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민
[한국심리학신문=이경민 ]

▲사진 출처: 픽사베이
노화의 과정에서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상실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기억의 상실', 즉 알츠하이머병을 꼽는다. 그러나 기억의 상실만큼이나 일상과 존재를 고통스럽게 마비시키는 또 다른 퇴행성 질환이 있다. 바로 파킨슨병(Parkinson's Disease, PD)이다.
신경과 의사이자 작가인 올리버 색스의 저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는 파킨슨병을 앓던 '맥그레거 씨'의 기묘한 경험이 등장한다. 93세의 이 노인은 파킨슨병으로 인해 마치 피사의 사탑처럼 몸이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졌는데도 , 정작 본인은 자신이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의사가 자신이 걷는 모습을 비디오로 찍어서 보여주고 나서야 사람들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었다. 그는 젊은 시절 목수였던 경험에 빗대어 "뇌 속에도 수직을 재는 수준기 비슷한 것이 있지 않나요?"라며, "파킨슨병 때문에 그게 고장 났고 그래서 내가 이렇게 된 것인가요?"라며 자신의 상태에 대해 통찰했었다.
우리의 균형은 속귀 감각, 고유감각, 시각이라는 세 가지 감각 제어 시스템의 통합으로 유지된다. 맥그레거 씨의 경우처럼, 파킨슨병으로 인해 이러한 감각 정보들의 '통합'이 손상되었고, 그는 자신의 몸이 기울어진 것을 인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처럼 파킨슨병은 단순한 운동 장애를 넘어,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고 움직이는 방식 자체를 뒤흔들기도 한다.
파킨슨병이란?
파킨슨병은 기저핵의 기능 장애와 운동 통제의 진행성 퇴화를 포함하는 신경성 질환이다. 국내 파킨슨병의 유병률은 10만 명당 27.8명이나 , 60세 이상에서는 166명으로 연령이 높아짐에 따라 환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양상을 보인다.
파킨슨병의 주요 증상은 다음과 같다.
진전(Tremor): 신체 일부가 주기적으로 떨리는 증상이다. 진전은 발병 시 69%의 환자에서 관찰되나, 임상 경과 중에는 89%에서 진전이 관찰되어 대부분의 환자들이 갖게 될 것으로 추정된다.
강직(Rigidity): 근육이 굳고 뻣뻣해진다.
서동증(Bradykinesia): 몸의 움직임이 느려지는 증상이다.
동결(Freezing): 일시적으로 움직임이 중단되는 현상이다.
동결 증상 중에서는 보행 동결(FoG)이 가장 일반적이다. 이전에 횡단보도에서 초록불이 되었는데도 걸음을 떼실 수 없던 어르신을 뵌 적이 있었다. 그런데 곁에 있던 간병인 분이 앞으로 오셔서 할머니 손을 잡고, “하나, 둘!” 하시며 첫걸음을 같이 떼주시고 나니, 할머니가 그다음부터는 너무 자연스럽게 걸어가기 시작하셨다. 위와 같이 보행을 ‘시작’할 때뿐만 아니라, 파킨슨병 환자들은 문지방이나 좁은 공간을 지날 때, 혹은 방향을 바꿀 때 움직임이 갑자기 멈추는 보행 동결을 자주 겪을 수 있다.
도파민이 운동에 있어서도 중요하다고?
우리는 흔히 도파민을 쾌락이나 중독의 호르몬으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사실 파킨슨병에서 나타나는 운동 관련 증상들은 도파민의 결핍과 큰 연관이 있다.
파킨슨병은 뇌의 흑질 치밀부(SNc)에 모여있는 도파민 작동성 뉴런 숫자가 감소하는 질환이다. 흑질 신경세포는 대뇌의 선조체(Striatum)로 도파민을 공급하는 흑질선조로를 이루는데, 파킨슨병이 진행될수록 흑질이 탈색되어 있고 신경세포들이 변성된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이로 인해 기저핵 시스템 내의 도파민 수준이 감소하고, 기저핵은 정상적인 운동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 특히, 뇌의 도파민 농도가 80% 이상 감소해야 비로소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므로, 증상을 처음 느낄 때는 적어도 수년 전부터 파킨슨병이 진행되어 왔다고 봐야 한다.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까
파킨슨병에 대해 현재까지 완치(Cure) 치료제는 없으며, 완치된 사례도 한 건도 없다. 현재 사용되는 방법들은 질환의 증상을 완화하고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치료(Treatment)이다.
