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은 왜 부의 재분배를 지지하는가
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한국심리학신문=채빈 ]


pixabay.com

부의 양극화는 흔히 소득이 높은 부유층이 재분배를 싫어한다는 단순한 구도로 설명된다. 그러나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역설적으로 일부 부유층은 재분배 정책을 적극 지지한다. 이유는 도덕적 책임감도, 형평성에 대한 신념도 아니다. 그저 범죄에 대한 두려움, 바로 그것이 부유층의 재분배 선호를 뒤흔드는 가장 강력한 감정적 동력인 것이다. 어찌보면 이것은 정치학과 심리학, 경제학, 그리고 범죄학이 만나 밝혀낸 흥미로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David Rueda와 Daniel Stegmueller가 2015년에 발표한 논문인 ‘The Externalities of Inequality: Fear of Crime and Preferences for Redistribution’은 이러한 심리를 명확히 보여준다. 본 논문에 따르면 소득 불평등이 커질수록 범죄 피해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 증가하고, 결국 그 두려움이 부유층조차 재분배 정책을 선호하게 만든다는 점을 밝혀냈으며, 이를 실증적으로 드러냈다. 연구자들은 범죄 발생률 자체보다 범죄 위험에 대한 인식이 재분배 태도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한다. 부유한 사람일수록 사회적 격차 속에서 자신이 표적이 될 가능성을 민감하게 느끼며, 이러한 불안이 정책적 태도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범죄는 돈 많은 사람의 심리도 흔든다


부유층이 재분배를 꺼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소득세 증가, 자산 과세, 사회보험 확대 등과 같은 정책들은 그들의 경제적 이익에 반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은 극대화하고, 얻는 손실은 최소화하고파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는 지극히 당연한 법칙으로 보인다. 하지만 불평등이 확대되면 사회 심리적 구조가 바뀐다. 사회경제적 격차가 확대될수록 부유층이 범죄의 상대적 표적이 될 가능성은 더 커지고, 일상 속 불안은 증가한다.


논문는 바로 이 지점에 주목한다. 부자가 가진 가장 큰 두려움은 그저 경제적 손실만이 아니라 신체적 위험과 범죄 피해다. 이들은 범죄가 발생하면 잃을 수 있는 재산이 남들보다 많다. 나아가 자신이 가진 부가 ‘과도한 표식’이 된다고 느끼는 순간, 그들은 갑자기 약자가 된다. 특히 고급 주택단지, 명품 소비, 차량 등처럼 부가 드러날 수 있는 수단이 많아질수록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불안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때 중요한 것은 실제 범죄율이 아니다. 연구에 따르면 객관적 범죄율이 아니라 주관적 범죄 에 대한 두려움이 재분배 선호에 더 큰 영향을 준다는 점이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즉 부자는 범죄가 실제로 늘었기 때문에 재분배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를 당할 수도 있다는 감정이 정책 신념을 바꾸게 만드는 것이다.


불평등과 두려움의 관계


논문은 한 사회에서 불평등이 확장될수록 부유층이 느끼는 범죄 불안은 증가한다고 설명한다. 그들은 자신이 안전하다고 믿었던 공간에서조차 점차 안전을 확신하지 못한다. 경비 시스템을 강화하고, 고급 보안 서비스를 이용해도 마음은 편해지지 않는다. 심지어 이것은 비싸 많은 자본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그들이 선택하는 것이 바로 재분배 정책 지지다. 이는 도덕적 판단이라기보다 질서 안정 비용 지출이라는 심리에 가깝다. 재분배는 범죄 가능성을 낮추고, 사회적 긴장을 완화하며, 궁극적으로 자신이 여러 비용을 들여 치러야 하는 사적 안전 비용을 줄여준다는 점에서 합리적 선택으로 인식된다.


비유하자면 범죄 예방을 위해 스스로 성벽을 높이는 대신 도시를 넘어 사회 전반의 치안을 강화하는 데 투자하는 것이다. 이로인해 재분배는 그저 내가 정당하게 벌어들인 소득을 빼앗아가는 불이익이 아니라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두른 그 성벽을 사회 전체에 구축하는 정책적 장치로서 작동하게 된다.


결국 핵심은 두려움이라는 심리


연구가 특히 흥미로운 이유는 사람들의 정책 태도를 경제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감정적 요인, 그중에서도 특히 두려움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두려움은 인간을 가장 강력하게 변화시키는 감정이다. 그것은 자기 이익보다 더 근본적인 생존 본능을 자극한다. 부유층이라도 생존과 안전이 위협받는다고 느끼는 순간, 자신이 가진 기득권을 양보하려 한다.


재분배를 옹호하는 부유층은 종종 사회적 책임감이 강하다는 식으로 찬사를 받고는 한다. 그러나 이번 연구가 던지는 메시지는 정반대다. 부유층의 재분배 지지는 도덕적 연민이라기보다 자기보호적 본능이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재분배는 비록 손해를 보지만 범죄를 막을 수 있다면 그게 더 안전한 선택이고, 더 적은 비용이 든다는 차원의 계산인 것이다. 때때로 이런 결과를 보면 씁쓸한 감정이 드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고하여 이것이 비난받을 일인 것은 결코 아니다. 이는 오히려 인간 심리의 복잡성과 현실적 선택의 구조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예일 뿐이다.


그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


결국 본 논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단순하다. 불평등이 심해지는 사회에서는 어느 계층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빈곤층은 물론, 자산이 많은 부유층마저 경제적 자원을 갖고 있어도 사회적 불안정성이라는 외부의 위험으로부터는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재분배는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한 정책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안정을 위한 구조적 안전장치인 것이다.


부유층이 재분배를 지지하는 이유는 결국 두려움이다. 그 두려움은 사회적 불평등이 만들어낸 일종의 외부 효과이며, 범죄가 증가할수록 그것은 더욱 강력해진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재분배는 경제의 관점에서 약자를 위한 정책일 뿐만이 아니라 강자의 불안을 줄여주는 정책이기도 하다. 불평등이 완화되면 범죄 공포도 줄어들고, 사회 전체의 평온이 회복되기 때문이다.


결국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모두가 안전을 원한다.




참고문헌

1) 대한범죄학회. (2022). 범죄학개론, 박영사 

2) Rueda, D. and Stegmueller, D. (2016), The Externalities of Inequality: Fear of Crime and Preferences for Redistribution in Western Europe. American Journal of Political Science, 60: 472-489.


※ 심리학에 대한 더 많은 정보는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에 방문해서 확인해보세요!

※ 심리학, 상담 관련 정보 찾을 때 유용한 사이트는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 심리학, 상담 정보 사이트도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 재미있는 심리학, 상담 이야기는 한국심리학신문(The Psychology Times)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www.psytimes.co.kr/news/view.php?idx=11626
  • 기사등록 2025-12-10 08:43:04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