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훈
[한국심리학신문=신동훈 ]

누구나 살아가면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다. 오랜 친구와의 밤, 어린 시절 익숙한 골목, 또는 첫사랑과의 잊지 못할 주말. 그리움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더 깊어진다. 심리학에서 향수(노스탤지어, nostalgia)는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감정만이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 적응, 심리적 회복력과 밀접하게 연결된 복합적인 감정으로 여겨진다.
향수의 긍정적인 효과
현대의 연구들은 향수가 긍정적 심리작용을 유도한다는 결과를 제시한다. 예를 들어, Wildschut 박사가 진행한 연구에서는 향수가 자아존중감을 높여 사람을 더욱 낙관적으로 만든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실제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한 그룹은 소중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다른 그룹은 평범한 최근 일상을 생각했다.
그 결과, 과거의 따뜻했던 추억에 빠진 그룹이 삶에 대한 만족과 낙관적 전망에서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고통을 겪는 사람이 향수에 잠겨 자신의 추억을 글로 기록할 때, 실제로 통증 강도가 완화된다는 생리학적 변화도 관찰됐다. 이는 향수가 뇌의 시상(thalamus) 영역을 자극해 고통 신호를 줄여준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처럼 향수는 심리적 회복력과 자기 이해의 자원으로 작동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유대감 강화와 미래에 대한 긍정적 전망에도 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 과거를 긍정적으로 해석할 줄 아는 힘이 현재의 위기와 고독을 극복하게 하며, 향수를 느끼는 순간 우리는 더 행복하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점이 최근 심리학의 주요 발견이다.
향수의 부정적인 효과
그리움과 향수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 향수의 감정이 이따금 후회와 연결될 때, 현재의 행복을 저해하거나 우울,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연구들도 존재한다. David B Newman 박사는 내담자가 과거의 아픔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그리움이 슬픔으로 바뀌고 현재를 도외시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반면, 적절히 다루어진다면 향수는 삶의 연속성을 복원하고 자기 회복력, 사회적 유대감을 강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가족이나 친구와 공유된 기억은 사회적 연결감, 즉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통찰과 경험’을 강화한다고 밝혀졌다.
이와 같이 향수와 그리움이 후회로 변모하는 데에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비가역적 성질’이 기여하는 바가 있다. 후회는 과거 선택에 대한 평가, 자기 효능감 변화, 현재 만족감 저하와 관련이 깊다.
하지만, 후회 역시 통합적으로 다룰 수 있다. 긍정적인 추억에 집중하고, 현재에 의미 있는 경험을 더하는 것은 후회의 감정이 지나친 자기비난으로 치닫지 않도록 완충 역할을 한다. 결국 인간은 지나간 과거에서 자기자신에게 좋은 것, 유익한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가 있는 생명체이다.
그리워한다는 건 존재한다는 뜻
한편, Routledge 박사는 “향수는 존재의 뿌리, 실존감을 확실히 느끼게 해 줄 뿐 아니라 죽음에 대한 감정까지 더 잘 다룰 수 있게 도와준다”고 설명했다. 흥미롭게도, 향수 감정의 빈도와 강도는 청년기에 매우 높으며, 이후 감소하다가 노년기에 다시 증가한다.
인생의 후반기인 노년기는 신체적, 심리적 변화가 두드러지는 시기다. 신체적 기능의 저하와 함께 사회적 역할 축소, 배우자 상실 등의 경험이 흔하게 찾아오면서 심리적 고립감과 소외감이 증대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시기는 자신의 삶을 통합적으로 되돌아보고 자아 통합을 이루는 중요한 발달 단계로 여겨진다.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이론에 따르면, 노년기는 ‘자아통합 대 절망’의 갈등을 겪는 시기로, 자신의 과거 경험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며 삶에 의미를 부여할 때 심리적 평안과 통합감을 경험한다.
이 과정에서 향수는 과거의 긍정적인 기억을 떠올리게 하여 긍정적인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고 심리적으로 회복하도록 돕는다. 특히 노년기에는 친근한 사물이나 장소에 대한 애착이 증가하며, 이는 정서적 안정과 연결감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이처럼 향수는 노년기의 정서적 도전 속에서 심리적 자원을 제공하여 더욱 풍부하고 자기 수용적인 삶을 영위하도록 돕는다.
또한 젊은 층에게는 사회적 변동기(진학, 취업, 관계 변화)에서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 그들의 정체성 변화를 돕는 긍정적 자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청년들은 정체성 위기를 겪으며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끊임없이 질문한다. 사회적 변화 속에서 다양한 역할과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부담감도 크다.
그러나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향수는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자신과 과거 경험 간 연속성을 확인하고 통합하는 프로세스다. 이는 자아정체성 확립에 필수적인 긍정적 자원으로 작용한다. 또한, 향수를 통해 청년들은 자신의 독특성과 가능성을 탐색하고, 다양한 자기의 모습을 일관된 정체성으로 통합할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자존감을 강화하고 사회적 적응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결국, 그리움은 미래를 위한 자기 이해와 성장의 밑거름이 된다.
그대가 그리운 걸까, 그때가 그리운 걸까
“그대가 그리운 건지, 그때가 그리운 건지”라는 물음에는 정답이 없다. 우리는 그리운 사람, 타인을 통해 ‘그 시절’을 되살리고, 그 시절에 존재했던 ‘그때의 나’를 다시 발견한다. 애틋했던 시간에 대한 아쉬움은 그 시간을 함께했던 소중한 사람을 더욱 그립게 만든다.
그리움, 향수, 후회는 인간의 삶을 풍부하게 하는 정서적 자원임을 심리학 연구들은 말한다. 과거의 시간과 사람을 추억하고 그리며, 지금 여기의 나 자신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삶의 의미를 다시 발견해낸다면 우리의 마음 건강을 챙기고 주변 사람과의 관계에 깊이와 끈끈함을 더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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