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전쟁》 5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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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새벽 공기가 산등성이를 휘감았다.

민호는 아이를 등에 업고, 

무너진 다리를 건너 북쪽으로 향했다.

안개 사이로 들리는 바람소리는 마치 누군가의 속삭임처럼 들렸다.


“조심해…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의 눈앞에는 전쟁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타버린 전차, 녹슨 철조망, 

그리고 이름 모를 시체들이 산길 아래 흩어져 있었다.

정오 무렵, 민호는 산 중턱의 폐가에 도착했다.

그곳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숨어 있었다.

허기진 눈빛, 피로에 젖은 손들.

그들은 모두 피난민이자, 

전쟁의 잔여물이었다.

민호가 조심스레 물었다.


“이 근처에서 사람들을 공격하는 무리가 있다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사내 하나가 대답했다.


“맞아요. 

북쪽 잔당들이 이쪽으로 내려왔습니다.

식량을 빼앗고, 사람들을 끌고 가죠.”


민호는 아이를 안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있는 곳을 아십니까?”

“산 아래 협곡입니다. 하지만 혼자 가면 죽습니다.”


민호는 잠시 생각하다가, 

아이를 피난민 여인에게 맡겼다.


“부탁드립니다. 

이 아이만은 꼭 지켜주세요.”


그리고 그는 총을 들었다.

해질 무렵, 협곡은 붉게 물들었다.

민호는 바위 틈 사이로 몸을 숨기고, 적들의 동태를 살폈다.

다섯 명의 무장한 남자들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웃고 있었다.

그들의 곁에는 약탈한 물자와 사람들의 소지품이 쌓여 있었다.

민호는 총구를 들어 올렸다.

손끝이 떨리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살기 위한 전투자’가 아니라,

‘누군가를 지키는 인간’이었다.

첫 발이 터졌다.

소리가 울리자 동시에 새들이 날아올랐다.

두 번째, 세 번째 총성이 이어졌다.

혼란이 일었고, 불빛이 흔들렸다.

짧은 전투가 끝났을 때, 협곡엔 다시 침묵이 흘렀다.

민호는 피범벅이 된 손으로 총을 내려놓았다.

그의 숨은 거칠었지만, 눈빛은 고요했다.

그는 쓰러진 적들의 곁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낡은 가방 하나, 그 안에는

‘해온리 의료 보급용’이라 적힌 서류와

윤희의 글씨체로 쓴 쪽지가 들어 있었다.


“이 물자를 지켜야 해요.

사람들이 다시 살아날 수 있게.”


민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이 물자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북쪽으로 향했던 것이다.

그는 쪽지를 가슴에 품었다.

그리고 속삭였다.


“그래, 윤희… 네가 지킨 길을 이제 내가 잇겠다.”


밤이 되자, 협곡의 불길이 꺼져갔다.

별빛이 흐릿한 하늘 위에서 부서졌다.

민호는 붉은 불빛 속에서 윤희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그를 향해 있었다.

그는 걸음을 돌려 다시 산 위로 향했다.

아이와 피난민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이제 그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작가의 말 :

54화에서는 《이름 없는 전쟁》의 두 번째 절정부가 펼쳐졌습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전투가 아니라, 민호가 윤희의 신념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를 몸소 실천하는 장면입니다.

그는 전쟁의 불길 속에서도 ‘희망의 불씨’를 다시 붙이며,

전쟁의 폭력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지켜내려 합니다.

다음 화(55화)에서는 해온리에 남아 있던 청년이 새로운 위협과 마주하며, 

민호에게서 배운 신념을 이어가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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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11-06 09:5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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