도파민 부족이 파킨슨병의 핵심 원인이므로, 뇌혈관장벽(BBB)을 통과할 수 있는 도파민의 재료인 레보도파(Levodopa)가 가장 보편적인 치료제로 사용된다. 레보도파는 자율신경계 이상 증상을 제외한 모든 파킨슨병의 증상을 치료할 수 있을 정도로 효과가 좋다. 그러나 많은 양을 장기간 사용하면 이상운동증이나 마모현상 같은 운동 합병증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부작용을 줄이고 뇌로의 도파민 전달 효율을 높이기 위해, 레보도파는 보통 카비도파(Carbidopa)와 함께 복용된다. 레보도파는 뇌혈관 밖(말초신경)에서 AAD 효소에 의해 도파민으로 변환되어 낭비되고 오심·구토 같은 부작용을 유발하는데 , BBB를 통과하지 못하는 카비도파는 말초신경에서 AAD 효소를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이로써 더 많은 레보도파가 뇌로 도달할 수 있게 되고, 위장관에 대한 부작용 빈도가 20% 이하로 낮아져 더 많은 양의 레보도파 처방이 가능해진다.
약물 치료 기간이 오래되어 부작용으로 치료 효과가 떨어질 경우, 뇌 기저부에 전극을 삽입하여 전기 자극을 통해 신경회로의 이상을 조절하는 뇌심부 자극술(DBS)이 대안으로 이용된다. DBS는 파킨슨병과 같은 이상운동질환의 수술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방법이다.
이식된 자극용 전극은 전기를 흘려서 파킨슨병의 증상을 일시적으로 완화시키며 , 수술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레보도파에 대한 반응이 좋아야 한다. DBS는 떨림, 서동증, 경직, 이상운동증, 운동 동요 증상 등에서 수술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 특히 시상하부핵에 시행한 경우 약물 용량을 수술 전 대비 50%가량 줄일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장기 추적 관찰 연구 결과, DBS는 중증 파킨슨병에 대해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법이며, 전극이 양측 하시상핵 내에 잘 들어간 환자일수록 더 높은 생존율과 11년 이상 보행 가능한 상태를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파민을 넘어서
파킨슨병에 대한 현재의 치료법들이 증상 완화에 큰 기여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질병의 진행을 막지 못하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가장 큰 미충족 수요 중 하나는 파킨슨병의 본질적인 병인을 겨냥한 바이오마커가 부재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기존의 진단 기준이나 정의로는 파킨슨병에서 보고되는 다양한 이질적인 아형을 반영하기 어려워, 새로운 생물학적 정의나 진단, 등급 분류 등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결국, 도파민 결핍을 보충하는 현재의 치료를 넘어, 질병의 진행 자체를 막거나 되돌릴 수 있는 본질적인 파킨슨병 치료제가 개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혁신적인 약물 전달 시스템, 디지털 치료제, 인공지능 기반 임상연구 디자인 및 모델링 등이 요구된다. 현재의 성과를 바탕으로 도파민을 넘어선 근본적인 병인 규명 및 치료제 개발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절실하다.
<참고문헌>
1) Hye Ran Park 외 17인, “Long-term outcomes of bilateral subthalamic nucleus deep brain stimulation for patients with Parkinson’s Disease: 10 years and beyond”, Neurosurgery [Neurosurgery] 2022 Nov 01; Vol. 91 (5), pp. 726-733. Date of Electronic Publication: 2022 Sep 02.
2) “바이오마커 부재 파킨슨병, 도파민 넘어선 접근 필요”, (2025.08.28.), https://www.mo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5959
3) 비위듀, <(비위듀의) 파킨슨병 치료약 길라잡이 / 개정보증판>, 맑은샘, 2023
4) 김동일, <안녕 파킨슨: 파킨슨병과 함께 하는 삶>, 지식공감, 2018
5) 박주홍, <(뇌박사 박주홍의) 파킨슨병 이야기>, BM 성안북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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