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전쟁》 5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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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호는 아이를 품에 안은 채, 이틀째 길을 걷고 있었다.

비가 내린 산길은 진흙투성이였고, 신발 밑창은 이미 닳아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빛에는 피로 대신 결의가 서려 있었다.

그는 가끔 아이를 내려놓고 숨을 고르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조금만 더 가자. 

해온리만 넘으면… 어쩌면…”


언덕 너머로 희미한 연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폐허가 아닌 사람의 냄새, 삶의 온기였다.

그곳이 바로 해온리였다.

마을 입구에는 나무로 엉성하게 세운 문이 있었다.

문 앞에는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서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과, 

세상을 다 본 듯한 눈빛이 있었다.


“여긴… 해온리입니까?”


민호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노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기 남은 자들이 모인 곳이오.

누군가를 찾는 얼굴이군.”


민호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윤희라는 여인을 찾고 있습니다.

혹시… 이곳에 왔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으십니까?”


노인은 눈을 가늘게 뜨며 기억을 더듬었다.


“윤희라… 낯익은 이름이오.

아이들을 돌보던 여인이었지.

전쟁 중에도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었소.”


민호의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그녀가… 지금도 여기에 있습니까?”


노인은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몇 달 전, 북쪽으로 떠났소.

식량을 구하러 나섰다 했는데… 소식은 들리지 않네.”


민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의 품에서 잠들어 있던 아이가 작게 몸을 뒤척였다.

노인은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그 여인은 강했소.

그 눈빛은, 어떤 전쟁도 꺾을 수 없는 사람이었지.”


민호는 천천히 숨을 고르며 속삭였다.


“그렇다면… 나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아이를 다시 품에 안았다.

그 순간, 

멀리서 마을의 종소리가 울렸다.

해온리의 하루가 시작되는 소리였다.

민호에게는 그것이 새로운 운명의 시작처럼 들렸다.


밤이 되자, 

민호는 마을의 헛간 한켠에서 아이를 재웠다.

지붕 사이로 별빛이 스며들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윤희… 정말 이 길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지?”


그리고 오랜만에, 그는 깊은 잠에 빠졌다.

꿈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호야, 봄이 오면 다시 만나자.”




작가의 말 :

50화에서는 민호가 해온리에 도착하며 새로운 인물 ‘박 노인’과 마주하는 전환점을 그렸습니다.

이 장면은 윤희의 생존 가능성을 확증하는 동시에, 

전쟁 이후에도 이어지는 ‘인간의 희망’이라는 주제를 확장시키는 구간입니다.

다음 화(51화)에서는 민호가 해온리 사람들과 교류하며 윤희의 남은 흔적, 

헝겊 조각과 노랫소리의 기억을 발견하는 이야기가 이어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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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10-30 08:4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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