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그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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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송주영 ]


스파이더맨 2 - 전철사고 장면


누구나 꿈꾸는, 영웅



누구나 한 번쯤 영웅을 꿈꾸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필자 역시 어릴 적 영웅에 관한 영화나 책을 보고 나서 하늘 높이 날아다니며 세상을 지키는 영웅이 되고 싶은 마음에 황금색 보자기를 목에 묶고 소파 높은 곳 위에서 뛰어내린 기억이 있다. 


영웅과 관련된 다양한 영화와 소설, 이 밖에 수많은 컨텐츠는 많은 사람이 영웅을 동경하며 그들의 이야기에 열렬히 몰두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영화 제작사 ‘마블 스튜디오’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영웅들의 이야기를 흡입력 있게 구성하여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고, 전세계적으로 흥행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영웅은 비단 책과 영화 속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도 수많은 영웅들이 존재한다. 코로나 19가 세계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되었을 때, 부족한 인력과 자원에도 불구하고 병동의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이던 의료진은 언론, 정부, 대중에 의해 ‘영웅’으로 칭송받았다. 또한, 자신의 목숨을 걸고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는 소방관에게도 ‘영웅’이라는 라벨이 적극적으로 사용된다. 이는 소방처의 공식 캐릭터로 선택된 마스코트 ‘영웅이’를 통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상대적으로 낮은 대우를 받으며 아이들을 위해 밤낮 힘쓰는 교사 역시 ‘영웅’으로 불리우곤 한다. 실제로 테러와 같은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 발생했을 때, 자신의 목숨보다 학생들을 소중히 여기고, 그들을 먼저 대피시키는 헌신적인 모습은 이들이 일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영웅’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우리는 영웅들을 만나면 그들의 놀라운 희생에 감탄하며 그 기여에 놀라워한다. 그들의 이타적인 모습은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박수를 받는다. 그러나 ‘영웅’이 사람들의 응원과 지지를 이끌어내는 단어라고 할지라도, 그 이면에는 숨겨진 그늘이 존재한다. 



영웅과 그 이면



‘영웅’이라는 단어의 유래는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은 대부분 막강한 힘과 무용을 떨치며 여러 매력을 지닌 아름다운 존재였다. 그들 대다수의 특징은 신의 후손과 같이 ‘신’과 어딘가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영웅’이란 특별한 무언가를 가진 존재였다. 


그러나 이 개념은 시간이 흐르고 문화적, 역사적, 상황적 힘에 의해 변화해 왔다. 고대와 대비되는 현대 영웅의 독특한 특징은 특별한 사람이 아닌, 거의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영웅’이라는 단어의 보편적 접근 가능성은 이를 일상 속에서 널리 퍼진 개념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현대의 영웅 개념은 이타적이고, 도움을 주며, 희생을 감수하려는 등 복잡한 특성과 자질의 집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회 심리학자인 킨셀라(Kinsella et al., 2015b)는 특성 분석에 따라 영웅의 가장 중심적인 특성으로 도덕적 성실성, 이타주의, 자기희생, 이타심, 그리고 도움을 주려는 성향을 발견했다. 


이처럼 칭찬할 만한 특성을 가진 ‘영웅’ 프레임을 타인에게 부여하는 것은 얼핏 보면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여러 사회 심리학 연구는 영웅화가 사람들로 하여금 불공정, 부정의, 고통에 대한 우려를 줄이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즉, 누군가를 영웅시하는 경향은 그 사람을 ‘착취’하는 것에 대해 둔감해지게 만든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의도적으로 선택하거나 자발적으로 받아들였다고 가정될 때 더욱 강해진다. 일반적으로 영웅으로 칭송받는 개인 및 집단은 위와 같은 좋은 특성과 자질을 수동적으로 부여 받은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적극적으로 추구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앞서 이야기 했던 코로나 19 팬데믹의 최전선에서 활동한 의료 종사자들은 대부분 타인을 돕기 위해 기꺼이 위험에 자신을 내던지는 적극적인 의지를 강조했으며, 소방관 역시 타인을 구하기 위해 불타는 건물 속으로 의도적으로 뛰어드는 모습으로 영웅으로 칭송받는다. 


이는 픽션의 이야기 속에서도 잘 드러난다. 가장 유명한 슈퍼히어로 시리즈 중 하나인 ‘스파이더맨’의 주인공 피터파커 역시 엄청난 힘을 가진 책임을 느끼고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히어로가 되기로 마음을 먹는다. “Great powers comes great responsibility”라는 유명한 대사는 영웅의 희생이 대부분 자발적으로 보이는 선택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음을 은연 중에 암시한다. 



영웅: 긍정적인 고정관념



스탠리(Stanley)와 케이(Kay)의 연구(2024)는 영웅화의 이면을 긍정적 고정관념으로 설명한다. 긍정적 고정관념은 표면적으로 호의적인 칭찬의 의미를 담고 있지만, 광범위한 범주화 과정에 의존하기 때문에 개인성을 제한하고, 대상화된 사람들의 비개인화를 심화시킨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긍정적 고정관념의 사용을 더 수용 가능한 것으로 여긴다. 부정적 고정관념은 그 효과가 널리 알려져 사용을 피해야 한다는 문화적 인식이 점점 커지고 있지만,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인 효과가 혼합된 결과를 가져오는 긍정적 고정관념은 칭찬과 감사의 표현으로 쉽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긍정적 고정관념은 집단 구성원들에게 기대되는 바를 전달하는 강력한 수단으로 작동할 수 있다. 특히 그 권장이 아첨적이고 겉보기에 긍정적인 언어로 표현될 때, 기존보다 훨씬 적은 반발을 가져와 더 쉽고 효과적으로 구성원들의 착취를 정당화한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흔히 사용되는 “가족 같다”는 어휘는, 집단 구성원의 희생과 기여를 합리화시켜 공정한 임금 및 보상을 추구할 수 없도록 프레임을 씌운다. 


