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희
[한국심리학신문=이제희 ]
전형적인 고위 공직자의 모습을 떠올리면 우리는 자연스레 50~60대, 전문직 출신, 남성의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최근 들어 청년과 여성의 도전이 그 자리를 위협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전통적 고위 공직자 집단의 영향력은 견고하다. 이 고정관념은 단지 오래된 사회 구조의 흔적일까?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21대 국회 개원식 사진 (출처 뉴스1)
왜 고위 공직자, 국회의원, 흔히 ‘높은 사람’이라 불리는 이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은 남성일까?
그들이 먼저 그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자리를 유지할 '자격'이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일까?
더욱 흥미로운 점은, 정기적으로 선거라는 공정한 시스템이 작동하는 민주주의에서도 이 현상이 반복된다는 사실이다.
혹시 우리는 알게 모르게, 50~60대 남성이야말로 공직에 가장 적합하자는 어떤 암묵적 기준을 학습해온 것은 아닐까?
사회 축소판에 관하여
민주주의의 핵심은 ‘누구나 국가의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시민 모두가 직접 국정 운영에 참여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나의 의사를 대신 결정할 대표를 선택한다. 대표를 정하는 방식을 두고 많은 논의가 이어져오고 있지만, 요점은 이것이다.
“그 대표는 누구인가?”
오랫동안 정치인들은 엘리트, 전문직, 고령 남성 중심으로 구성되어 왔다. 이들은 경험이 많고 정치적 자원도 풍부하다고 평가를 받아왔으나, 사회 전체를 온전히 반영하기란 어렵다. 정치학에서는 이를 대표성의 편향이라 부르며, 특정 집단의 과잉 대표 혹은 과소 대표가 의사 결정 방향에 영향을 준다고 본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국회가 사회의 ‘축소판(miniature society)’이어야 한다는 요구이다. 즉, 성별, 연령, 지역, 계층, 장애 여부 등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의회 안에도 당연히 자연스럽게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해본 사람이 잘할까요? 하던 사람이 잘할까요?
국회가 사회의 축소판이 되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은, 정치가 각 집단이 살아온 경험과 그에 담긴 가치를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로 본다. 현실의 문제는 결국 그 삶을 살아본 사람에게 가장 먼저 보이고, 가장 깊게 체감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다양한 사회적 배경이 의회에 참여할 때 사회 전체의 문제를 고르게 파악할 수 있다는 믿음이 이 관점을 떠받친다.
반면, ‘하던 사람이 잘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정치가 단순한 경험의 공유나 공감으로 해결되는 영역을 넘어, 전문적 이해와 숙련을 요구하는 분야라고 본다. 이들에게 필요한 조건은 '나와 같은 경험'이 아니라 정책을 실제로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다. 복잡한 제도, 예산, 협상, 입법 기술은 하루아침에 익힐 수 없는 만큼, 정치 역시 경험의 연속성이 필수적이라고 여긴다. 한마디로 이들에게 대표는 '나의 대리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한국인의 정치 인식 유형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A 집단은 공정성과 현실 경험을 정치적 핵심 가치로 둔다. 이 집단은 사회 구조가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경향이 크고, 그 불균형을 정치로 조정해야 한다고 본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정치인이 내 삶에 겪어온 불공정을 얼만큼 잘 알고 이해하고 있는가이다. 그렇기에 국회가 사회의 축소판처럼 구성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큰 공감을 표한다.
청년, 여성, 지방, 장애인 등 서로 다른 삶의 조건들이 정치에 반영될 때 비로소 정책이 현실을 바꿀 가능성이 생긴다고 믿는다. 이들의 심리적 기저에는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대표자가 등장할 때, 정치적 효능감이 높아진다.”는 정서가 자리한다. 이들에게 경험 자체가 능력의 일부이다.
