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프다면... 나를 돌아봐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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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이혜진 ]

  1. 출처: pixabay


아픈 상태를 가장하는 사람들.

 

병원에서 보면, 검사 결과는 멀쩡한데 계속 “진짜 숨이 안 쉬어져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꽤 있다고 한다. 몸은 건강한데 스스로 아픈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인위성 장애(Factitious Disorder)라고 부른다.

 

이 단어가 조금 딱딱하지만, 실은 꽤 인간적인 얘기다. 인위성 장애는 ‘아픈 척하는 사람들’이라는 가벼운 말로 설명하기엔 너무 복잡하고, 그냥 관심을 끌기 위한 장난이라고 하기엔 그 사람들에게는 너무 고통스러운 문제다. 이들은 일부러 약을 먹거나 상처를 만들기도 하고, 병원 기록을 조작하며 ‘환자 역할’을 유지한다. 하지만 그 행동 뒤에는 늘 비슷한 감정이 숨어 있다. 바로 “누군가 나를 돌봐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해야만 중요한 사람인가?”라는 마음이다.

 


인위성 장애는 ‘연기’가 아니라 ‘관계 전략’


 

인위성 장애는 타인에게서 돌봄을 얻기 위해 병을 만들어내는 행동 패턴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득을 위해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보험금을 타기 위해 아픈 척하는 건 ‘꾀병(Feigning)’이지만, 인위성 장애는 정서적 이득(관심·애정·지지)이 목표다. 

 

어린 시절 돌봄이 불안정했거나, 아플 때만 사랑받았던 경험이 반복되면, “아프면 관계가 가까워진다”는 내적 규칙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성인이 된 뒤에도 무의식적으로 그 역할을 반복하는 것이다. 한 연구에서는 인위성 장애 환자들이 애착 불안 점수가 높고, 자기 개념이 불안정하며, 대인관계에서 거절을 과도하게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고한다. 즉, “나라는 존재가 충분하지 않다”는 감각이 강할수록 환자 역할이 안전한 ‘정체성’이 되기 쉬운 것이다.

 


SNS 시대, 인위성 장애는 더 조용하고 은밀해졌다


 

요즘은 또 다른 형태가 등장했다. 바로 인터넷형 인위성 장애(Münchausen by Internet)이다. 링거 사진을 퍼와서 올리는 사람, “오늘 수술해요…” 같은 글로 댓글을 유도하는 사람, 질병 커뮤니티에서 병력을 꾸며내는 사람 등이 그 예다. 이들은 직접적인 ‘신체적 돌봄’ 대신, 좋아요·댓글·관심 메시지를 돌봄으로 느낀다. 즉, SNS가 ‘새로운 병원’이 되어버린 셈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뒤늦게 “그 사람 거짓말이었대”라는 폭로가 나오면, 온라인 커뮤니티는 거의 항상 격렬한 배신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 뒤에는 실제 인임상에서 보는 정서적 결핍, 불안정한 정체성, 외로움이 똑같이 존재한다.



 왜 이런 행동을 멈추지 못할까?



크게 네 가지로 설명해볼 수 있다.

 

첫째로, 정서 조절 문제(Emotion dysregulation)가 있다. 여러 연구에서 인위성 장애 환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보고된다. 불안, 공허감, 외로움을 해소할 방법이 거의 없기 때문에 ‘아픈 역할’이 즉각적인 진정 효과를 주는 것이다.


둘째, 보상 체계(Reward system)의 작동 방식 때문이다. 정신생물학적으로 보면, 돌봄과 관심은 도파민 보상 회로를 자극한다. 즉, “관심을 받는다 → 도파민이 증가한다 → 다시 그 행동을 한다”의 패턴이 유지되기 쉽다. 이 구조가 반복되면 점점 행동이 고착된다.

 

셋째로는 애착 문제(Attachment insecurity) 들 수 있다. 애정이 안정적이지 않았던 사람일수록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이 계속되며, 아픈 역할’이 그 공백을 메우는 하나의 전략이 된다.

 

마지막으로, 대인관계 민감성이 있다. 인위성 장애 환자들은 거절에 특히 취약하다. 가령, 누군가 떠날 것 같다는 신호만 보여도 병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있다. 그렇기에 이를 “관계 유지 행동(relational maintenance behavior)”이라고도 설명한다.



 치료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인위성 장애 치료의 핵심은 ‘거짓’을 밝혀내는 게 아니라 안정적인 관계를 다시 배우도록 돕는 것이다. 치료자는 직접적인 대결이나 폭로를 피하고,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보다 “지금 이 사람이 어떤 감정을 견디지 못해 이런 방식으로 표현하는지”에 초점을 둔다. 그래서 치료는 보통 정서 조절 능력을 키우고, 관계에서의 불안·거절 두려움을 다루며, ‘아픈 역할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경험을 쌓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결국 치료는 증상을 멈추게 하기보다는, 관계가 안전하다고 느끼게 해 마음을 다시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에 가깝다.

 


마치며...


 

결국 이 이야기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인위성 장애의 핵심은 병이 아니라 마음이다. 아픈 척하는 모습 뒤에는 늘 “나는 사랑받을 수 있을까?”라는 조용한 질문이 숨어 있다. 흥미로운 건, 이 질문은 사실 우리 모두에게도 익숙하다. 스트레스 받을 때 몸살 기운이 있는 듯 말하거나, 힘들다는 말을 조금 과하게 표현했던 적이 한 번쯤 있지 않은가?

 

그래서 인위성 장애는 낯설지만, 완전히 남의 이야기도 아니다. 우리가 돌봄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관계가 인간을 얼마나 지탱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아픈 역할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괜찮다는 감각이, 이 문제를 이해하는 가장 따뜻한 출발점이다.



<참고문헌>

1)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2013).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5th ed.). Author.

Yates, G. P., & Feldman, M. D. (2016). Factitious disorder: A fresh look at an old problem. Psychiatry (Edgmont), 5(3), 13–20.

2) Bass, C., & Halligan, P. (2014). Factitious disorders and malingering: Challenges for clinical assessment and management. The Lancet, 383(9926), 1422–1432.

3) Feldman, M. D. (2004). Munchausen by internet: Detecting factitious illness and crisis on the Internet. Southern Medical Journal, 97(7), 698–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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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12-03 09: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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