그러나, 수많은 뉴스 기사, 광고, SNS가 ‘영웅’이라는 단어를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영웅시되는 직업에 종사하는 개인들이 항상 그것을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기 막 발발하기 시작한 2020년 7월, 현장 간호사들이 간호 인력 부족, 열악한 교육 체계 등의 개선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시위를 가졌다. 이들은 계속해서 전염병 대유행이 온다면, 현 의료 시스템으로는 방역이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며 “뼈를 갈고 피를 토하며” 온몸으로 팬데믹 확산을 막고 있는 의료진들의 처우를 호소했다. 


이는 “영웅”이라는 이름 아래 이들의 노동에 대한 착취가 당연시되고 있는 현실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예시이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제시카 스톡스-패리시(Jessica Stokes-Parish)는 2023년에 미국, 호주, 영국의 중환자 간호사들이 영웅이라는 호칭을 긍정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즉, 이 호칭이 오히려 비현실적인 기대를 만들고 잠재적인 안전 위험을 초래한다는 우려를 나타내는 것이다.



연구 결과: The consequences of Heroization for Exploitation



영웅화가 실제로 착취를 만들어 내는 지 실험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스탠리(Stanley)와 케이(Kay)는 총 다섯 가지의 연구를 진행했다. 


이들은 첫 번째부터 세 번째까지의 연구를 통해 소방관, 구급 대원, 간호사, 군인, 교사, 과학자 등 다양한 직업이 영웅시 된다는 것과, 이러한 영웅화가 착취를 이끌어낸다는 둘 사이의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파악하였다. 즉, 실제로 여러 직업에서 영웅 고정관념을 강조하는 것이 그들이 자발적으로 착취에 응할 것이라는 사람들의 기대를 증가시킨 것이다.


이후 네 번째 연구에서는 사람들이 영웅화되었던 직업군(참전용사)의 사람이 다른 직업으로 전환한 이후에도 착취에 자발적으로 응할 것이라고 더 강하게 기대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실험 참가자들은 참전용사를 비참전용사보다 더 영웅적으로 인식했고, 그들의 영웅성에 대한 가정이 착취에 더 기꺼이 응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유로 이어졌다. 


마지막 연구에선 직업적 영웅화가 교사, 간호사, 군인이 스스로 착취에 자발적으로 응할 것이라는 기대를 변화시킬 뿐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 이들을 대상으로 한 착취적 정책에 반대도 줄이는 경향이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는 노동자가 스스로 착취에 자발적으로 응할 것이라는 기대가 정당화를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이 노동자를 ‘영웅’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을 열악하게 대우하는 것이 오히려 그들의 욕구와 바람에 부합하는 행동을 가능하도록 만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영웅이라는 단어의 무게



비록 ‘영웅’이라는 단어가 타인에 대한 문제적 기대를 강화하고, 착취에 대한 반대를 감소시키는 경향을 만들 수 있지만, 집단과 직업을 영웅화하는 것이 항상 문제적인 것은 아니다. 영웅 서사는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희망을 심어주며, 발달적인 성장을 촉진하고 사회적 결속을 강화시킨다. 이는 힘들고 좌절스러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동안 영웅의 긍정적 측면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늘에 가려져 있던 큰 공백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은 아닐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긍정적 고정관념은 강력하다. 이는 특정 사람들에 대한 열악한 대우를 합리화하고 지속시키는 은밀한 기제로 작동된다. 그것들은 쉽게 칭찬과 감사로 해석되기 때문에 그 위험성을 알아차리기 어렵고, 그 사용에 반대하면 과민한 불평꾼으로 치부 될 수 있다. 


스파이더맨 2의 전철 사고 저지 장면은 영웅이라는 화려한 이름의 뒷면을 잘 보여준다. 누구보다 자신의 힘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희생과 헌신을 다한 스파이더맨은 필사적으로 추락하려는 전철을 겨우 막고 쓰러진다. 쓰러진 그를 전철 안으로 옮긴 시민들은 가려져 있던 가면 속 진짜 영웅의 얼굴을 보게 된다. 



“He’s… just a kid. No older than my son” 

(그냥… 젊은이에요. 제 아들보다도 어린)



영웅이라는 이면 뒤에는 나와 같은 한 인간이 있다. 그들의 노고와 헌신은 초월적인 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서의 선택과 책임에서 나온다. 그러나 그들을 영웅이라는 단어 아래 가두는 순간, 그들의 인간적 권리와 필요를 가려버릴 위험에 처한다. 


우리의 현실은 슈퍼히어로 영화가 아니다. 영웅이라는 이름 뒤에는 결국 똑같이 숨 쉬고, 흔들리고,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영웅을 이상화 하는 대신 그들의 삶을 함께 지켜주는 동반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의 삶을 지켜낼 때,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작은 영웅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출처

1. 소녀 첩보원 다룬 뮤지컬 '켈로... "전쟁 영웅화 아닌 기억 새기기" < 정치 < 뉴스 < 기사본문 - 인천투데이</a>

2. 코로나 19: '영웅, 천사라는 수식어는 필요 없습니다. 사람으로 대우해 주세요' - BBC News 코리아

3. Stanley, M. L., & Kay, A. C. (2024). The consequences of heroization for exploitation.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26(1), 5–25. https://doi.org/10.1037/pspa0000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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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12-09 08:3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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