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서
[한국심리학신문=조은서 ]
현대인들이 호소하는 역설적인 피로가 있다. 주말에 넷플릭스 시리즈를 정주행하고, 침대에 누워 유튜브 쇼츠를 무한 스크롤 하며, SNS를 순회해도 월요일이 되면 더 지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게으름이나 체력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수동적 자극 소비'가 우리 뇌를 제대로 쉬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휴식 시간이 늘었는데 만족도는 낮아졌다
통계청의 '2024년 생활시간조사'에 따르면 여가시간 중 미디어 이용이 2시간 43분으로, 5년 사이에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ICT 기기 사용 시간은 더욱 급증해 1시간 8분에 달했으며, 이는 5년 전의 36분 대비 약 2배 증가한 수치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경험률과 만족도의 불일치다. 컨슈머인사이트가 ’23년 하반기~’24년 상반기에 진행한 여가문화 실태 조사에 따르면 '오락·휴식' 부문이 경험률에서 압도적 1위(79.4%)를 차지했으나, 만족도는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반면 요가·필라테스(만족도 76.6%), 수영(76.4%), 산책·걷기(만족도 11위) 등 신체활동을 동반한 여가는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뇌가 '진정한 휴식'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신경과학적 관점에서 이 현상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이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다. DMN은 우리가 일에 집중할 때는 활동이 줄어들지만, 멍 때리거나 명상할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들을 통칭한다. 뇌는 사용할수록 활성화된다는 기존 이론을 뒤집는 이 발견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오히려 인간의 집중력과 창의성이 발달한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미디어 소비를 통해 끊임없이 외부 자극을 뇌에 공급한다. 인지부하(cognitiveload)란 특정 과제의 정보처리를 위해서 필요한 지적노력의 총량을 말한다(Sweller,1998) 인지부하이론(Cognitive Load Theory)에 따르면, 영상과 SNS는 계속 새로운 자극을 제공함으로써 뇌의 '주의 자원'을 지속적으로 소모한다. 이는 마치 러닝머신에서 계속 뛰고 있는데 멈춘 줄 아는 것과 같다. 뇌는 외형상 쉬고 있어도 내부적으로는 지속적인 인지 처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오픈서베이 대학 생활 트렌드 리포트 2025 온라인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3.6%가 번아웃을 경험했다고 답했으며, 번아웃 해소 방법으로 '잠·휴식'(59.3%), '친구·가족과의 대화'(42.1%), '좋아하는 음식 섭취'(38.8%)를 꼽았다. 흥미롭게도 'AI와 상담'을 시도한 비율(15.4%)이 전문가 상담(12.1%)보다 높게 나타났으며, 이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정신적 해소마저 기술 도구에 의존하는 흐름을 보여준다.
'생산성의 압박'이 만든 역설적 피로
흥미롭게도 현대인들은 휴식 시간마저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심리적 강박을 경험한다. 이는 '자기계발 문화'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MZ세대는 "쉬는 시간에도 뭔가 배워야 한다"거나 "힐링도 인증되어야 한다"는 암묵적 압박을 느낀다. 결과적으로 휴식이 또 다른 '과제'가 되어버렸다.
더 심각한 것은 수면 시간의 감소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10세 이상 국민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8시간 4분으로, 5년 전보다 8분 줄어들었다. 평균 취침 시각은 오후 11시 28분으로 5년 전보다 4분 늦어졌으며, 이는 야간 미디어 이용 시간의 증가와 직결된다.
청년층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국무조정실 '2024년 청년의 삶 실태조사'을 보면, 청년층의 디지털 의존성과 정신건강의 문제가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청년층의 스마트폰 중독 위험군은 전체의 6.5%로, 2년 전 대비 약 1.5배 증가했다. 하루 8시간 이상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경우도 12.4%에 달했다.

진정한 휴식, '적극적 휴식'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해법은 '적극적 휴식(Active Rest)'이다. 이는 단순한 수동적 자극 소비가 아닌, 의식적이고 주체적인 회복 활동을 의미한다.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활동에는 여행, 운동, 수다, 걷기, 먹기, 명상 등과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 이들은 모두 뇌의 DMN을 적절히 활성화하면서도 새로운 신경 회로를 형성하는 활동들이다.
