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전쟁》 53화
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밤새 비가 내렸다.

해온리의 초가지붕 사이로 물방울이 떨어졌고, 

장작불은 축축한 연기를 내뿜었다.

민호는 노인에게 받은 천 조각을 손에 쥔 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천 조각에는 글자가 희미하게 번져 있었다.


“당신이 이 글을 본다면, 

나는 아직 살아 있어요.”


그리고 그 아래에는 흐릿하게,

‘북쪽으로 간다. 꼭 찾아와요.’ 라는 문장이 있었다.

민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윤희가 왜 북쪽으로 향했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로 떠날 수는 없었다.


다음날, 

민호는 박 노인을 찾아갔다.

노인은 불 피우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떠날 생각인가?”

“예. 하지만… 그녀가 왜 북쪽으로 갔는지 알고 싶습니다.”


노인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여인은 남쪽의 난민들을 모아 보호했지.

하지만 이 마을엔 식량이 부족했소.

그래서 북쪽으로 가서 물자와 약품을 구하려 했던 거요.”

“그럼, 다른 누군가와 함께였습니까?”

“그래. 젊은 남자 하나가 동행했다오.

이름은 모르지만, 전쟁 전엔 의사였다고 하더군.”


민호의 눈빛이 흔들렸다.


“의사라면… 그 남자도 그녀를 지키려 했겠군요.”


노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세상은 잔혹하지.

그 후로 두 사람 모두 소식이 끊겼지.”


그날 저녁, 민호는 마을의 창고에서 잠시 몸을 쉬고 있었다.

한쪽 벽에는 누군가의 낡은 필통과 종이들이 남아 있었다.

그는 무심코 종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 종이에는 윤희의 필체로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이름 없는 전쟁에도, 누군가의 희망은 살아 있다.”


그 아래에는 또 다른 글씨가 덧붙여져 있었다.

그건 윤희의 것이 아니었다.

굵고 단호한 필체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우리는 북쪽 마을에서 다시 모일 것이다.”

“그곳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될 것이다.”


민호의 심장이 멎는 듯했다.

윤희는 단순히 생존을 위해 간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또 다른 희망을 만들기 위해 떠났던 것이다.


밤이 깊어지자, 

민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빛은 흐릿했지만, 

그 속에 윤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너는 늘 나보다 멀리 있었구나.”


그리고 결심했다.

이제 북쪽으로 간다.

윤희가 남긴 길의 끝, 그곳에서 진실을 마주하기 위해.


새벽녘, 민호는 아이를 등에 업고 마을 어귀에 섰다.

박 노인이 그의 앞에 다가왔다.


“그 여인도 떠날 때 저 하늘을 봤소.

자네도 같은 하늘을 보게 될 거요.”


민호는 짧게 웃었다.


“이 길이 끝나면, 꼭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노인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기억하게.

전쟁은 총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다시 사람을 믿는 순간 끝나는 거요.”




작가의 말 :

53화는 윤희의 ‘북쪽 행’의 의미가 밝혀지는 장면으로,

이제 민호의 여정이 단순한 ‘찾기’에서 ‘진실로의 길’로 확장됩니다.

윤희는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위험을 택했고,

민호는 그 믿음을 이어받아 ‘전쟁 속의 마지막 인간성’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다음 화(54화)에서는 민호가 북쪽으로 향하는 길에서 다시 전쟁의 잔당들과 마주하고,

그 속에서 윤희가 남긴 신념을 행동으로 증명하는 전투 장면이 펼쳐집니다.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psytimes.co.kr/news/view.php?idx=11482
  • 기사등록 2025-11-05 11:19:52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