A와는 다른 B 집단은 고도의 정보 처리와 정책 설계 능력을 요구하는 전문 영역이라고 보기 때문에, 새로운 목소리가 아니라 전문화된 인력을 필요로 한다. 이들은 후보자의 경력, 전문 지식, 제도 이해 능력과 같은 ‘기술적 역량’을 대표 선출에 가장 중요한 판단 근거로 여긴다. 새로운 인물이나 다양한 배경보다도, 이미 검증된 경력과 일관된 정책 노선을 가진 후보에게 안정감을 느낀다. 공약이나 비전에 관한 판단 기준 역시 실행 가능성, 논리적 일관성, 이념적 정합성으로 판단한다. 논쟁의 갈등선은 바로 이 두 심리 유형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경남 유일 여성 과반수의 고성군 의회는 뭐가 좀 다를까요?
경남에서 유일하게 여성 의원이 과반을 차지한 기초의회가 바로 고성군 의회다. 비례대표 의석 증가와 여성할당제 같은 장치가 후보 진입의 문을 넓혔고, 3–4인으로 구성된 중대선거구는 신인 여성 후보가 당선권에 올라설 수 있는 구조를 마련했다. 정당이 여성 후보를 전략적으로 발굴하고 공천하는 흐름까지 더해지며 여성 대표성이 실제 의석으로 구현된 것이다. 신기영 교수 외 연구진은 이러한 탄생이 단순히 ‘숫자의 변화’가 아니라 지역 정치가 다양성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매우 의미 있는 장면으로 주목한다. 이 사례는 2025년 지방선거를 앞둔 지금, '대표성의 미래'를 다시 고민하게 만든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실제 성과를 들여다보면 여성 의원 과반이라는 이례적 구성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여성 의제의 확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늘어난 관심은 확인되지만, 이를 조례나 예산으로 구체화한 변화는 제한적이었다. 이 점만 놓고 보면 “여성 과반이면 여성 의제가 강화된다.”라는 단순한 인과 관계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연구진이 강조한 핵심은 다른 차원에 있다. 실질적 대표성은 의정 성과뿐 아니라 대표에 대한 신뢰와 인식이 변화하는 전체 과정을 포함한다. 고성군 의회는 상징적 대표성에서 뚜렷한 전환점을 보여주었다. ‘여성은 정치에 적합하지 않다.’, ‘여성은 리더십이 약하다.’는 오래된 편견이 지역 유권자들 사이에서 약화된 것이다.
이는 다양한 사회 구성원이 의회에 들어올 때, 그 집단이 반드시 자기 집단의 의제만을 맡아야 한다는 낡은 기대룰 넘어, ‘그들도 정치인일 수 있다.’는 기본적인 시민 감각이 회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변화는 오랫동안 정치 영역을 지배해온 기득권의 ‘전문성’ 주장에 균열을 내는 지표이기도 하다. 정치적 능력과 전문성이 반드시 특정 집단에만 귀속되는 자질이 아니다. 현재 고성군 의회는 하나의 작은 실험장이자, 향후 지방정치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미래의 축소판’으로도 기능하는 중요한 지역이다.
작은 소수가 큰 소수가 되기 위해서는
평등을 위한 제도를 실행될 때마다 늘 뜨거운 논쟁이 뒤따른다. 역차별과 자질 논란 등 공평이라는 개념은 추상적으로는 명료해 보이지만, 현실 정치의 장에 들어오면 극도로 예민한 가치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이 가치가 실현되어야 할 공간을 더욱 분별력 있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제도가 누구에게 유리하게 작동해 왔는지, ‘소수’로 불린 집단들이 정말로 실력이나 자질이 부족해서 배제된 것이었는지를 냉정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
작은 소수가 큰 소수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제도 그 자체가 아니다. 제도는 어디까지나 과정의 한 단계일 뿐이며, 그 제도가 계속 필요하다는 사실은 아직 사회가 충분히 변화하지 못했다는 반증이다. 그 문을 통해 들어온 이들이 예외적 존재로 머무르지 않고 정당한 정치 행위자로 자리 잡기 위해선 사회 전체가 편견의 구조를 흔드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참고문헌
1) 김도환, 황상민, 최윤식. (2011). 정치 현상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 유형과 심리적 기제. Korean Journal of Social and Personality Psychology. (Vol. 25 No. 2). p183∼208
2) 신기영, 김은희, 권수현. (2025). 여성과반수 기초의회의 등장과 여성정치대표성: 경상남도 고성군의회 사례분석. 21세기정치학회보 제35집 3호. p76~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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