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채원
[한국심리학신문=허채원 ]
이미지출처 : pinterest(https://pin.it/76e8NfqIL)
필자는 결정장애가 있다. 배달음식 하나를 시키는 데에도 두시간이 걸린다. 한시간은 식당 검색과 리뷰 읽기에 쓰고, 또 한시간은 머릿속에서 추려진 후보를 저울질하는데 쓴다. 후기는 좋은데 금액이 높고, 가성비는 좋은데 위생에 문제가 있는 것 같고, 무난할 것 같은데 최소주문금액이 걸리고.. 등등 이렇게 비교하고 계산하다 보면 이미 절반쯤 지쳐 있다. 그리고 긴 고민 끝에 선택한 식당이 기대보다 맛이 없으면 다음번 선택은 더더욱 신중해진다.
맛집을 고르는 일은 즐겁지만 동시에 부담스럽다. 고려할 요소가 너무 많고, 무엇을 선택하든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여야한다는 강박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식당 하나를 정하는 것도 이런데 인생의 더 중요한 결정 앞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좋은 경험보단 실패를 피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소요하고 있다.
데이터가 많아지면서 선택은 쉬워질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선택은 더 어려워졌다. 이유 중 하나는 인간이 가진 부정편향 때문이다. 사람은 원래 긍정적인 정보보다 부정적인 정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리뷰가 많을수록 좋은 평가와 나쁜 평가가 동시에 늘어난다. 그런데 우리는 칭찬보다 단 한 줄의 악평에 더 크게 반응한다. 결국 정보가 늘어날수록 ‘혹시 이런 문제가 생길까’ 하는 상상도 함께 커지고, 그에 따라 행동은 더 소극적으로 변한다.
문제는 신중함 자체가 아니라 그 신중함이 어느 순간부터 경험을 좁히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리뷰가 없으면 불안해서 가지 못하고, 익숙하지 않은 선택은 위험하다며 피하고, 한 번의 실망을 크게 느끼며 다음 시도 자체를 주저하게 된다. 이렇게 ‘실패 가능성’을 피하다 보면 결국 ‘새로운 가능성’도 함께 사라진다. 어느새 내 세계는 무난하고 익숙한 선택들로 채워지며 단조롭게 좁아진다.
돌아보면 나를 진짜 성장하게 했던 경험들은 대부분 예상 밖에서 생겨났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지만 기억에 오래 남는 시도, 처음이라 서툴렀지만 나중에는 웃으며 돌아볼 수 있었던 순간들, 망했다 싶었지만 그 과정에서 뭔가가 바뀐 경험들. 완벽한 선택은 원래 없고,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순간을 통해 더 많이 배워왔다. 그러니 실패 가능성을 ‘제로’로 만들려는 태도는 결국 나를 안전하게 하는 게 아니라 더 작게 만든다.
데이터를 참고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데이터가 나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과 리스크를 없애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후자는 삶에서 움직임을 빼앗는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태도는 완벽한 준비가 아니라 불확실함을 조금 허용하는 용기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는 태도다. 식당 선택도 그렇고 인생의 선택도 그렇다. 가끔은 적당히 고민하고, 적당히 감으로 고르는 편이 오히려 더 풍부한 경험으로 이어질 때가 있다. 실패가 조금 섞여도 괜찮다. 흔들려도 괜찮다. 우리가 바라는 건 실패 없는 삶이 아니라, 너무 숨 막히지 않는 삶이다. 그래서 조금 더 유연하게, 조금 더 힘을 빼고 살아도 된다. 어쩌면 그게 지금 시대에 필요한 가장 현실적인 용기일지도 모른다.
-참고 자료-
안우경. (2022). 씽킹 101: 더 나은 삶을 위한 생각하기 연습. 흐름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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