실천 가능한 방법들은 다음과 같다:
하루, 의도적 비자극 시간 만들기: 스마트폰 없이 산책하거나 명상하는 시간
스크린 없는 저녁 루틴 구축하기: 잠들기 1~2시간 전부터 전자기기 사용 중단
관계적·감각적 활동: 친구와의 대면 대화, 명상, 요가, 간단한 요리
자연 속에서의 시간: 숲길 산책이나 바닷가 산책은 심신을 진정시키고 스트레스를 낮추는 데 효과적
규칙적인 수면 패턴 유지: 매일 같은 시간에 잠들고 일어나는 습관
결론: 지금 이 글을 읽는 순간에도 당신의 뇌는 피곤해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뇌는 또다시 작동하고 있다. 글자를 따라가고, 정보를 처리하고, 불안감을 느끼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뇌의 활동은 멈추지 않는다. 현대인은 쉴 새 없이 자극을 받아들이는 삶에 길들여져 있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쉬는 법'을 배우기 위해 이 긴 글을 읽어야 했던 것 아닐까.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는 우리가 멍하게 있을 때 가장 활발하다. 바쁘고 정신없을 때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뇌 속에서는 산재된 정보들이 서로 연결되고, 창의성과 통찰이 피어난다. 하지만 끊임없는 스크롤과 알림은 이 과정을 방해한다. 뇌는 외부 자극을 처리하느라 내부적 통합과 자기 성찰의 기회를 잃는다.
더욱 문제적인 것은 도파민이다. 짧고 강한 자극의 반복이 도파민 시스템을 과도하게 자극하면, 우리의 뇌는 '결핍'을 향해 계속 갈망하게 된다. 정상적인 삶의 속도가 너무 느려 보이고, 무언가를 계속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것이 '가짜 휴식'의 악순환이다.
그렇다면 진짜 휴식은 무엇인가. 명상과 같은 의도적인 '멍 때리기'는 뇌의 디폴트 모드를 최적 상태로 조정한다. 기술의 완전한 거부가 아니라, 현명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하루 중 단 1시간이라도 '화면 없는 시간'을 만들어보자. 침실과 식탁을 '디지털 프리 존'으로 지정하고, 밤 10시 이후에는 모든 알림을 꺼두자. 이것이 극진한 자기관리가 아니라, 생존 전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글을 닫는 순간부터 시작하자. 스마트폰을 탁자에 내려놓고, 창밖을 잠시 바라보자. 아무도 당신에게 이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5분, 10분의 '비자극 시간'이 당신의 뇌와 마음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 경험해보는 것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그 순간, 당신은 비로소 진정한 '온전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1) 김지은, "2024년 생활시간조사 결과", 2024.07.28.,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https://www.korea.kr/briefing/policyBriefingView.do?newsId=156721673
2) 김민화, "여가활동 만족도 1위 '운동·스포츠하기' 그 중 1위는 '요가·필라테스'", 2024.09.23., 컨슈머인사이트, https://consumerinsight.co.kr/voc_view?no=3585&id=pr10_list&PageNo=1&schFlag=0no=3585&id=pr10_list&PageNo=1&schFlag=0
3) 서예지. (2024). 「한국인의 사회적 안녕감에 대한 질적 연구: 사회적 연결감, 사회정체성, 사회비교를 중심으로」. 한국심리학회지.
4) 조희연, "[심리학 교실] `더 나은 나`를 위한 충전의 시간…잠시 멍때리기", 매일경제, 2020.03.07, https://www.mk.co.kr/news/economy/9231522
5) 배지혜. "스마트패드를 활용한 학습에서 인접성 원리가 학업성취와 인지부하에 미치는 영향." 국내석사학위논문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2013. 서울
6) 김나연. (2023). 「SNS 이용시간이 삶의 만족도와 자아존중감에 미치는 영향」. KISDI
7) 오선아. 김연순. 정은경 . (2010). 「인지부하를 고려한 의학교육 교수-학습 설계 」. 전남대학교
8) 오픈서베이, "대학 생활, 갓생과 번아웃이 교차하는 2025년 풍경", 2025.09.23., https://blog.opensurvey.co.kr/article/university-life-2025-2/
10) 김세원, "[청년발언대] 디지털 세대의 그늘", 청년일보, 2025.10.25., https://www.youthdaily.co.kr/news/article.html?no=200095
11) 최인철, "[최인철의 프레임] 공간으로 시간을 사다",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 2018, http://test.narangdesign.com/mail/snu2/201808/a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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