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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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냈습니다 - 연구기반 낭독극 '셋째주 수요일 저녁 7시'
  • 기사등록 2025-12-01 08: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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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신동훈 ]


                                   낭독극 '셋째주 수요일 저녁 일곱시' 공연 포스터. 이미지 로맨틱 멜팅팟낭독극 '셋째주 수요일 저녁 7시'

 

“저는 사랑하는 사람을 3년 전 떠나 보냈습니다.”


극중에서 신인 드라마 작가인 ‘먼지(박현지扮)’는 3년 전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 보냈다. 일에 치여 바쁘게 지내던 자신에게 연인은 서운함을 느꼈고, 그와 크게 다퉜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이었던 크리스마스에 연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먼지는 “사랑으로 사람을 죽인 내가, 죄인인 내가 어떻게 ‘사랑은 사람을 구원한다’고 말하는 작품을 쓸 수 있겠느냐”고 하며 자괴감을 느끼고 반 년째 대사를 한 줄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먼지는 자신과 비슷한 아픔을 가진 이들의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이끌리듯 모임의 문을 두드린다. 그리고 친구, 딸, 동생을 떠나 보낸 이들을 마주하게 된다. 과연 사랑은 사람을 파괴하는가 혹은 구원할 수 있을까?


낭독극 ‘셋째주 수요일 저녁 7시’에서 먼지를 비롯한 극중 인물들은 ‘자살사별자’라는 공통된 정체성을 바탕으로 서로에게 위로와 공감을 건넨다. 그러나 극이 진전될수록 고인과의 관계, 고인에게 느끼는 감정 등의 차이로 갈등이 빚어진다. 이를테면 사촌동생을 떠나 보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던 우석(방우식扮)이 고인의 엄마인 이모를 탓하는 모습을 보며, 청소년 딸을 잃은 엄마 여울(김기분扮)이 자책한다.

 


다시 삶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서울 마포구 산울림소극장에서 지난 11월 21-23일에 펼쳐진 이 공연은 ‘에스노드라마(ethnodrama)’, 즉 연구 기반 연극이다. 개인의 사적 경험의 영역에 머물러 있던 자살, 사별과 남겨진 가족, 친구, 지인의 이야기를 사회적 공간으로 확장하여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정의 변화를 관찰하고 기록한다. 제작진은 이를 통해 자살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겪는 다양한 고통과 상실을 함께 애도할 수 있는 ‘애도 공동체’를 소망한다.


본 공연은 실제로 매달 셋째주 수요일 저녁 일곱시에 열리는 자조 모임 ‘메리골드’에 참여한 자살 사별자 10명의 구술과 인터뷰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작품을 쓴 이민지 작가 자신도 극중 먼지처럼 사랑하던 연인을 잃었다. 이 작가는 모임에 수 년간 참여한 자신의 경험을 녹여 지난해 첫 공연을 직접 연출해 무대에 올렸다.


그리고 두 번째로 열리는 올해의 공연은 전문 연출가인 이치민 감독이 시나리오 각색과 연출을 맡았다. 지난해보다 극예술적인 요소를 강화하고 규모를 키웠고, 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연출가와 배우, 그리고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들의 감정 변화 등을 기록하여 후속 연구 재료로 사용할 예정이다.


이치민 연출은 “죽음을 마주했지만 그럼에도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관해 이야기해야 한다고 민든다”며 “이 공연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다시 삶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곁에서 함께 버텨줄 수 있도록


본 공연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의 후원을 받았으며, 한국심리학회가 주최 및 주관하고, 기획과 제작은 한국심리학회 자살예방분과위원회와 극단 로맨틱멜팅팟이 함께 맡았다. 이처럼 많은 사별자, 예술가, 심리학자, 문화인류학자가 협력하여 완성한 무대에 관객은 목격자이자 참여자로 초대된다.


고선규 한국심리학회 자살예방분과위원장은 “한국인의 절반 정도는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자살 사별 경험을 갖고 있는데도, 자살이라는 죽음의 특성상 사회적으로는커녕 개인적 차원에서도 애도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남겨진 이들이 홀로 감당해야 하는 죄책감 등 고통의 크기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자살사별자들이 가장 듣기 힘들어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왜 그랬대?’입니다. 고인이 대체 왜 자살이라는 선택을 한 건지 누구보다 알고 싶은 건 남겨진 이들인데도, 사별자들은 그런 질문을 받으면 ‘나 때문인가?’ 하는 자책감에 빠지게 되죠. 적어도 자조모임에서 만난 사람들끼리는 ‘이심전심’의 마음으로 편견 없이 나를 받아줄 거란 안정감을 느낄 수 있어요.”


고 위원장은 “모임을 넘어 무대라는 공적인 자리에서 자살사별자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표현해 당사자들은 여전히 낙인처럼 통용되는 자살이라는 죽음을 용기 내 직면하고, 주변 사람들은 당사자 곁에서 함께 버텨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첫 발을 떼고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 자조모임의 참가자는 지난해 공연을 관람하고 “인물들이 서로에게 하는 이야기가 나 스스로에게 해주지 못했던 위로로 들렸다”는 평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자살에 대해 말하는 것은 사별자뿐 아니라 그 주변인들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먼지 역을 맡은 배우이자 로맨팃멜팅팟을 이끄는 박현지 대표는 “오랜 친구인 이민지 작가의 자살사별 경험에 친구로서 적절한 위로를 해주지 못했다는 부채의식이 컸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 작가를 비롯하여 자살 사별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이들이 저마다 용기를 얻는 모습에서 공적 말하기의 힘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함께 울며 햇살이 비치는 쪽으로


극 가운데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자살사별자라는 정체성은 여전했지만, 먼지는 그 정체성에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먼지는 자살사별자이기도 하지만, 드라마 작가이기도 하고, 엄마의 소중한 딸이기도 하고, 친구들의 다정한 친구이며, 저 모모의 단 하나뿐이자 전부인 가족이기도 했으니까요.”


‘세계자살유가족의날’은 1999년 자살로 아버지를 잃은 미국의 해리 리드 상원의원이 발의한 결의안으로 제정되었다. 자살로 가족 또는 지인을 잃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치유와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마련된 날로, 매년 미국 추수감사절 직전 토요일에 기념한다. 올해 세계자살유가족의 날은 지난 11월 22일이었다.





참고문헌

1. "내가 사랑으로 사람 죽인 죄인인가요?" ... '자살사별자' 경험 녹여낸 낭독극. 정인선. (2025-11-21).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30458.html?utm_source=copy&utm_medium=copy&utm_campaign=btn_share&utm_content=20251126

2. "함께 애도해야 서로를 살린다" ... 연극 '셋째주 수요일 저녁 7시'. 정수영. (2025-11-16). 뉴스1

https://www.news1.kr/life-culture/performance-exhibition/5977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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