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전쟁》 5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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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안개가 해온리의 골짜기를 감싸고 있었다.

민호는 불빛이 희미해진 마을 언덕 위에서 총을 손질했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눈 밑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불과 하루 전, 

윤희의 의료 보급품이 도착하고

마을 사람들은 처음으로 ‘희망’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평화는 너무 짧았다.

저 멀리, 

산 너머에서 또다시 굉음이 울렸다.

포탄의 불꽃이 어둠을 찢으며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수혁이 달려와 외쳤다.


“민호 형! 북쪽 잔여 부대가 다시 움직입니다.

이쪽으로 오는 게 확실합니다!”


민호는 총의 탄창을 채우며 대답했다.


“여기까지 왔으면, 우리가 마지막 방어선이야.”


그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은주는 부상자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있었다.

그녀의 손은 떨리고 있었지만, 눈빛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당신들… 꼭 살아 돌아와요.”


그 말에 민호는 잠시 멈추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가 떠오르기 직전, 해온리 외곽은 이미 포화 속이었다.

적의 깃발이 산등성 너머로 보였다.

수혁은 벽 뒤에 몸을 숨기며 물었다.


“형, 우리… 이길 수 있을까요?”


민호는 짧게 웃었다.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야.

시간을 버는 거야. 사람들이 도망칠 수 있도록.”


그 순간, 포탄 하나가 마을 입구를 강타했다.

흙먼지와 불꽃이 뒤섞여 하늘로 솟았다.

수혁은 귀가 멍해진 채 총을 들었고,

민호는 불길을 뚫고 앞으로 나섰다.

총성이 터졌다.

붉은 새벽빛 속에서 총탄이 스치고,

불길 사이로 민호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는 쓰러진 동료를 부축하며 외쳤다.


“끝까지 버텨라! 이 마을만은 지켜야 한다!”


수혁은 바위 뒤에서 숨을 고르며 주변을 살폈다.

그의 시선이 한쪽 폐허에 멈췄다.

거기엔 윤희의 이름이 적힌 낡은 표지판,


“해온리 임시의료소”


그는 이를 악물었다.


“민호 형이 지킨 길… 이제 우리가 이어야 해.”


그는 총을 다시 쥐고, 몸을 일으켰다.

전투는 몇 시간 동안 이어졌다.

불길, 피, 그리고 절규 속에서

해온리의 하늘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민호는 마지막 탄을 장전하며 속삭였다.


“윤희, 나 아직 약속 못 지켰어… 하지만…”


그의 손끝이 떨렸고, 눈앞이 붉게 번졌다.

그때, 멀리서 들려오는 트럭의 엔진 소리.

은주와 마을 사람들을 태운 차량들이 언덕을 넘어가고 있었다.

민호는 미소 지었다.


“이제 됐다…”


그는 총구를 들어 마지막 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하늘이 붉게 타오르고,

안개 속에서 포성이 울렸다.


그날 아침,

해온리엔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무너진 건물 사이로 새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그 새는 불길이 남긴 연기 사이를 가르며

북쪽 하늘로 사라졌다.




작가의 말 :

56화는 《이름 없는 전쟁》의 세 번째 절정이자,

민호의 ‘희생’과 ‘전승(傳承)’이 교차하는 전환점입니다.

윤희의 신념을 이은 민호는 끝내 자신을 던져

사람들의 생존을 지켜냈습니다.

다음 화(57화)에서는

민호의 희생 이후 살아남은 수혁과 은주,

그리고 해온리 사람들의 새로운 선택이 다뤄집니다.

그들은 ‘전쟁 이후의 삶’을 마주하며,

진정한 평화를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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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11-10 09:4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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