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서재

아침의 해온리는 고요했다.
어제 내린 비로 인해 흙길은 촉촉했고,
집집마다 연기가 천천히 피어올랐다.
민호는 헛간 밖으로 나와 아이의 이마를 어루만졌다.
작은 손이 그의 손가락을 붙잡았다.
“이제 괜찮다.
여긴 안전해.”
그는 스스로에게도 들리지 않게 중얼거렸다.
박 노인은 아침부터 장작을 패고 있었다.
민호가 다가가자 노인은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밤은 잘 잤소?”
“예, 오랜만에… 사람 사는 냄새를 맡았습니다.”
노인은 도끼를 내려놓고 나무토막 위에 걸터앉았다.
“전쟁이 지나간 자리엔 항상 둘 중 하나요.
죽음이 남거나, 삶이 남지.”
민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마을의 어린 소녀가 달려왔다.
“할아버지! 그 헝겊 조각, 제가 가져와도 돼요?”
소녀의 손에는 낡은 천이 쥐어져 있었다.
그 천에는 희미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윤희’
민호의 시선이 그 천에 고정되었다.
“그건… 어디서 난 거니?”
소녀는 천진하게 대답했다.
“산비탈 밭 근처에서요.
예쁜 누나가 두고 갔어요.
노래를 부르다가… 갑자기 울었어요.”
민호의 목이 말라왔다.
“언제 그랬지?”
“음… 눈이 오기 전이니까, 두 달쯤 전?”
박 노인은 잠시 침묵하다가 민호를 바라보았다.
“그 여인 말이오.
우리 마을에 와서 아이들을 돌봤지.
밤이면 아이들에게 자장가를 불러줬소.
그때부터 이 마을 아이들이 잠을 잘 자게 되었지.”
민호는 눈을 감았다.
그 노래, 그 목소리
그건 틀림없이 윤희였다.
그날 밤,
민호는 아이를 재운 뒤 천 조각을 손에 쥐었다.
손끝에서 천의 거친 질감이 느껴졌다.
거기엔 피처럼 묻은 얼룩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는 속삭였다.
“윤희, 너도 이 길을 걸었구나.”
불빛이 천천히 흔들렸다.
바람이 헛간의 틈새를 스쳤다.
그 바람 속에서, 그는 분명히 들었다.
“민호야, 나 아직 여기 있어.”
다음날, 민호는 박 노인에게 물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떠난 곳이 어딥니까?”
노인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북쪽 산맥을 넘었소.
식량을 구하러 간다 했지만… 난 믿고 있소.
그 여인은 언젠가 돌아올 거요.”
민호의 시선은 산맥 너머로 향했다.
그의 마음속에는 이제 두려움보다 확신이 자리했다.
윤희는 살아 있다.
그리고 그는 다시 길을 떠날 준비를 했다.
작가의 말 :
51화는 《이름 없는 전쟁》의 세 번째 전환점으로,
민호가 윤희의 생존을 확신하게 되는 장면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습니다.
‘헝겊 조각’과 ‘노래의 기억’은 전쟁 속에서도 남아 있는 사랑과 인간성의 상징입니다.
다음 화(52화)에서는 민호가 해온리의 지도자 ‘박 노인’과 더 깊은 대화를 나누며,
윤희가 남긴 사람들에게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녀는 단순히 한 사람의 연인이 아닌, 희망을 전한 존재로 그려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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