 있다.
다정한 마음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러나 그 다정함이 살아남기 위해선, 먼저 자신에게도 다정해야 한다. 공감은 나눔의 언어지만, 회복이 없는 공감은 언젠가 침묵으로 변한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감정의 깊이’가 아니라 ‘감정의 지속성’이다. 지치지 않고, 마모되지 않고, 오래도록 따뜻할 수 있는 힘 그것이 진짜 다정함의 체력이며, 인간다움의 마지막 형태일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Figley, C. R. (1995). Compassion fatigue: Coping with secondary traumatic stress disorder in those who treat the traumatized. Brunner/Mazel.
Neff, K. D. (2011). Self-compassion: The proven power of being kind to yourself. HarperCollins.
김정연 (2022, 11월 13일). “공감 피로에 지친 사회복지사들, 마음 돌봄 필요.” 한겨레신문.
박지은 (2023, 4월 7일). “‘착한 마음도 체력이 필요하다’… 공감 피로의 심리학.” 한국일보.
정혜윤 (2022, 9월 19일). “공감의 시대, 지쳐가는 마음들.” 중앙일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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